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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산을 배경으로 과수원에 하얗게 배꽃이 피었다.
▲ 배꽃 초록빛 산을 배경으로 과수원에 하얗게 배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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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뚫고 짙푸른 남색으로 핀 각시붓꽃
▲ 각시붓꽃 낙엽을 뚫고 짙푸른 남색으로 핀 각시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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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바야흐로 온갖 초록빛으로 들끓는다. 땅 속 어딘가에 그토록이나 많은 초록색을 숨겨 두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초록이라고 단정짓기에 너무도 다양한 초록빛 색감들이 다투어 봄 숲을 물들이고 있는 때이다. 산으로 향하는 마음에도 초록빛 물이 들어 한 그루 나무가 되는 듯한 상상이 나를 숲으로 이끈다.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피어 부지런히 봄을 알리던 들꽃들은 이제 졌다. 대신 잎부터 나고 꽃이 피는 것들이 숲과 들판을 수놓는다.  초록빛을 배경으로 피어난 꽃들은 한결 화사해 졌다.

거리를 수놓던 벚꽃이 지니 산벚꽃이 산자락을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마을마다엔 복사꽃이 그보다 붉다. 목이 부러질 듯 풍성한 꽃잎을 매단 겹매화도 한자리를 차지하니 세상은 말 그대로 '꽃대궐'이다. 

황홀한 꽃세상 어디에다 눈을 주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절정은 배꽃 핀 과수원이다.  배나무의 하얀꽃과 초록 숲의 조화는 이 계절의 백미다.

걸을수록 다정한 중미산 등산로 초입
▲ 길 걸을수록 다정한 중미산 등산로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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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속에 파묻힌 중미산 정상에서
▲ 정상 진달래꽃 속에 파묻힌 중미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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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숨바꼭질하듯 피어난 꽃들을 찾아 나선 산행길이었다. 산벚꽃, 복사꽃, 겹매화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봄꽃들로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바탕 꽃잔치를 치른 기분이다.

매번 이맘때면 한번씩 들르게 되는 중미산도 봄이 깊어가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자마자 관리소 옆 화단으로 달려간다. 꽃밭 가득 할미꽃이 절정이다. 꽃등이 굽은 할미꽃에 대고 '절정'이라고 표현하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화단 가득 할미꽃이 피어있는 풍경을 달리 뭐라 할 것인가.

산행을 하기 위해 관리소 앞에서 길을 건너 산간도로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에 들어선다. 양옆으로 낙엽송이 늘씬하게 서 있고 풀들이 무성하게 덮힌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참으로 다정한 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산행을 하려면 산간도로를 벗어나 등산로 표시를 따라 오르막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몇 번 올라가 보았다고 아들녀석이 길을 안내한다. 저 먼저 앞서가 있다가 엄마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꼭 한 마리 강아지같다. 풀들로 무성한 길섶엔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들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현호색, 양지꽃, 산괭이눈, 산괴불주머니….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록 흔하게 만날 수 없는 꽃들도 하나둘 드러난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다 바위아래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는 홀아비꽃대를 올 봄 들어 처음으로 만난다. 작년에 보았으나 올해 처음 보았으니 다시 새롭고, 새삼스럽게 반갑다.

이렇다 할 특색을 가지지 못한 중미산, 그러나 아기자기 오르는 맛을 주는 산 속에서 만나게되는 봄꽃들을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에 비견해도 되지 않을까.

홀아비꽃대며, 붓꽃, 산자고, 구슬봉이..... 희고 푸른, 산 속에 숨어들듯 피어난 보석같은 꽃들과 눈 맞추며 산을 오르자니 자연 발길은 느려진다. 느린 발걸음은 숲의 리듬이다. 숲의 리듬에 익숙해지는 순간,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새들의 지저귐에도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봄을 노래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밝고 경쾌한지, 그 노래들 속에 삐약거리는 듯한 아기새들의 지저귐이 섞여 있음을 아는 일은 얼마나 신비롭던지.

고양이눈이 이렇게 예쁘다니..
▲ 산괭이눈 고양이눈이 이렇게 예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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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걷다 눈을 들어 바라본 산능선에
산벚꽃이 피어 화사하다
▲ 산벚꽃 산책로를 걷다 눈을 들어 바라본 산능선에 산벚꽃이 피어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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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객들이 거의 없어 시종 한가로운 산행길에서 어쩌다 만나게 되는 등산객은 참으로 반갑다. '생각보다 오르기 힘든 산이네요'  두 사람의 산행객이 산을 내려가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를 끼고 가는 우리를 걱정해주는 인사였으리라. 그러나 벌써 여러 번 중미산을 찾았으니 눈을 감고도 산 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고 그런 만큼 이 산에 남다른 사랑을 느껴진다. 산 중턱을 넘어가는 길,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다리쉼을 하자니 노란꽃무리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산길에서 한참 벗어난 능선 깊숙한 곳에 숨듯이 피어있는 피나물군락. 피나물 노란꽃밭이 산 한귀퉁이를 넓게 차지하고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 피나물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 모습을 노란 호박석에 비할까, 숲에 점점이 떨군 보석의 행렬은 이렇듯 난데없이 나타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 아파트 화단엔 벌써 철쭉이 만발한데 중미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엔 무리를 이룬 진달래가 절정이다. 쌉싸름한 진달래꽃잎은 일부 땅에도 떨어져 꽃 화전을 지진 것 마냥 산길을 수놓는다. 산 정상은 온통 진달래꽃에 둘러싸였다. 높은 지대에서 견디고 살아가느라 유난히 키가 작은 진달래꽃은 그러나 저 아래서 만난 진달래꽃빛보다 훨씬 짙어 어여쁘다.

진달래 분홍꽃에 비춰보는 세상은 어디든 밝고 화사하다.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은 온통 산 능선, 그 능선과 능선이 물결치듯 이어져 산맥을 만들었다.

중미산 정상은 시야가 넓어서 좋다.  초록빛 능선들을 다 품어 안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왔던 길을 되짚어 하산한다.

그러나 중미산 산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휴양림 주변의 산책로를 돌아보는 일은 상큼한 디저트를 먹는 느낌을 준다. 잘 닦인 산책로는 걷는 일이 휴식 다름 아니며, 그 휴식 같은 산책로를 걷다 만난 봄꽃들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한창 꽃분홍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단 듯 피어난 금낭화도, 금방이라도 샛노란 꽃봉오리를 터트릴 듯 꽃잎을 오므린 동의나물꽃도 그 길에서 만난 특별한 행운이었다. 산책로 중간에 군락을 이룬 은방울꽃은 이제 잎새를 내밀고 있다. 오월 초, 그곳에 은방울꽃이 피어나면 중미산을 또 한번 꽃몸살을 앓으리. 봄이 깊어간다. 꽃잎 흩날리며 봄날이 간다.

산 중턱을 넘다 어느 지점에선가,
이렇게 피나물이 밭을 이루어 피었다.
▲ 피나물꽃 산 중턱을 넘다 어느 지점에선가, 이렇게 피나물이 밭을 이루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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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중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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