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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를 보고 있는데, 뉴욕에서 가방 디자이너로 큰 성공을 이루고 있다는 임상아 씨가 나왔다. 방송을 찍기 위해 얼마나 깨끗이 치웠으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임상아 씨 집도 눈길을 끌었고, 그가 어느 날 아침에 지었다는 향수가 절절이 묻어나는 시도 내 시선을 잡았다. 그러나 그 방송 내용 중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의 짧은 말 한 마디였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힘든 건 음식이라고. 매일 외국인 남편과 한식을 먹는다면서도,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한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있으면서도, 게다가 벌써 미국에 산지 9년이나 되었다면 서도 가장 힘든 건 음식이라고.

호주에서 몇 개월 살다가 왔다. 임상아 씨가 미국에서 산 9년이랑 비교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또한 가장 힘들었던 건 음식이었다. 내가 호주에 이민 갈 생각이 없다면 그건 한국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없기 때문이고, 만약 호주에 살게 된다면 반드시 한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모든 생각들이 한국 음식을 중심에 놓고 시작되었다.

나도 호주에 가기 전엔 음식이 내 생활을 그 정도로 지배할지 몰랐다. 한국에선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설탕 듬뿍 뿌린 빵을 장 보러 갈 때마다 사다 먹은 것도 사실은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욕구 불만 때문이었고, 그 매운 빨간 고추를 쌈장에 푹푹 찍어 먹는 것도, 그렇게라도 해서 매운 한국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만큼 음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두 끼씩 먹었던 토스트 처음에는 참 간편해서 좋아했었던 토스트
▲ 하루에 두 끼씩 먹었던 토스트 처음에는 참 간편해서 좋아했었던 토스트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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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떠나기 전 인사차 집에 갔을 때, 엄마는 나 먹으라고 아주 두툼한 갈치 몇 토막을 구어 놓으셨다. 길게는 1년 동안 보지 못할 딸을 위해, 서른도 훌쩍 넘어 예전에 엄마 손을 떠난 둘째 딸을 위해, 그 딸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 갈치구이를 해 놓으셨다. 엄마가 섭섭한 마음으로 혹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으로 구웠을 그 갈치를 먹으면서도, 사실 대단한 기분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엄마가 정성껏 끓인 국을 마시면서도, 엄마가 만든 김치, 엄마가 무친 나물들을 먹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갈치가 하도 도톰해서 많이 먹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뿌리치고, 고작 한 토막 밖에 못 먹은 거, 단지 배가 불러 더 먹지 못한 갈치가 아쉽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랬다. 작년 나는 그랬다. 그 음식들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몰랐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토스트를 밥처럼 먹으면서, 4달러 주고 산 김치를 정말 소중하게 아껴 먹으면서, 김치보다는 그래도 고추장이 쌀 거 같아, 달걀 굽고 채소 몇 개 썰어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듬뿍 넣고 비벼먹으면서, 엄마가 차린 그 밥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정말 뼛속까지 깨달아 버렸다. 엄마가 갓 담가 보내줬던 김장김치가 먹고 싶다고, 오이소박이가, 고들빼기김치가, 엄마가 소풍 때 말아줬었던 김밥이 먹고 싶다고 혼자서 징징거렸다.

한국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택배가 왔다. 엄마가 내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받을 수 있도록 그 전날 부친 택배였다. 김치냉장고에서 꺼내 통째 그대로 보낸 김치가 한 통, 연근조림, 깻잎장아찌, 멸치볶음, 파프리카, 그리고 또 갈치…….

호주로 떠나기 전 둘째 딸 먹이려고 갈치를 구웠던 엄마는, 몇 개월 동안 갈치 구경도 못했을 딸을 위해 그 딸이 한국에 오자마자 먹을 수 있도록 갈치를 잘 싸서 택배 상자 한 귀퉁이에 넣으셨다. 이번엔 그 갈치를 내가 굽는다. 한 번은 프라이팬에 굽고, 남은 갈치들은 냉동실에서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오븐에도 구어 먹고, 때때로 갈치조림도 한다.

갈치구이 엄마가 보내준 갈치를 맛있게 먹습니다.
▲ 갈치구이 엄마가 보내준 갈치를 맛있게 먹습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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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그 갈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안다. 그 갈치에 담겨있는 엄마 마음까지도 헤아린다. 갈치 뼈 옆에 붙은 살점 하나 함부로 버릴 수 없어 정말 알뜰히 먹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엄마가 얼마나 뿌듯하실까 생각하면서, 엄마가 택배 보낼 수 있는 같은 한국 땅 안에 있는 것에 행복해 하면서 말이다.

<도쿄타워>라는 책이 있다. 릴리 프랭키라는 일본 작가가 쓴, 한 남자의 성장기 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속의 엄마는 아들이 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집에 오면 그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꼭 내 놓는다. 그건 된장에 박아놓은 채소인데, 무였던 거 같기도 하고, 가지나 오이였던 거 같기도 하고, 그 다였던 거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 엄마는 아들이 오면 주려고 그 채소들을 항상 그 엄마만의 방법으로 된장에 박아놓았다. 그리고 아들이 오면 그걸 꺼내 썰어 아들 밥상에 올리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음식에 대해 궁금증이 일곤 했다. 대체 어떤 맛일까.

된장박이 채소들 짭짜름하니 맛있지만...
▲ 된장박이 채소들 짭짜름하니 맛있지만...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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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 갔을 때, 그 책에서 읽었던 거 같은 음식이 있어서 사먹어 보았다. 그러나 갈치를 굽는 엄마를 이해하는 나는, 그 된장 바른 무를 먹으면서, 이 무에는 책에 나왔던 음식에는 있는 그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안다. 갈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동생은 모르는, 갈치를 통해서 전해지는 엄마와 나만이 느끼는 그 무언가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올립니다.



태그:#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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