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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신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환송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명박 신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환송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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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전략동맹을 선언하기에 앞서, "한미관계가 장기적인 동맹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이념과 정치논리에 의해 잠시 왜곡"되었다고 말했다.

'잃어버렸다는 10년' 특히 노무현 정부 5년간의 한미동맹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전략동맹은 노 정부의 공헌(?)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한미동맹 '복원'이나 '창조적 재건'이니 하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 뒤에 숨어있는 본질을 봐야 할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적 전문가와 언론이 노무현 시대의 한미동맹을 비난해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이념과 정치논리"에 따른 것들이었다.

일례로 문창극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 정책을 "청소년기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비꼬면서, 캠프 데이비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이제야 온전한 성인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보수파는 노무현 정부 때 마치 한미동맹이 무너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지금까지도 비난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 출신 전문가는 "한미동맹에 대한 노무현의 기여도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라고 말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일까?

물론 노무현 시대의 한미동맹에 대한 평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보수진영은 주로 노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는 식이었고, 진보진영은 주로 정책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솔직한' 평가는 어떨까?

불만 뒤에 숨어 있는 미국의 미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미동맹 재편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흔히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행정부와 의회 내에도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 재편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 국무부는 '2004 회계연도 업무 및 회계 평가 보고서'에서 2사단 재배치는 "목표 달성"했고, 용산기지 이전 합의는 "초과 달성(above target)"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2사단 목표 달성'이란 노무현 정부가 2사단 이전을 최대한 늦추기를 원했던 것을 무마하고 예정대로 조기 이전을 관철시켰던 것을 의미한다. 용산기지 이전 합의를 두고 '초과 달성'했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 따라 용산기지 이전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이전 비용 전액을 부담하기로 했던 것을 말한다.

지난 2004년 10월 26일 오후 윤광웅 국방장관과 주한미군 선임장교 자격인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2층 대회의실에서 용산기지 이전 포괄협정(UA) 및 이행합의서(IA), LPP 개정안 등 3개 협정에 대해 서명했다.
 지난 2004년 10월 26일 오후 윤광웅 국방장관과 주한미군 선임장교 자격인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2층 대회의실에서 용산기지 이전 포괄협정(UA) 및 이행합의서(IA), LPP 개정안 등 3개 협정에 대해 서명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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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한미동맹 재편 미국측 협상 대표를 맡았던 리처드 롤리스의 이중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언론 플레이를 통해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 재편에 협력하지 않는 것처럼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노무현 정부를 '반미'로 낙인찍는 데 악용되었다.

그러나 한미동맹 재편이 거의 마무리되자 롤리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2006년 9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였고 대단히 야심에 찬 계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빠른 시일 내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는 노무현 정부에게 '반미' 혐의를 씌웠다가 협상 결과에는 만족감을 드러내는 '이중 플레이'를 했던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대의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 측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마이클 그린의 발언이다. 2001년 4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맡아 한미관계를 총괄 지휘했던 그린은 지난 2월 1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를 의식한 반미 발언으로 미국을 당혹시켰다. 그러나 한미동맹에 대한 그의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 2월 현재 한미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안보 IMF'에 직면했던 노무현 정부

부시 행정부가 2006년 말에 대북정책을 전환하기 전까지 한미관계 갈등의 핵심적인 사유는 대북정책에 있었다. 북핵 재발 및 북미 갈등이라는 '안보 IMF'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었다. 노 대통령이 기회만 있으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려고 했던 이유이다.

노 대통령의 반복된 요구는 부시를 짜증스럽게 했고 북핵보다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더 우려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예방적 선제공격을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으로 채택했고, 그 대상에 북한도 포함시켰으며,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이 명확하지 않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보고, 노 대통령은 확인받고 또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수렁에 빠지고 이란 핵문제의 등장으로 중동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시점에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9·19 공동성명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직면하고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잇달아 실험하자, 노 대통령은 BDA 문제를 풀지 않는 부시 행정부에게 답답함을 드러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불쾌감을 나타냈다. 한미관계 갈등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지난 2005년 6월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지난 2005년 6월 11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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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그만큼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노무현 정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BDA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것 역시 노 대통령의 관점에서 볼 때, 풀 수 있는 문제를 부시 행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서랍 속에 두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 북핵 해결'을 선택하면서 이 문제는 풀렸다.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난의 핵심 포인트는 한미동맹보다 남북관계를 우선한다는 '오해'에 있다. '안보 IMF'에 직면한 노무현 정부가 선택한 핵심적인 전략은 남북관계가 아닌 한미동맹 우선이었다. 2003년 5월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을 북핵과 연계시켰고, 임기 초반 내내 핵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남북정상회담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 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김대중 정부 때 합의되고 시작된 사업 이외에 노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다. 그저 현상 관리 수준이었다. 김영삼 정부 임기 후반 때부터 시작된 대북 식량 지원을 최초로 중단한 당사자도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무늬만 햇볕정책'이었다는 비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던 것이다. 임기 말 2차 남북정상회담은 2·13 합의와 10·3 합의를 비롯한 6자회담 및 북미관계의 진전에 힘입었던 것이지, '냉온탕을 오락가락한' 노무현 정부 5년간의 대북정책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한미간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결국 대북정책을 바꾼 당사자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부시 행정부라는 것이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 수용, 주고받기식 협상, 북한에 대한 도덕적 비난 자제 등은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부정했던 클린턴과 김대중-노무현의 대북정책과 닮은꼴이다.  

노무현과 이명박, 얼마나 다른가

그렇다면,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동맹 정책은 얼마나 다를까? 부시도 바꾼 대북정책과 이명박 정부도 더 이상 거론하지 못하는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논외로 하면, 사실상 대동소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양 정상은 양국 국민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의 가치 증진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공동 노력키로 다짐했다."

"양 정상은 한미동맹이 위협에의 대처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자유 및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 증진을 위해 있다는데 동의하였다."

마치 이명박-부시 한미정상회담의 결과처럼 보이는 위의 두 인용문은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2003년 5월 15일)과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2005년 11월 17일)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 "내가 운전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D.C 북쪽 메릴랜드주 미 대통령 공식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 조지 부시 대통령을 옆자리에 태운 채 골프 카트를 운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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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은 노무현 정부가 토대를 닦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고 과언이 아니다. 전략동맹의 핵심이 한미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차원에서 동북아, 나아가 전세계로 확장하는데 있다면, 이러한 구상은 용산기지 및 2사단의 후방 재배치, 그리고 이와 연동되어 있는 전략적 유연성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끝날 운명이었다.

만약 노 정부 때 이러한 사안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미국과 씨름을 해야 하고, 국내 여론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전략동맹의 토대를 닦아준 당사자는 역설적이게도 '자주를 천명해 한미동맹을 무너뜨렸다'는 노무현 정부이다. 침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세계 최대 규모로 이라크에 파병한 노무현 정부의 빗나간 선택 역시 한미동맹의 '세계화'의 길을 터 주었다.

이명박 정부여, 대한민국 안보의 '마지노선'을 지켜라

물론 한미동맹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은 몇 가지 사안들이 있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는 한발을 걸치면서도 다른 한발마저 걸치진 않았다. 엄청난 비용과 남북관계 및 주변국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및 북한 내 급변사태에 대비한 5029도 다 내주지는 않으려고 했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대만 사태에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부시 행정부는 분개했지만, 미중간의 무력충돌에 휘말리면 한국의 생존도 위태로워진다는 '상식'을 노무현 정부가 저버릴 순 없었다.

5029도 개념계획으로 유지하면서 작전계획으로 격상하는 것은 난색을 표했다. 둘 모두 실행 계획이라는 점에서 '오십보 백보'이지만, 작전계획이 되면 함께 훈련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에 대해 난색을 표한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중대하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확보 및 질서 회복을 이유로 북한 내 급변사태에 개입하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내 일각에서는 중국의 부상과 북한 내 급변사태를 대비해 한미 전략동맹을 추진하려고 한다. MD와 PSI도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이 있으니 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들이다. 정부가 '전략동맹'이라는 위험한 환상에서 깨어나 무엇이 한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고 튼튼하게 하는 일인지, 자문해보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화네트워크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peacekorea.org 를 방문해주세요.



태그:#한미동맹, #이명박 ,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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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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