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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아이들과 함께 먹는 저녁밥. 늘 회식이다 술자리다 해서 2, 3주에 한 번 아이들과 저녁을 먹을까 말까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였다. 그래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는 저녁밥이 그저 향긋하기만 하다.

이제 겨우 유치원생인 아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아이는 아빠와 먹는 저녁밥이 신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는 식구가 많아 온 가족이 모여서 먹는 저녁이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요즘엔 각 가정마다 가족이 고작 서너 명인지라, 소담하면서도 오순도순한 분위기 속에 저녁을 먹을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 애 엄마는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있고, 나와 아이들은 숟가락을 놀리며 저녁을 먹는다.

오늘의 주 메뉴는 조기구이다. 나는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열심히 생선살을 발라준다. 백설기처럼 하얀 생선살은 부서질 듯 위태하게 내 젓가락에서 아이들의 숟가락으로 이동한다. 아이들은 유독 하얀 생선살을 좋아한다. 간간히 나도 내 몫의 생선살을 먹지만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생선살을 발라주다 보면 어느새 접시에 남겨진 것은 해체된 생선의 뼈다귀와 대가리 뿐이다. 그럼 그 생선대가리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고, 나는 젓가락을 헤집으며 생선대가리에 붙은 가녀린 살을 조금씩 떼어먹는다. 이때 날아오는 아들의 한마디.

"아빠는 왜 머리만 먹어? 머리가 그렇게 맛있어?"
"응, 맛있어. 너도 먹어볼래."
"싫어!"

아들은 손사래를 치고 나는 껄껄 웃으며 생선대가리를 연신 분해한다. 어느 정도 생선대가리를 정리하면 저녁밥은 마무리되고,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보러 TV 앞으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하면서도 감동적인 옛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엄마가 없는 단출한 어느 시골집이 있었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인지라 어쩌다가 먹는 단백질은 몇 마리의 생선이 전부였다. 그 집에는 딸만 둘이었는데, 아버지가 가끔 생선을 장에서 사와 아이들에게 구워주곤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온 생선을 맛있게 먹곤 했는데, 생선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가 절대로 생선살을 먹지 않는 것이 너무 궁금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항상 생선대가리만 먹었다.

가끔씩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아버지는 생선대가리가 제일 맛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딸들은 아버지가 생선대가리를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시골에서 자란 터라 딸들은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고 아버지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딸들이 인근의 시골로 다들 시집을 갔다. 딸들은 가끔 친정나들이를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생선구이를 반찬으로 내왔고 역시 생선대가리만을 맛있게 먹었다. 

복사꽃이 피던 어느 장날. 큰 딸과 작은 딸 둘이서 친정 근처의 장터에서 만나게 되었다. 장터에서는 갖가지 어물을 팔았는데, 둘이서 잠시 친정에 가기로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친정에 가는 터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해서 선물을 사 가기로 했다. 그래서 두 딸은 어물전에 가서 이것저것을 골라 상자에 예쁘게 포장을 했다. 시댁에 가져갈 상자와 친정에 가져갈 상자를 구분해서 말이다.

두 딸은 흡족한 기분으로 친정집 싸리문을 밀었다. 아버지가 이 선물을 보면 분명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좋아할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아버지는 두 딸을 반갑게 맞았고 세 사람은 생선을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생선대가리만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두 딸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배불리 저녁을 먹은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쉬운 맘을 뒤로 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딸들은 헤어지면서 아버지에게  커다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이게 다 뭐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딸들은 그 상자를 툇마루에 놓아두곤 종종 걸음으로 싸리문을 나섰다. 그 딸들의 뒷모습을 보며 흡족한 기분이 된 친정아버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딸들이 남겨놓은 상자를 열어보게 되었다.

상자는 겹겹이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도 야무지게 포장했는지 궁금해 했다. 마침내 포장을 다 벗겨보니 갑자기 비린내가 진동했다. 아하, 애들이 아버지 줄려고 생선을 샀구나. 아버지는 이제 나도 딸들 덕에 생선살 한 번 실컷 먹겠구나 하며 뿌듯한 기분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그 상자 안에는 조기 대가리와 고등어 대가리만 잔뜩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어이가 없어진 친정 아버지. 그 생선대가리를 보며 웃음 반, 울음 반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종이쪽지가 하나 있었다. 쪽지에는 어눌하면서도 서툰 한글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부지, 아부지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대가리만 골랐어예. 몸통은 시댁에 줄려고 따로 떼 놨어예. 이거 맛나게 드시고 우리 생각 많이 하소.'

친정 아버지는 어렵사리 그 종이쪽지에 쓰여 진 글자를 해독하고 난 후, 한편으론 혀를 찼고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했다. 문디 가시나들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예전, 나는 이 이야기를 우리 어머니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때 였다. 여동생과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느 잡지에서 본 이 이야기를 해주니 어머니는 연신 웃음을 터트리셨다. 그 딸들이 너무 순진하다면서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 우리도 생선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생선대가리에 붙은 살을 먹고 계셨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아빠는 당연히 생선대가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나 이   놈들도 결혼해서 아빠에게 줄 선물로 생선대가리를 잔뜩 들고 올지도 모르겠다. 참 신기하다. 왜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내리 사랑을 하는 것일까. 이런 내리 사랑을 하는 것이 과연 인간의 본능일까?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 아내는 절대로 생선대가리를 먹지 않는다. 대가리가 남으면 음식물 쓰레기 늘어난다고 나에게 대가리 처분을 맡기기 마련이다. 그럼 난 씁쓸하면서도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 생선대가리를 해체한다. 최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나는 오늘도 생선대가리를 처분한다. 비록 아이들이 나중에 생선대가리를 잔뜩 짊어지고 오는 일이 생길지라도 나는 생선살을 애들에게 주고 대가리을 먹어야 한다. 예전 나에게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 시골집의 친정 아버지가 딸들에게 했던 것처럼. 왜냐하면 나 역시 아버지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이 놈들아, 아빠도 하얀 생선살을 실컷 먹고 싶다!'


#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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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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