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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이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 오르세 미술관 앞의 레드뮤제 식당. 음식 맛이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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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Muse d'Orsay) 앞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늘을 찾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는 신영이에게 박물관 앞 매점에서 물을 사다 주었다. 미술관 안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려고 줄을 섰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포기하고, 한참을 그림만 감상하다가 나왔다. 나도 배가 고팠고 신영이도 배가 고팠다.

나는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 정보를 한국에서 수집해서 왔지만, 이 순간에 그 정보들은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당장 배가 고팠고, 분위기 있고 맛있는 레스토랑보다 오르세 미술관 앞에 있는 식당을 찾아야 했다. 파리 식당 중에는 별표시가 많지 않아도 맛있는 식당이 많이 있으며, 나는 그런 식당이 오르세 미술관 앞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르세 미술관 입구에서 나와서 전후좌우를 살펴보았고, 사람들이 가득 찬 식당이 주변에 있는지를 보았다. 미술관 입구 남쪽의 길 건너에 레드뮤제(Les Deux Musées)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당에는 야외 좌석까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식당은 카페(Café)라고 적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주로 커피만 마시는 '카페'는 아니다. 프랑스 전국 어디에나 있는 프랑스의 카페는 밤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고, 프랑스인들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친밀한 사교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음료와 와인 등을 즐길 수 있고, 점심은 정식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어서 프랑스의 식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식당의 실내는 햇살이 강한 외부에 비해 너무 시원하고 편안했다. 고미술품 등으로 우아하게 내부를 치장한 고급식당은 아니었지만, 현대적인 목재 인테리어로 장식한 깔끔한 식당이었다. 식당의 아저씨는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우리를 자리에 건네준 후 우리에게 메뉴판을 주었다.

가볍게 음식 먹을 준비를 하는 오르되브르이다.
▲ 야채 샐러드 가볍게 음식 먹을 준비를 하는 오르되브르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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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점심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가볍게 음식 먹을 준비를 하는 오르되브르(hors d'oeuvres)를 주문한다. 오르되브르는 불에 요리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하여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다. 나는 오르되브르로 토마토와 상추, 옥수수, 삶은 달걀, 얇게 저민 햄과 치즈를 버무린 샐러드를 주문했다.

프랑스에서는 샐러드를 먹을 때에 나이프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들어서 포크만을 이용해서 샐러드를 먹었다. 서구화된 우리 식단에서도 흔하게 접하는 샐러드이지만 그 맛은 깔끔했다. 재료가 방금 수확한 듯 신선하고 기름에 버무려진 채소와 야채의 맛이 군더더기가 없었다.

식당 아저씨가 나에게 와인을 마실 것이냐고 물었다. 식사 전에 마시는 한 두 잔의 술이나 음료를 뜻하는 아페리티프(Aperitif)는 주문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점심부터 와인을 마시면 여행 다니면서 피곤해져! 저녁에 먹지~"라고 했다.

아내의 뜻에 따라 프랑스의 와인은 저녁 식사 때 음미하기로 했다. 와인을 주문하지 않고, 그 대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탄산 오렌지주스인 오랑지나(Orangina)를 주문했다. 노란 병이 예쁜 이 음료는 탄산음료라는 명칭이 헷갈릴 정도로 과육이 많이 들어가 있었고, 더운 날의 갈증을 날려줬다. 아페리티프는 식욕촉진을 위한 음료지만, 나에게는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평범한 주스가 괜히 더 품격이 있어 보이는 것은 오렌지주스를 예쁜 유리잔과 함께 내 왔기 때문이다.

"아빠!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닭고기 요리를 주문해요! 프랑스에서는 일요일 고기 요리로는 닭고기를 먹는데요!"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을 탐독한 신영이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주요리로는 닭고기 요리인 꼬끄(Coq) 요리를 주문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먹을 요리로 무언가를 더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프랑스 요리에 대한 나의 지식은 짧은 편이었다. 그 나라 요리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웨이터에게 스스럼없이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나는 닭고기 요리 외에 소고기 요리를 함께 주문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웨이터는 주요리인 닭고기 요리와 소고기 요리를 같이 주문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답변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전채 요리 중에서 한 가지 요리를 주문하기로 했고, 아내가 좋아하는 차갑고 익히지 않은 연어 요리를 주문하였다. 웨이터 아저씨는 약간 망설이는 내 옆에서 전혀 재촉을 하지 않고 여유 있고 친절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레몬맛이 감도는 연어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 프랑스의 훈제연어 요리. 레몬맛이 감도는 연어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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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과 지중해에 접한 프랑스는 풍부한 해산물 중에서도 연어의 인기가 높다. 프랑스의 훈제 연어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길게 자르지 않고 버무린 듯이 뭉쳐져 나왔다. 접시 위에 연어를 배치한 장식도 너저분하지 않고 깔끔했다. 마요네즈가 들어간 시큼한 드레싱을 연어 위에 뿌려 먹었더니 시큼하고 상큼했다.

연어는 레몬즙에서 한숨을 자고 나온 듯 레몬 맛이 약간 감돈다. 훈제 연어와 함께 레몬 한 조각이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훈제 연어에 어울리는 소스는 레몬즙이다. 연어의 색깔이 약간 희뿌연 것도 레몬즙에 재웠다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본 음식을 먹기 위해서 입맛을 돋우는 신맛이 입에 퍼지고 있었고, 입에 들어간 연어는 살살 녹고 있었다.

음식은 우리가 주문한 순서대로 나왔고, 나는 음식을 빨리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주요리로 나온 닭고기 요리는 닭 반 마리에 소스를 바르고 약간 구운 것이다. 어떻게 구웠는지 전혀 바삭거리지 않고 맛이 부드럽다. 프랑스에서는 닭고기를 손으로 잡고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닭고기를 나이프로 자르고 포크로 찍어 먹었다. 닭고기에서는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는 허브의 맛이 났고, 감자튀김에서 세이지 향의 허브냄새가 났다. 프랑스에서는 음식과 허브 향의 조화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일요일에 닭고기를 먹는 것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전통이다. 백년 전쟁 이후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던 프랑스를 재건한 앙리 4세(Henri IV, 1553~1610)는 어느 날 백성을 직접 둘러보러 나갔다가 백성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앙리 4세는 모든 백성이 일요일만큼은 꼭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라고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 후 프랑스의 일요일 식사에는 닭요리가 오르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일요일에 주로 먹는 고기요리로서 소스 맛이 뛰어나다.
▲ 닭고기 요리. 프랑스에서 일요일에 주로 먹는 고기요리로서 소스 맛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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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에서는 전혀 노린내가 나지 않았다. 붉은 고기에 적포도주를 사용하듯이 빛깔이 흰 닭고기를 구울 때에 닭 위에 백색 와인을 뿌렸을 것이다. 닭요리를 먹으면서 와인을 마시는 것도 닭고기의 노린내를 없애고 더 감칠 맛이 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노린내를 없애면서 와인을 즐기는 것은 한 마디로 뛰어난 조리법을 보여준다.

닭요리 위에 얹혀진 흰색의 슈프림 소스(Supreme Sauce)는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소스의 맛이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닭고기 요리의 맛을 돋우고 있다. 전세계 요리 중에서도 프랑스 요리를 세계 최고로 인정해 주는 것도 프랑스 소스가 수백 가지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고 맛도 일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향료가 녹아들어 간 슈프림 소스가 이 식당 주방장의 경험이 녹아있는 일품 소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섬세한 소스는 닭고기 요리를 꽃피우고 있었다.

나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을 차례로 맛보았다. 나는 빵으로 남은 소스를 남김없이 발라 먹었다. 나의 가족은 여유 있게 음식을 즐기면서 빵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그만큼 배도 고팠고 음식의 맛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코스로 주문하면 음식을 많이 주문하는 것 같지만 나온 음식을 조금씩 맛보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프랑스 요리 코스를 다 주문하지 않고, 본요리 후에 나오는 치즈와 달콤한 아이스크림 코스는 생략하였다.

예상과 다르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 식당의 웨이터 아저씨들. 예상과 다르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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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페 식당은 업종의 성격상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만 운영할 수 있는 식당이다. 이 프랑스인들은 중세의 귀족들이 즐기던 요리를 조리하기도 하고, 일반 가정에서 먹던 요리들을 내오기도 한다. 이 식당의 웨이터 아저씨들은 음식 서빙이 늦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점심시간 때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는 우리나라 식당만큼이나 이들의 일손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책에서 읽었던 정보들과 다른 부분이었다.

나는 무더운 햇볕 속으로 나가기 전에 미네랄 워터를 주문해서 한 잔 마셨다. 입속에서는 방금 먹은 음식들의 뒷맛이 감돌고 있었고, 나는 물을 마시면서 그 맛을 다시 연상했다. 배속에서는 일품요리를 먹은 만족감과 배가 부른 포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역사가 깃든 명품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제일 행복이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의 여행기록 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파리, #레드뮤제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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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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