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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굴다리의 빈의자, 그리고 저 밝은 곳의 유채
▲ 빈의자 굴다리의 빈의자, 그리고 저 밝은 곳의 유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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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뜨거운 여름같은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반소매가 낯설지 않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는 이들이 많은 하루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이런 날엔 연록의 이파리가 올라오는 산자락을 거닐거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면 딱 좋을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네 일상이라는 것이 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다면 무슨 삶의 낙이 있을까 싶다.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서있는 것, 그것도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언제나 내가 앉을 수 있는,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의자가 있다. 빈 의자, 그냥 앉는 사람이 임자인 빈 의자가 넉넉해 보인다.

굴다리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행인
▲ 쉼 굴다리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행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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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는 빈 의자대로, 누군가 쉬고 있는 의자는 그 의자대로 편안하다. 빈 의자같은 사람, 누구나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일까?

살아가다보면 늘 내 맘에 차는 이들만 받아들이고, 내 잣대로 가지치기를 하며 살아간다. 삶의 무게를 덜어볼까 술에 건아하게 취한 이가 벌떡 누워도 그냥 허허로이 받아들이고, 추운 겨울 날에는 하늘에서 내린 눈이 잠시 쉬어가자해도 마다하지 않고, 가을엔 낙엽이 쉬어가자고 해도 마다하지 않는 의자.

의자에 앉아 봄을 만끽하는 연인
▲ 연인 의자에 앉아 봄을 만끽하는 연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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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절, 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함께 앉아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 혹은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의자는 우리들에게 연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빈 의자에 앉아 여름같은 봄날, 도심의 일상을 카메라로 스케치한다. 가만히 앉아서 한 곳을 바라보아도 지나치는 이들로 인해 풍경이 변하고, 잠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어떤 눈으로, 얼마만큼의 높이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이고, 나쁜 세상이라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 어딘가에는 좋은 구석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기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무더운 봄날
▲ 분수대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무더운 봄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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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포말같은 분수대의 물길이 낯설지가 않다. '첨벙!' 뛰어들어가도 좋을 만큼 더운 날씨, 어느 새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는가!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냥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며 현실 그대로를 즐기고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점점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즐기지 못하고 앞뒤를 재며 살아간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오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 여기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 아이들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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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우리들에게 아이들을 선물로 주신 이유는 그들에게 배우라고, 그들을 보면서 살아가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고 했으니 그들이야말로 삶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배워야할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더 배우면 배울수록 지식을 늘어날 지언정 지혜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한참을 본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나도 동심으로 돌아간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뜨거운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 좋은 굴다리
▲ 굴다리 뜨거운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 좋은 굴다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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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게으르게 살고 싶다. 조금 편안하게 살고 싶다. 경쟁하지 않고 그냥 내 삶의 속도대로 살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사무실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날씨 좋은 날이면 그냥 동해바다나 산이나 골짜기에 다녀와서 밤을 새워서라도 그날 할 일을 하면 어떨까?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길 위에서 스치고 만난다. 휴일이라 걸음걸이에 여유가 있어보인다. 빈 의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잠시 쉬었다 가세요. 더디가도 빨리가도 오늘 주어진 시간은 똑같아요."

여름같은 봄날, 굴다리에 있는 의자에 앉아 도심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일도 참 재미있다.

봄날 하루가 또 이렇게 간다. 여름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듯하다. 조금만 천천히 와라, 여름아!


태그:#빈의자, #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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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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