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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를 나와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 안에는 그 동안의 소록도의 역사와 사진, 유물들이 오롯이 전시되어 있었다. 훗날 소록도의 역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와 보면, 한눈에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생활자료관은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했다.

 

전시실을 나와 중앙공원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름다운 천국의 섬을 만들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아픈 상처로만 깊이 남아있는 중앙공원.

 

그 공원 한가운데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진 구라탑이 보인다.  구라(救癩)는 '나병에서 구원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구라 탑에 묘사된 인물상은 성경의 대천사 미카엘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구라탑에서 사진 한컷하고, 나병시인 한하운님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는 넓은 바위 앞에 섰다. 시비는 화순 운주사의 와불처럼 대지를 머리에 이고 큰대자로 누워있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30명의 환자가 사망하고 2척의 배가 침몰된 한이 맺힌 돌이다. 결국 42년 나환자들을 강제 노역시키던 수호천사 일본인 원장은 살해되었고(수호원장 동상 표지판이 시비 위에 있다), 그 후 돌은 한하운 시인의 시비로 사용되었다.

 

나병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세상 사람들과 유리된 채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고독 속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이 그리워 보리피리를 부는 한하운 시인(1919 ~ 1975)은 ‘보리피리(1949)’ ‘소록도 가는 길(1960)’등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수편의 시로 표현했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한하운, 그는 어느날 갑자기 병에 감염되어 한센병 환자가 되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고통을 시로 썼으니, 시를 읽는 동안 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이도 그의 속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시는 너무나 솔직하고, 오히려 삶에 대한 강인함 마저 느끼게 한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 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피-ㄹ닐니리

 

전라도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고/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이 밖에도 공원내에는 일본인이면서 조선 환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 키치 원장'의 창덕비, 벨기에 의사와 간호사 공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숲을 걸어 내려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곳은 중앙공원내에 있는 일명 가톨릭공원이다. 이곳은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의 역사를 돌이나 나무, 꽃 등으로 잘 묘사해 놓은 곳으로 해설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여 한센인 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랑으로 아픔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강한느낌을 받는다.

 

교황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석등,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상징하는 고인돌과 철쭉나무, 촛대를 상징한다는 녹나무, 벽돌공장 아궁이 모양을 하고 있는 특이한 향나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나한송, 기타 성모마리아 상, 향탑 등도 특별히 눈길을 끈다.

 

예전 벽돌공장 굴뚝이 있었던 자리에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세운 후 죽은 영혼의 소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많은 나환자들이 이 십자가상 앞에서 애절하게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 잔디밭에서 준비해 온 음식 등으로 즐거운 간식시간을 가졌다. 흐드러진 벚꽃 아래에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손길들 덕분에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어로 대화하고, 정담 나누면서 건강한 시간 보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중앙공원은 그야말로 슬픈역사 위에 핀 천국동산이다.

 

김영임 시인이 손수 담아 온 홍어무침과 김치, 김현숙 사무국장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부침개와 돼지고기, 과일, 떡, 술, 음료, 안주, 기타 오늘의 행사를 후원해 주신 많은 분들에 대한 광고도 빠뜨릴 수 없는 감사의 아름다운 미학이다.

 

한센병은 '한센씨병(hansen's disease)'이라고도 하는데 노르웨이의 의학자인 한센(g.a. hansen)이 1873년에 이 병의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치료가 불가능했던 예전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병(天刑病)'이라 부르기도 했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활동성 양성인 경우만 전염이 되며, 양성인 경우도 약을 복용하면 음성으로 전환되기에 전염률은 희박한 상태이다. 1941년 특효약 dds가 발명되면서 완치가 가능해졌으며, 초기발견시에는 쉽게 낫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소록도와 녹동을 가로 흐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어져가는 소록도의 모습이 애잔하다. 해마다 5~60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신다고 한다. 언젠가는 아픈 기억을 간직한 모든 환자들이 다 없어지고, 모든 사실은 흘러간 역사로만 남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들의 천국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다만 알지 못하고 절망하고 죽음의 급한 물살에 몸을 내던지고 있을 뿐이다. 잔잔한 감동을 억누를 수 없는 듯 우리 일행들은 소록도에서 슬픈 역사 속의 ‘우리들의 천국’을 가슴에 새기며, 광주로 발길을 돌렸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소록도. 어느 여행객의 말처럼 피렌체에서는 단테의 생가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괴테의 생가를 가 보아야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소록도를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소록도를 나와 녹동항 수협건물 한켠에서 자리펴고 늦은 점심을 하였다. 이곳 고흥 녹동이 근무처인 사홍만 시인의 싱싱하고 푸짐한 회감 서비스 덕분에 우리 일행들은 배부른 식사를 하면서 문우간 친목도 다지고, 정보도 교류하고, 정담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후4시 광주로 올라오는 길에 확 트인 고흥만 유채 밭에서 아이들처럼 부푼 가슴으로 봄 향기 깊이 호흡하며, 동심의 세계에 잠시 몸과 마음을 맡겼다

 

이곳은 매년 4월이면 전남 고흥만 방조제가 온통 샛노란 유채꽃 물결로 뒤덮인다. 유채꽃길은 두원면 풍류에서 도덕면 금호를 연결하는 방조제를 따라 길이 2.8㎞, 너비 15-20m 가량 하단부 빈터로 약 10만㎡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가슴이 온통 노란 희망, 사랑의 마음으로 깊게 물든다.

 

오는 차속에서도 즐거운 시간은 계속되었다. ‘산유화’‘진달래’‘파랑새’‘보리밭’등 서정시와 우리네 정겨운 가곡 등의 가사를 감성적으로 낭송하며, 구성진 노래로 풀어내는 김재민 시인의 뛰어난 음악성이 우리들의 가슴을 잔잔한 감동으로 적셨다.

 

또한 이명란 시인의 끊임없는 웃음에너지 발산과 시 낭송,  동시작가와 유화작가와의 신랑각시 놀이, Y담 등도 이번 여행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웰빙 보약이었다. 눈빛이 곱고, 영혼이 맑은 문우들과 함께한 건강·우정·행복 충만한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소록도는 자가용으로는 고속도로로 경부나 중부고속도로 타고 오다 호남고속도로로 내려오다 광주를 지나서 순천까지 내려가서 순천에서 고흥으로 가는 길과 광주에서 순천방향으로 고속도로 타고 내려오다가 송광사로 나가는 나들목을 건너 벌교를 거쳐 고흥으로 가는 길이 있다. 


태그:#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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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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