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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재계하고 순례에 나서다

출발 며칠 전, 양금렬씨에게 전화가 왔다. 4월 5일 집안 어른도 성묘하기 위해 고향에 오시므로 하루 당겨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다. 이미 전해산 의병장 후손과 약속한 처지라 일정을 바꿀 수가 없지만, 가능한 그날 오후 4~5시까지는 화순으로 가겠다고 부탁을 들어주었다.

양회일 의병장 순의비
 양회일 의병장 순의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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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병전적지 순례를 떠나는 날은 일찍 일어나 가능한 목욕재계한 뒤 출발한다. 거룩한 영혼의 발자취를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더듬고자 하는 정성 때문이다.

4월 5일, 그날도 그랬다. 서울 아들집에서 자고는 이른 아침 여장을 꾸린 뒤 목욕탕에 가서 몸을 닦고, 곧장 강남고속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이날은 토요일에, 한식에, 식목일까지 겹치고, 날씨마저도 ‘어매 환장’ 하도록 쾌청한 탓으로, 고속버스 승객이 엄청 몰렸다.

간신히 8시 버스표를 구해 차에 오르자 내가 마지막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궁내동 톨게이트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남원에는 예삿날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볼 일을 다 본 다음 광주로, 광주에서 화순행 버스를 갈아타고 이양면에 도착하니까 오후 6시가 넘었다.

양회일 의병장 증손 양금렬씨와 집안어른 양동하(83) 전 능주 전교 그리고 화순군 관계자 등 예닐곱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처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일행은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쌍산의소로 향했다. 이야기는 차 안에서나 늦은 밤에 들어도 되지만 전적지는 어둠이 깃들면 볼 수 없지 않는가.

솔직히 나는 동승한 이순도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와 양동하 전교, 양금렬씨가 번갈아 들려주는 쌍산의소 유래와 양회일 의병장 행적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짙어가는 어둠에 더 애간장이 탔다. 별도 플래시를 준비치 않은 게 몹시 원망스러웠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양금렬씨의 소렌토 승용차는 20여 분 뒤 쌍산의소 들머리 순의비(殉義碑) 앞에 멈췄다. 나는 카메라 ISO 감도를 최대한으로 높이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이미지를 검색하자 다행히 화면이 잡혔다.

중국대륙 항일유적지 순례 길 가운데 랴오닝성(遼寧省) 왕청문소학교에 있는 양세봉 장군 석상을 찾아갔을 때도 이미 해가 저물었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로 조리개를 최대한 연 뒤 기도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슬라이드 필름이라 즉석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귀국한 뒤 곧장 필름을 현상소에 맡긴 뒤 다음날 뚜렷한 음화를 확인하고서 얼마나 기뻐했던가. 

어둠에 깔린 쌍봉사 원경
 어둠에 깔린 쌍봉사 원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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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요새지 쌍산의소

다시 차를 타고 쌍산의소로 가는 길에 쌍봉사라는 절이 보였다. 운전대를 잡은 양금렬씨는 이 절이 신라 경문왕 때 철감 선사 도윤이 창건한 절로, 철감 선사의 부도와 부도비 등 볼거리가 많은 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말 의병들이 이 절에서 거병도 하고, 배고프면 내려와 신세도 많이 진 곳이라고 하면서 차를 세웠다. 나는 급히 카메라에 담기만 하고 서둘러 쌍산의소로 달려갔다.

순의비를 출발한 지 30여분 만에 마침내 쌍산의소 막사 터에 이르렀다. 18시 55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분지인, 이곳은 해가 넘어간 지 오래다. 쌍산의소의 가장 중심인 막사 터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내 얕은 군사지식으로도 아주 기가 막힌 천연 요새지였다.

쌍산의소 막사 터 앞에서(왼쪽부터 양회인 이양면번영회장, 양회풍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양동하 전 능주 전교, 이순도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양회천 이양면전 총무계장, 양금렬 양회일 의병장 증손)
 쌍산의소 막사 터 앞에서(왼쪽부터 양회인 이양면번영회장, 양회풍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양동하 전 능주 전교, 이순도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 양회천 이양면전 총무계장, 양금렬 양회일 의병장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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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인은 구한말에는 의병들의 요람지였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빨치산들의 은거지로도 쓰였다고 귀띔한 바, 솔직히 나는 이렇게 의병 유적지가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된 것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렇게 장엄한 의병유적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일정을 촉박하게 잡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거듭 유적지의 장엄함에 감탄하자 이순도 화순군 문화유적해설사는 신이 나서 당신의 실력을 한껏 뽐냈다. 마치 학생이 열심히 들으면 열강 하는 선생님처럼. 나는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 속으로는 이곳에서 돌아가신 무명 의병들의 명복을 빌었다.

“지난해 여름(2007. 8. 3.), 이곳이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문병란 시인이 의병에게 바친 헌시도 있습니다.”

앞장 선 양금렬씨의 말이었다.

명예를 탐하지 않았기에

어둠이 깃든 쌍산의소 막사 터.
 어둠이 깃든 쌍산의소 막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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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사랑
- 쌍산의소 항일의병에 부침            

명예를 탐하지 않았기에
호화로운 무덤이 필요 없었고
황금을 구하지 않았기에
빛나는 청석(靑石)을 원하지 않았다.

족보에 새기고
사서에 장식하고
공과 훈을 원하지 않았기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슬프지 않았다.

캄캄한 하늘 아래
그 어느 꽃보다 더 눈부신 꽃
양귀비꽃 같은 그 붉은 마음을 안고
차마 눈 뜨고 바라보기마저 현기증 나는
저기 저 깨끗한 고결한 무덤 속 침묵을 보아라.

산 사람들 이욕에 눈멀어 변절하고
육신 아픔에 못 이겨 굴복할 때도
썩어 그 향기 진흙 속 연꽃으로
너무도 당당한 백골의 울부짖음
날이 갈수록 고와지는 저 숭엄한 증언을 들으라.

목숨보다 소중한
내 조국 내 고향
그 향기론 흙 속에 묻혀
날로 고와가는 그 붉은 마음
여기 영원히 썩지 않는 사랑이 있다.

   2007. 9. 14. 서은(瑞隱) 문병란 삼가 칭송함.

덧붙이는 글 | 헌시 <불멸의 사랑>을 게재토록 허락해준 문병란 선생에게 감사드립니다



태그:#호남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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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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