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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내 지역 연방 국회원과 주 국회의원의 이름은 물론 그들이 어느 당 소속인지도 모른다. 투표가 의무인 탓에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는 했지만, 정작 관심을 두지는 않은 탓이다.

 

이곳에선 행정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 일이 거의 없다. 필요하면 전화나 우편으로 대부분 해결한다. 그러나 관공서가 아닌 생활 현장에서 공직자들을 접촉할 기회는 의외로 많다. 일 처리가 늦은 것이 큰 흠이지만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찾아오는 호주의 대민 접근 방식은 내게 신선함을 주었고 때로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다.

 

생활 현장에서 공직자를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만약 한국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퍽이나 유사한 경험들이 떠올라 많은 것을 비교해보게 됐다.

 

다음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사실들이다. 한국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참으로 바람직한 제도와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소개한다. 참고로 나는 호주의 우월성을 주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어떤 제도나 그 제도를 운영하는 공무원들의 자세에 따라서는 삶의 질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구청 검사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삿짐을 푼 후 수영장에 울타리를 설치해야 했다. 유아나 어린이 익사 사고가 빈번해지자 강제 규정이 생긴 것이다. 원래는 면허를 가진 직업인이 해야 하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재료를 사다 내가 직접 설치했다. 구청에 설치 완료를 연락하자 검사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하필 이날 자동차 정비 예약이 있었고 아들은 오전 수업뿐이어서 점검시간인 오전 11시를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사정에 따라 다음으로 연기할 수도 있었다).

 

검사관이 준공검사를 오는 날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돌아오다 보니  20분이나 늦었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이 변명의 여지 없는 실례인 것이 이곳의 문화이고 보면 나는 수검 자세부터 불합격이었다. 검사관이 그대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뜻밖에 검사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할당된 시간은 30분이다. 10분 더 기다려 보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 분위기로 점검이 시작되었다. 검사관은 줄자로 울타리 눞이를 재기 시작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규정 높이보다 5센티 미달이다.”

 공연한 트집이 아니다. 규정을 보여주며 고개를 젖는 표정엔 불가 판정이 역력했다.

 

 “ 내가 직접 설치했다. 그런 규정이 있는 줄 몰랐다. 콘크리트를 부수고 다시 설치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집엔 5센티가 문제될 어린애가 없다. 여유가 생기면 바닥을 타일로 바꿀 예정인데 그때 규정 높이를 어김없이 유지하겠다.”

 검사관은 난감한 듯 규정집을 넘겨가며 무언가를 찾았다. 이리저리 재보며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바닥이 움푹 파인 곳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재면 되겠군.”

 그는 움푹 파인 곳에 줄자를 비스듬히 뻗더니 잠금쇠와의 거리를 규정 높이 120센티에 억지로 맞추었다. 그리고 시원스럽게 준공 검사에 서명해주며 그 밖의 다른 규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다음 행선지가 어딘가? 아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정비소에 맡겨 차가 없다.”

 아직 영어에 익숙지 못한 아들이 학교가 파한 후 혼자 쓸쓸히 남아 나를 기다리며 허둥대는 모습이 문득 떠올라 엉겁결에 터져나온 소리다.

 “고든 구청으로 간다.”

 “ 그럼 날 센아이브스까지만 데려다 줄 수 있겠나?”

 “ 타라.”

 

검사관은 나를 도중에 내려준 것이 아니라 2키로나 벗어나 아들마저 데리고 전철역 고든까지 데려다 주었고 우리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쉽게 귀가할 수 있었다.

 

 나는 이날 수검자로서 세 가지 비례를 범했다. 검사관을 20분이나 기다리게 했고, 규정에 어긋난 설치를 통과시켜달라 억지를 부렸고, 그리고 내 편리를 위한 교통수단을 요구했다.

이것은 역으로 검사관이 나한테 저지를 법한 일이고 나는 수검자로서 다소 불평이 있다해도 표 안나게 해줘야 했을 일이다. 나는 이날 공무원을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운전면허 시험관

 

호주에서 운전면허 시험은 응시자가 가져온 차에 시험관이 동승하여 30분간 일반 차량에 섞여 도로를 주행하는 방식이다. 이 동안 시험관은 운전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을 지시하며 점수를 매긴다. 우선 차선의 판단은 물론 교통표지대로 운전해야 하며 주차 요령도 숙달되어야 한다.

 

아주 빈틈 없는 운전 능력을 요구하므로 현지인은 물론 이민자는 생소한 교통표지 때문에 처음 탈락은 기본이고 세 번은 보통이다. 심지어 다섯 번 넘게 치른 사람도 드물지 않다. 한번 치르는데 만만치 않은 응시료는 물론 시간 낭비와 아울러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생각해보라. 응시자와 시험관이 30분간 누구도 감시할 수 없는 격리된 공간에서 주행하며 단 둘이 치르는 쉽지 않은 시험이다. 그렇다면 어떤 비리의 유혹이 꿈틀거릴 법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어림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몸에 배인 부패 근성을 다 털어내지 못한 어떤 이민자가 불법적인 일을 시도하다가 시험관의 고발로 법정에 섰다는 기사를 수년 전에 한 번 읽은 것이 내가 아는 불미스러움의 전부다.

 

교통법규 준수와 운전 숙달 정도를 항목별로 감점해나가면서 합격 여부를 혼자 결정해야 하는 시험관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그것은 지금의 수험자는 물론 애매한 사람들마저 피와 죽음의 불행까지 몰고 올 수 있는 엄청난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전 면허가 아니라 살인 면허인 것이다. 감시인이 따로 동승하지 않아도 부패가 발 붙이지 못하는 이 제도야말로 성숙한 국민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다 하여도 3년을 더 실습중이라는 P자 표지를 달고 다녀야 완전한 면허를 취득한다. 이런 운전면허 제도에 대한 믿음이 호주의 교통사고율을 현저히 낮추는 이유라고 나는 단정한다.

 

교통경찰  

 

새벽 3시에 청소를 마치고 에핑로드를 이용해 귀가하는 친구가 겪은 일이다. 확 트인 왕복 6차선 도로는 낮에도 과속의 유혹을 받는 곳이다. 하물며  차 한 대가 보일까말까한 새벽에 있어서야.

 

밤새워 일한 고된 몸과 빨리 귀가하고픈 욕구로  친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페달을 밟기가 일쑤였다. 세 번째 과속이 적발된 그는 벌점 초과로 면허가 정지되고 말았다. 면허정지는 운전정지를 말한다. 차를 이용해 일터로 이동해야 하는 그는 생계가 막연했다. 더구나 최근에 큰 권리금을 주고 산 청소 용역마저 날라갈 위험이 있었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그는 친구의 면허증을 빌려 운전을 계속하며 일터를 오고 갔다.

 

어느날 새벽 그는 과속으로 또 적발되었고 경찰은 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그는 시치미를 떼고 친구 면허증을 내주었다.

 “이 사진이 당신 얼굴 맞습니까?”

 “ 그럼요. 내 사진 맞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오리발은 힘차게 내밀어야 효과가 크다는 것을 그는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자 고개를 한번 갸웃한 경찰이 이번에는 조수석에 앉은 그의 아내를 향해 물었다.

 “이 사진이 당신 남편 맞습니까?”

 “네, 분명히 내 남편입니다.”

 아내는 고개마저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은 아내를 경찰차로 데려가 물었다. 당신 남편이 틀림없이 맞느냐고. 소위 말하는 분리심문이 시작된 것이다. 아내와 남편을 오가던 심문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세 번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내 남편이 아니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친구에게 또 물었고 그는 맞다고 우겼다.

 

 “그것 참 이상하다. 저 여자는 이 사진이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데 너는 저 여자의 남편이라고 하니 대체 너희들의 관계는 무엇이냐?”

 

 이런 때는 오리발을 신속히 거두어야 현명하다는 것 또한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는 사실대로 피치 못할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법정에 서는 것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면허 정지 중 과속운전에다 타인 면허 사용 그리고 허위답변으로 인한 업무방해. 범칙 사실을 열심히 적던 경찰의 눈이 뒷좌석에 놓인 청소용구에 멎었다. 그리고 밤새워 일하느라 피곤에 지친 충혈된 눈에도.

 “일 하는 시간과 장소를 말하시오.”

 단속 경찰관은 법정에 세우는 대신 집과 일터만을 오고갈 수 있는 제한된 허가를 해주었다. 친구의 과속 습관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그 후부터다.

 

 신포 구포

 

어디 가나 편가르기 좋아하는 한국인. 이민 역사가 짧은 호주에서도 교포를 신포 구포로 나누어 부르길 좋아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교포는 신포, 오래된 교포는 구포라고 부른다고 한다.

 

신포 구포가 시간 구분만 있는 말은 아니다. 관공서나 은행의 늑장 처리를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안다거나, 제 몸 치료하고 맡긴 돈 찾듯 정부 돈 받아내는 이력이 붙으면 구포,  정속도로 운전하다가도 경찰차만 보면 브레이크를 쿡쿡 밟는다거나 조금 안면 있다고 외면하는 상대에게 꼭꼭 아는 체를 한다면 신포에 속한다.

 

신포 구포의 경찰에 대한 인식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신포 여인과 구포 여인이 어느날 아름다운 팜비치로 해수욕을 갔다. 석양 무렵, 그들이 귀가하려 주차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옆의 차가 빠져나가면서 살짝 스쳤다. 가해자 피해자가 차에서 내리고 접촉 사고난 지점을 조사했다. 신포 여인의 말에 의하면 손상이 아주 미미해서 매니큐어로 한번만 칠해도 감쪽 같을 정도였단다. 그런데 구포 여인은 상대에게 운전면허와 보험증 제시를 요구했다.

 

가해자는 이 정도 손상으로 면허제시와 보험 운운하는 것이 가소롭다는 듯 언쟁을 피하고 차를 몰고 가 버렸다. 구포 여인은 중학생 자기 딸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 형님, 이까짓 살짝 긁힌 것을 가지고 경찰에 신고는 무슨 신고. 내가  고쳐 줄게.”

 신포 여인은 경찰이란 말에 겁이 나고 떨리기까지 했다.

 “자네는 모르면 가만 있게.”

 

구포 서슬에 신포는 더 이상 참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 해변에 주차했던 차는 모두 빠져나가고 가로등마저 켜진 주차장에 달랑 그들 차 한대만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견인차 두대를 동행하고 그들 앞에서 잠깐 서행하는가 싶더니 그냥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큰 사고가 난 모양이라며 계속해서 기다렸다.

 

삼십 여분이 지낫을까. 조금 전 출동했던 경찰차와 견인차가 빈 차로 그들 앞을 지나 되돌아 갔다. 주위는 이제 완전히 어두워지고 그들만 남은 주차장은 썰렁했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다고 판단한 구포는 경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의외의 대답이 그들을 놀라게 했다.

 

“신고를 받고 견인차 두 대와 함께 즉시 출동했다. 우리는 삼십분이나 팜비치 일대 주차장을 헤멨지만 사람 몇이서 서성이는 차 한대를 발견했을 뿐 사고 차량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 차가 바로 신고한 우리 차다.”

 “그것 참 이상하다. 접촉사고라면 반드시 가해차 피해차 두 대여야 하는데 한 대라니.”

 

잠시 후 견인차를 대동하고 나타난 경찰. 그러나 손상 지점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손전등을 비추며 고개만 갸웃 거릴 뿐이었다. 결국 구포가 가리킨 한 곳에 초점을 모으더니 여기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이토록 미미한 손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구포의 추상 같은 목소리가 어린 딸을 향했다.

 

“너 네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통역해야 한다. 내 몸처럼 아끼는 차가 부딪쳤을 때 상처가 난 것은 이 차가 아니라 내 가슴이다. 그 상처로 이렇게 가슴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수첩에 열심히 구포의 말을 메모했다. 동감이라는 듯 가끔 고개마저 끄덕이며. 구포가 말을 끝냈을 때 구급차를 부를까 물었다. 괞찮다는 말에 위로의 말과 함께 차문까지 열어 주며 조심해 운전하라는 말을 끝으로 경찰은 임무를 끝냈다. 며칠 후 구포는 가해자로부터 사과의 편지를 받게 된다.

 

 소방관

 

운전면허 시험 중 단 한번의 실수로 탈락하는 항목이 있다. 비상차 출동시 차를 도로가로 세우지 않고 계속해서 운전하는 경우다. 그만큼 비상차는 최우선이다.

 

나는 최근에 서큘라키 전철역을 혼란에 빠뜨리고 소방차를 비상출동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내 상점 주위로 있는 두 개의 식당 때문인지 여름철엔 바퀴벌레가 기승을 부려 곤란을 겪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손님이 초콜릿을 집다가 바퀴벌레를 보고 고함과 함께 내던질 때는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는 박멸 작전을 세운다.

 

영업이 끝난 오후 8시, 상점문을 다 닫고 분무형 폭탄 여섯 개를 차례로 터뜨리기 시작했다. 네 개째 터뜨리는 순간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방송이 전철역을 뒤흔들었다.

 

“알려드립니다. 지금 서쿨라키 역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플랫폼에 있는 승객은 안전하게 밖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통제실의 화제 경보등이 잇달아 세 개나 점등되자 경보와 함께 승객 대피 방송이 자동으로 나오고 동시에 전차 진입도 정지되고 중앙 역에도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당직자는 큰 화재라도 난 줄 알았다는 후문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바퀴벌레 약의 분무가 연기감지기를 작동시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작동된 감지기 신호가 고정등으로 점등되어 있었다. 이십여 미터를 단숨에 뛰어가 통제실에 신고했다. 걸린 시간은 삼십 초 정도. 그러나 분무에 의한 오작동의 즉각적인 보고에도 불구하고 사이렌과 함께 소방차가 이미 출동하고 소방관이 현장을 확인했다.

 

“음식 조리에 의한 연기나 담배 연기 그리고 밀도 높은 먼지에도 화재 감지기가 작동합니다. 앞으로 그런 상황을 피해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그의 음성이 미안해 몸 둘 바를 모르는 나를 적이 안심시켰다. 간단한 그 알림뿐이었다. 헛 출동에 의한 짜증이나 내 불찰에 의한 언짢은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 나의 붉어진 얼굴이 쉽게 정상을 찾았다. 시원스레 철수하는 모습에서 이런 헛 출동도 마치 임무의 한 부분이라 여기지 않나 지레 짐작했다.

 

철도청 직원

 

 몇 년 전 나는 현재 경영하고 있는 뉴스에이젼시 소유권을 놓고 전 주인과 재판 분쟁에 휘말렸다. 5년 전 재개발 계획이 세워진 그때 명의 변경의 불확실한 이전이 소유권 분쟁으로 다다른 것이다.

 

나는 재판을 신청했고 판결이 두려운 전 주인은 결국 소유권을 포기했다. 나는 분양 권한자인 철도청으로부터 분양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분양 담당관이 나에게 상당한 호의를 베푸는 결정을 해준다. 백만 달러의 향방이 그의 결정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철도청 재산 담당관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데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알 만한 몇몇 사람과 상의했지만 그들은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므로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대답이다. 공무원은 자칫하다간 부패의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내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 해가 저무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카드와 함께 위스키를 준비했다. 이 정도야 어떠랴 싶었다. 사건이 끝난 지도 팔개월이나 지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위스키는 보편화되어 있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선물을 전한 후 마음 졸이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2주 후 위스키는 되돌아오고 만다. 성의는 고맙지만 공무원으로서 받을 수 없다는 서신과 함께.

 

정치가

 

 한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가치관이 빚어내는 공생 윤리가 그 사회의 문화가 아닐까 한다. 천년의 로마제국을 가능케 한 노블리제 오블리제(존경 받는 사람의 의무)나 ‘나 혼자는 빼고’ 라는 식의 이기적인 풍조도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호주에선 수상이나 장관 또는 고위 공무원은 처신에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아들의 음주 운전 사고로 빅토리아주 수상은 수상직은 물론 정계를 떠났다. 음주운전 사고 후 전혀 수상으로서 말발이 먹혀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관저 근처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연방 수상 아들은 언론에 이중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공무에 사용해야 할 전화카드를 개인 용무로 사용한 아들 때문에 노사부 장관은 변상은 물론 불신임의 벼랑에 섰다. 그는 간신히 구원됐지만 차기 지도자 대열에서 추락했고 정계마저 은퇴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와 같은 일들을 가능케 한 사회가 부럽다. 엄격한 도덕성과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처벌, 이것은 하나의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도덕적이고 성역 없는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 그 사회는 다시 그 사회에 어울리는 시민 의식을 만든다. 

 

그밖에 보고 듣고 겪은것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12월 31일 시드니 불꽃놀이는 장관이다. 그날 나는 밤새워 장사하면서 불꽃놀이 나온 사람들의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얼굴과 함께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인한다. 이날 50만 인파가 하버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로 모이는데 이 일대에선 사람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인파의 흐름에 몸을 내맡겨야 할 정도다.

 

이날 하루는 임시 화장실 오십여 개가 설치되지만 태부족이다. 따라서 화장실 앞에는 수 백명이 줄지어 기다린다. 여기선 화장실마다 개개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한 줄로 기다리다가 용무를 마치고 나온 곳으로 차례대로 간다. 따라서 줄을 잘못 서서 오래 기다리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상당한 질서의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누구 하나 완장 차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둘만 모여도 줄을 서는 습관이 몸에 배인 탓인지 큰 소리 하나 없이 이런 질서가 밤새 유지된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키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밤 하늘은 또 한번 현란한 불꽃으로 수놓아진다. 이 때쯤이면 술 취한 젊은이들이 '해피 뉴 이어'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넨다. 서로 낯선 사이이면서도 새해 인사를 나누는 진지한 얼굴이 그렇게 순수하게 보일 수가 없다.

 

저 정도의 취기라면, 저 정도의 혈기라면 여기저기 패 싸움이 일어나고 고함이 난무할 것 같은데도 그저 들떠 있기만 한 모습이 참 좋다. 몸을 비틀거리는 취기에서, 젊은이면 가질 법한 어떤 고뇌도 깃들어 있지 않은 청정 해역 같은 얼굴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빈 헤드 로드의 차선 양쪽은 자전차 전용선이다. 주말엔 자전차족이 줄을 잇는다. 자전차를 타려면 규정상 헬멧을 써야 한다. 이 같은 변두리엔 경찰 단속은 거의 없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더운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헬멧을 꽉 조여쓰고 자전차를 탄다. 심지어 서너 살 난 아이에게 세발 자전거를 가르치면서도 헬멧은 반드시 쓴다. 왜? 규정이니까.

 

호주인의 자연 사랑은 유별나다. 캬캬두 국립공원엔 세계 우라늄의 10퍼센트가 매장되어 있지만 자연 파괴라 하여 개발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개구리 서식지를 피하기 위해 올림픽 경기장 위치를 변경하는 나라, 장애인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배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도 수만리 여행을 혼자 다녀올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호주다.    


#손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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