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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1000만명(기독교내주장), 장로 대통령. <국민일보>가 4월 11일 국회의원 당선자 299명을 대상으로 집계·분석한 결과 당선자의 32%인 97명이 기독교신자로 파악됐다. 참고로 지난 17대 국회의 기독의원은 41%인 122명이다. '고소영'에서 '소'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닌 소망교회를 말한다. 숫자와 권력 모든 면에서 이미 기독교는 정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비기독교인과 사회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해 7월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는 비기독교인과 사회의 교회를 향한 비판이 얼마나 가혹한지 보여준 사례였다. 한국 교회를 향한 가혹한 비판 앞에 교회는 뚜렷한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어떤 목회자와 교회들은 반공산주의, 친미사대주의 성향까지 보여주면서 한국 교회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한국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개념 정립 부재가 원인이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예배는 끊임없이 참석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전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왜 그리스도인 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스 큉이 쓴 <왜 그리스도인인가>은 비판과 질책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 할 귀중한 책이다. 한스 큉을 소개하자면 이런 삶을 살아왔다.

 

스위스에서 출생(1928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과정을 이수하고 사제로 서품됨(1948-55년). 파리의 소르본느와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 연구(1955년). 거기서 박사학위 받음(1957년). 고향에서 사목활동(1957-59년). 뮌스터 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교의신학 교수(1959-60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하여 공의회 신학 고문으로 지명됨(1962년). 튀빙겐 대학에서 기초신학, 교의신학, 에큐메니즘 연구원장(1960년 이래). 구미와 아시아의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대학에서 초청교수로 활약. 신학과 에큐메니즘에 관한 각종 정기간행물의 편집자 또는 편집 위원.(분도출판사)

 

그는 <왜 그리스도인인가>에서 맑스주의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세계혁명과 무산계급 독재라고 서슴없이 말하듯이 그리스도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그들은 '사랑' '의로움'이라고 말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답은 모호하고, 비기독교인들도 하는 말이며, 실천할 수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으로 돌아가자!'이다. 기독교는 인본주의를 신봉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매우 불경하게 들린다.

 

한스 큉은 이제 사람으로 돌아감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인종 · 계급 · 민족적 증오에 대항하는 인간성 회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인간성 파괴는 세속사회뿐만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인종 · 계급 · 성 · 돈으로 인한 차별은 교회 안에서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교와 인본주의는 모순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인본주의자 일 수 있고 인본주의자가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그리스도교란 철저한 인본주의로 이해되어야 바르게 이해된다."(26쪽)

 

그럼 사람을 부르짖는다고 정말 인본주의인가? 코페르니쿠스(인간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입증함), 맑스(인간의 조건이 비인간적 사회에 의존함을 논증), 다윈, 프로이드를 통하여 사람은 끊임없이 인간을 부르짖었고, '성실한 인간'을 내세웠던 계몽적 인본주의, '인간다운 속석'을 추구하던 학구적 인본주의, 허무 속에 내던져진 개인의 '실존을 파고들던 실존적 인본주의가 모두 한때 한창이었다고 한스 큉은 말한다.

 

또 우리 시대는 과학 · 기술 발전으로 인간성 달성을 부르짖었지만 허상이 무너지고 있다. 실용정부를 내세우는 우리나라 현 정부도 자율화라는 논리로 인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발전과 성장을 부르짖는 인본주의는 결국 "인간의 비인간화라는 뜻하지 않은 사실상의 겨로가를 수반한다."(31쪽)

 

인간을 살리고자 했지만 이념은 결국 진정 인간을 살리는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면서 다른 사람, 다른 인간을 기대한다고 한스 큉은 주장한다. 예수는 근본적으로 인간생활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는 태세를 요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통하여 인간성 회복, 진정한 인본주의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한스 큉은 '인간복지'로 표현한다. "하나님은 더도 덜도 말고 인간의 이익을 원하신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을. 하느님의 뜻이란 곧 인간의 복지다."(168쪽)

 

한스 큉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도전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 영광'으로 배움받은 이들에게는 더욱 혼란스럽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원하신다. 하느님은 사람의 생명 · 기쁨 · 자유 · 평화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도 증오와 미움이 있을 때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했다. 화해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예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분명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다.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가 한 말대로 사셨다. 예수님은 원칙적으로 가난한 자들 편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 편이었지만 무산계급독재를 선언하지 않으셨다고 한스 큉은 말함으로써 공산주의 이념과 선을 긋고 있다. "예수의 요청은 착취자들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 피약탈자의 약탈과 피압제자의 압제가 아니라 평화 추구와 권력 포기다."(191쪽)

 

예수님의 평화추구는 교회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념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은 광신적인 구호를 외친 것이 아니라 진정할 실천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사셨고, 실천하셨다.

 

그 예수를 믿는 교회도 인간성 파괴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교회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사람들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교회의 제도 · 교리 · 법규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는 곳, 무릇 교회의 대변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용건을 하느님의 계명과 안배인 양 내세우는 곳-거기서는 으레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배반하고, 거기서는 항상 교회가 하느님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며, 필경 교회가 위기에 빠진다.(303쪽)

 

교회가 파괴와 자본에 매여 있다. 교회가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에 무관심하다. 자유 없는 현장에 무감각하다.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관심이 없으며 그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인인지는 감정으로만 믿는 우리 시대 기독교인이 반추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이며, 찾아야 할 답이며, 실천해야 할 사명이다.

덧붙이는 글 | <왜 그리스도인인가?> 한스 큉 지음 ㅣ 정한교 옮김 ㅣ 분도출판사 ㅣ 6,500원


왜 그리스도인인가?

한스 큉 지음, 분도출판사(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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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그리스도인, #한국교회, #한스 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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