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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운영,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제주 어느 오름자락에서 외로이 피어있는 것을 만난 후였다. 논밭에 녹비식물로 심는다는 이야기에 어딘가에서는 무더기로 피어있는 것을 만나리라 생각했는데 이후로 실물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4년,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고창 선운산 자락, 실개천을 따라 가꿔진 밭길을 걷다가 보라빛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광대풀꽃인가 했다.
 
도시생활을 하다보니 흔하게 만나던 꽃들 조차도 귀한 일이라 담을 수 있을 때 담으려고 다가갔는데 자운영이었다. 눈을 돌려보니 밭가장자리 여기저기에 자운영이 피어있었다.
 
'아, 이렇게 행운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구나싶었다.'
 
 
자운영은 연화초, 홍화채 등으로로 불리며 중부 이남의 논과 밭에서 자란다.
그의 고향은 중국이지만 녹비식물로 들어온 이후 논과 밭의 가장자리에서 야생화처럼 자라기도 하고, 녹비식물로 자운영을 재배하는 경우에는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실물로는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는 본 적이 있는데 환상, 그 자체였다.
 
녹비식물로 들어왔지만 식용, 관상용, 약용, 밀원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자운영은 콩과의 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빨아들여 질소비료를 스스로 만들어 지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논이나 밭에 겨우내 심었다가 봄이 오면 갈아엎어 질소비료대신 사용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자운영, 그러나 영화를 누리기도 전에, 꽃잎 제대로 놓기도 전에 갈아엎어지고, 자기가 만든 양분을 다른 작물에게 빼앗기는 얄궂은 운명을 가진 꽃이다.  
 
 
자운영을 보면서 나는 이 땅의 민중들을 생각했다.
때깔나고 비싸고 몸에 좋은 것은 손에 흙이라고는 묻히지도 않는 나으리들이 다 먹어치우고, 정작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느라 거칠어 손, 깊은 주름살과 구부정해진 등어리를 훈장처럼 달고다니는 농민들은 한미FTA, WTO 등등의 공격에서 자신들이 만든 먹을거리를 먹고 있는 수많은 방관자들 속에서 속수무책 폭력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다. 못 배워서,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교육부에서 내놓은 교육개혁안(?)이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우열반 편성이 아닐까 싶다. 오로지 시험성적 하나만으로 우열을 나누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민들이 좋아할 줄 알았어요"한다니,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사람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사람 사는 것이 공부잘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그것만으로 재단을 하니 사교육 빵빵하게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를 모두 죄인으로 만든다. 그런 정책을 내어놓은 사람들의 면면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지가 씨앗을 뿌려 거둬 먹는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없는 감성도 없는 사람일 것만 같아 씁쓸하다.
 
 
꽃을 한창 피울 때 갈아 엎으면 찍소리 한 번 못하고 땅 속에 묻혀 버리고 마는 자운영,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논두렁 밭두렁에 꽃을 피우고야 마는 자운영의 운명과 우리네 민중들의 운명은 어찌 그리도 닮은 꼴인고!
 
허리가 휠 정도로 고생고생을 하며 자식새끼들 뒷바라지하며, 개천에서 용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이들, 이제는 그 소망조차도 허망한 소망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있는 것 지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지만 몸뚱아리밖에 없는 이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그들이 속수무책 당함으로 인해 가진 자들이 더 가지게 되고, 풍성하게 되니 자운영과 민중들의 운명은 너무도 닮았다.
 
 
그러나 그렇게 갈아엎어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 법이다.
그들대로 이젠 사람의 손에 의해 씨앗이 뿌려지지 않아도 피고지는 야생화가 되어 논두렁 밭두렁에서 여전히 피어나고 있는 자운영, 그가 너무도 기특하고 고맙다. 그런 까닭에 희망을 보는 것이다.
 
많은 식물들 가운데 자운영 같은 것들이 있어 자연은 더욱 더 풍성해지는 법이다. 가만히 두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 그러나 너무 인위적인 삶을 살아간다. 사람답게 살아가게 해야하는데 가진 자들의 틀에 맞추려고 온갖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약자를 위한다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말이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국민을 위한다고, 좋아할 것 같다고 이런저런 정책들을 난발하지 말고 그냥 좀 놔두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두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처럼 피어날 터인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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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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