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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책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 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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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똘이 혼내지 마세요. 그러면 내가 너무 속상하고 슬프잖아요."

며칠 전, 돌을 앞둔 조카 똘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기에 내가 "너 이놈, 그럼 안 돼!"라고 했더니, 네 살 난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말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 사소한 감정까지 다 표현하게 되었을까? 그 조그만 머릿속이 궁금하다.

책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는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기를 쓰면서 <오마이뉴스> 등에서 인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소희씨의 아이 이야기다. 특별히 자녀교육서라고 칭하기에는 좀 소박한 이 책에는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의 아이가 겪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와 성장 과정이 저자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세 돌이 된 아이를 데리고 터키 배낭여행을 떠난 후 아이가 여덟 살이 된 현재까지 단둘이서 시리아, 레바논, 라오스, 아프리카 등의 오지만을 찾아 돌아다녔으니 이 모자의 삶엔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 법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감행하는 용감한 엄마의 일상은 어떨까?

세 돌배기 아이 데리고 중동 배낭여행 한 엄마의 일상은?

퀴퀴한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아빠 발, 엄마 발의 냄새를 서슴없이 맡는 저자의 아들 중빈이. 어른들에게는 이미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확실하게 입력되어 있는 세상의 모든 냄새가 아이에게는 그저 즐거운 탐색의 대상일 뿐이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사고는 이처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자라면서 귀여운 짓도 많이 하지만 엄마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많이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저자는 아들 중빈이가 즐겨 찾는 파워레인저가 영 못마땅하다. 하도 그 이야기만 늘어 놓기에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들여다 보니 어른이 보기에는 공격적인 듯하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아이와 함께 얘기하기 시작하자 아이는 드디어 엄마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어때, 엄마? 내가 좋아할 만하지 않아?"

아이의 이런 말에 저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상에는 아이에게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게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것은 곧 아이가 좋아하면 안 될 것이라는 방정식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가 비록 좋지 않은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

"아이는 이미 내 품을 떠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자신만의 '기호'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호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치게 편향되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정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엄마와 먼저 나누고 싶어 했던 것이."

언젠가는 부모 품을 떠나게 될 아이들. 그들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들은 쉽게 그들의 의견과 사고를 무시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쉬운 부모들에게 좋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요구와는 다르게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성장해 가고 있다고 깨달으면 굳이 아이의 행동을 구속할 필요가 없다.

네 살이 된 중빈이는 부쩍 궁금한 게 많다.

"엄마, 우리는 왜 저기 안 살고 이 건물에 살아? 엄마, 왜 나무는 나쁜 공기를 마시고 좋은 공기를 만들어? 왜 나는 지금 다섯 살이 되면 안 돼? 왜 포도는 동그래?"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며 성장한다

이런 엉뚱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상황을 즐긴다. 끝이 없는 아이의 질문은 옛날 연인의 전화를 기다리던 것만큼이나 기대되고 짜릿하다고 표현한다. 아이와 이처럼 충분한 대화 상황을 즐기는 가정이라면 깊이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아주 행복하고 즐거움이 넘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기쁨을 준다. 엉뚱한 그들의 사고, 이야기, 노는 모습, 해맑게 웃는 표정. 이런 아이들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네 살 된 딸이 묻는다.

"엄마, 뱃속의 아가는 어떤 모양 집에 살고 있어?"
"응, 풍선 모양 집에 살고 있지."
"그럼 동그란 모양이네."
"그렇지, 너는 어떤 모양 집에 살고 있는데?"
"난 네모난 집에 살고 있지. 엄마랑 아빠도 네모난 집에 살고, 이모도 네모난 집에 살고."

조잘거리는 아이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이렇게 부산하게 이야기를 늘어 놓으니 오늘 하루도 그 조그만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일 듯하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어려운 사람을 위한 모금을 한다며 자신이 모은 육십 만원의 돈을 서슴없이 내놓는 책의 주인공 중빈이. 너무 큰 돈이라 엄마는 아까운 마음에 망설이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아이는 끄떡없다.

책을 읽으며 우리 어른들은 너무 좁은 사고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중빈이가 커 나가는 모습 속에는 어떤 동화에서도 만나 보기 어려운 풍부한 상상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우리 아이들의 세상일 것이다.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꿈꾸는 무한한 세계를 가로막을 게 아니라, 그 상상의 공간에 가끔은 첨벙 뛰어들어 동참해 봐야겠다. 그럼 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가겠지?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오소희 지음, 북하우스(2013)


태그:#육아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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