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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공교육 정책 첫 작품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으로 한국 교육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초·중·고교 업무는 각 시·도교육청이 결정하며 중앙정부는 더 이상 과거처럼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부내용을 보면 0교시나 심야·보충수업 금지 지침이 없어진다. 방과후학교는 학원 등 영리단체의 위탁경영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금까지 방과후학교는 대부분 예체능이었지만, 국영수까지 확대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사설모의고사 시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 중·고교에서는 영어와 수학 등 과목별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전체 성적 등으로 학생을 서열화해 반을 나누는 '우열반'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수준별이동수업 지침이 폐지되고 전과목으로 확대되면 결국 우열반·열등반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실력 있는 아이들만 살리는 것이 자율인가

 

이명박 실용정부가 내놓은 교육정책은 한 마디로 '자율성'이다. '자율성' 굉장히 좋은 말이다. '자율'의 사전 의미는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이다.

 

남의 지배와 구속을 받지 않고, 스스로 원칙에 따라 일을 하고, 추진한다는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자율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교육 정책에서 과연 자율이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자율화 확대가 제시한 것은 실력있는 아이들, 실력있는 부모, 실력있는 학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열등생·열등부모·열등학교로 남아 퇴출되든지 사라지든지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력있는 아이·부모·학교만 살리겠다는 것이다.

 

공부 실력에 따라 반을 편성하는 것은 인간 기본권 침해다. 공부를 조금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열등한 아이로 낙인찍는 것은 인간성 파괴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국영수 실력으로 어떻에 우열과 열등을 나눌 수 있는가? 인간 존엄성은 인종·민족·국가·성별·나이·종교·사상 어느 것에도 차별받을 수 없다. 하물며 공부 실력으로 열등과 우열로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설모의고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학원에 가지 않으면 모의고사 성적을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국가와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도 어떤 경우 학원에 문제가 유출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여기다 사설모의고사를 허용하면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0교시수업은 교육당국이 학생들 건강권을 위해서 실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현재도 편법으로 실시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자율화를 실시하면 '-1교시' 수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가 24시간 학원 자율화조례를 만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사설모의고사 허용, 0교시수업 허용, 방과후학습위탁경영을 자율화함으로써 24시간 학원 자율화가 아니라 25시간 수업을 권장하고 나섰다.

 

아예 학원에서 가르치면 될텐데... 아예 학교를 없애라

 

이렇게까지 자율화를 허용하려면 아예 교육과학기술부·교육청·학교를 없애버려야 한다. 완전히 학교를 없애고 오로지 학원에 맡기면 된다. 지금도 공교육은 붕괴되었는데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자율화를 무슨 보배처럼 여겨지는 이명박 정부 교육당국에게 솔직히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우형식 교과부 1차관은 "학교가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에 관한 권한을 학교에 전면 이양하고 초중등 교육에 관한 교육감의 권한을 책임을 대폭 강화했다"고 했는데 교육감에게 그런 권한은 왜 주는지 모르겠다. 아예 사설학원에서 가르치면 능력 있는 아이들 더 잘 가르치고, 실력 있는 아이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데…. 

 

이어 우 차관은 "앞으로 정부는 공교육으로 정착되지 않은 유아교육과 특수교육 분야, 지역별 교육격차 해소, 학생의 건강·안전 관리에 관한 기능만 주로 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아교육과 특수교육분야에 공교육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공교육이 정착되지 않는 곳이 어찌 이들 교육분야 뿐이랴. 초중고등학교에 공교육은 이미 붕괴 됐고,교과부가 발표한 정책에는 공교육 정착은커녕 스스로 파괴하겠다는 논리밖에 없는데.

 

지역별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했는데 같은 학교에서도 열등반, 우열반이 존재하고, 결국은 열등학교, 우열학교로 나누어질 것이고, 결국은 우열한 아이, 우수한 학교만 지원할 것인데 무슨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말인가?

 

교육부는 학생 건강권과 안전관리에 관한 기능만 맡겠다고 했지만, 0교시수업을 허용하고, 보충수업 금지가 폐지되는 마당에 무슨 건강권을 가진다는 말인가?

 

이명박 정부는 공교육 자율화를 주장하지 말라. 아예 포기하고, 학교를 없애라. 그리하면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겠다. 하지만 공교육을 살리고, 지역간 교육격차를 줄이고, 아이들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 '학교 자율화 3단계 추진계획'은 폐지 되어야 마땅하다.


태그:#학교자율화계획, #이명박정부교육정책, #공교육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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