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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7시 30분 공릉동 지하철 화랑대역 2번 출구에서 말끔히 신사복을 차려 입은 신사 한 분이 지나가는 지하철 승객에게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을 갖기도 하고, 미소를 지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무심코 지나쳤다. 10미터쯤 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화랑대역 게이트 직전까지 왔다가 다시 그 곳으로 향했다.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는데 유세도 아닐 테고 점잖게 고객 숙여 인사하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이곳에서 이번 선거 유세때 각 후보들이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여러 번 봤었다. 그래서 선거 유세를 하는 것처럼 보인 그 광경이 신기하듯 머리 속을 스쳐간 것이다. 그곳에 도착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연신 눌렀다. 그리고 그를 자세히 확인했다. 18대 국회의원 후보 낙선자였다. 노원 갑에서 출마해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에게 아쉽게 패한 통합민주당 정봉주 의원이었다.

14일 아침 지역구인 화랑대역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낙선인사를 하는 정봉주 의원.
▲ 정봉주 의원 14일 아침 지역구인 화랑대역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낙선인사를 하는 정봉주 의원.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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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고개부터 숙이면서 “패배의 결과를 받아드리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반복했다. 18대 의원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현직 의원으로서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바로 정 의원 바로 옆에 세워진 플래카드도 “정봉주, 패배의 결과를 받아드리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왔냐”고 먼저 물었다. 나는“아니다”라면서 "지나가는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기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궁금해 사진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나의 답변을 듣고 이해를 한듯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계속 인사를 건넸다. 낙선 인사를 한 것이었다.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몇 컷을 더 찍었다.

그리고 옆에 서있던 정봉주 의원의 보좌관으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다가가 정 의원의 전화번호(휴대폰)를 물어 메모한 뒤, 화랑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향해야 했다. 이후 전화를 하지 못했다. 초면부터 전화로 인터뷰한다는 것이 조금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날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도 정 의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는 5월 30일까지는 그가 17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물론 4년 후 있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낙선자들과 비교해 봤다. 대부분의 낙선 인사는 벽보나 현수막을 통해 ‘성원에 감사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한다.

낙선의 아픔도 가시지 않을 시점인데 그는 90도로 고개 숙이면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드리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4년 뒤에 있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한다 해도 주민들이 그를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4년 뒤의 정치 지형의 변화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아 아팠다.
14일 오전 출근길 노원갑 낙선자 정봉주 의원은 지하철을 이용한 주민들에게 낙선인사를 했다. 노원 갑, 을 병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 정봉주 의원 14일 오전 출근길 노원갑 낙선자 정봉주 의원은 지하철을 이용한 주민들에게 낙선인사를 했다. 노원 갑, 을 병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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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정 의원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낙선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의 생각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낙선을 했어도 겸손하게 인정하는 한 정치인을 보고 솔직히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이렇게 새벽부터 나와 낙선 인사를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했다. 많은 정치 낙선 후보들이 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미덕 있는 정치 환경이 이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정치는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한다. 하지만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감동을 주지 못했다. 정책 및 공약 검증 선거는 뒷전이었고 돈 선거, 성희롱 선거, 이미지 선거, 경마보도 선거 등으로 얼룩졌던 선거였기에 그렇다. 선거가 유권자가 바라는 의제와 정책을 지향할 때 유권자 축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후보들만의 축제였고 당선자들만의 축제였다고 생각한다.

선거가 끝나고 낙선 정치인에게 감동을 받은 것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 정치에 대한 희망이 됐으면 하는 소망을 빌어 본다.


태그:#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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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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