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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향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고, 오늘 이사 가면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서운해서 어쩌나?"

 

수십 년간 아버지, 할아버지 아니 증조, 고조할아버지 적부터 대대손손 터를 잡고 살았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가는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운하고 서글펐다. 마치 고향을 떠나는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서는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마음, 왜 그리 서운한지

 

봄비가 내리던 13일 우리 가족은 대대손손 터잡고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났다. 우리 고향은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로 앞으로 이곳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동네 많은 어르신들이 이사하는 우리집에 찾아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던졌다. 하지만 정들었던 집과 고향을 떠나는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는 못한 듯싶다.

 

아버지께서는 이삿짐을 싸는 동안 안절부절 못하고 집과 마당을 들락거리셨다. 난 꼬랑지에 불 붙은 뭐 마냥 집안과 마당, 옥상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든 집과 고향 마을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이삿짐을 나르기 위해 온 이사업체 차량에 한 가득 짐이 채워지자 이사 차량은 우리 가족이 살게 될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가족들도 정든 집과 고향을 뒤로 하고 이사 차량을 뒤따랐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마중 나온 동네분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또다시 가슴속에서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이사 가는 보금자리가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향 땅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마을인 우리 동네는 이미 지난해 추석 즈음해서 행복도시건설청으로부터 올 6월 말까지 마을을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지금까지 마을에 남아 있는 동네분들도 한달 반 남짓이면 모두가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신세다. 단지 우리 가족이 다른 동네분들보다 조금 빨리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동네에 남은 분들과 작별하고 나서 이사 차량을 쫓아 새로이 둥지를 틀 보금자리로 향했다.

 

새 보금자리, 아기자기하긴 하지만 빨리 적응하는 게 관건

 

앞으로 살게 될 아파트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이사 차량이 아파트 현관에 주차하고 짐을 옮기고 있었다. 아무리 이삿짐센터에서 포장에서 정리까지 다 해준다고는 하지만 이사하는 당사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함께 짐을 옮기고 방안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의논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짐을 들여놓았다.

 

한두 시간여가 흘렀을까. 어느덧 집안 정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비록 전에 살던 시골집보다 넓지 않고 창고도 없는 작은 아파트였지만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배치를 하니 조금 답답하긴 해도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괜찮은 듯 보였다.

 

물론 생활하다 보면 불편한 점도 생길 것이고, 아파트다 보니 아래 윗집, 옆집과도 마찰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조심하고 양보하면서 살다보면 언젠가는 적응되지 않겠느냐는 게 가족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장 걱정이 되는 문제는 이곳 아파트에서 혼자 살게 될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나도 직장 문제로 이미 따로 집을 구한 터라 새로운 아파트에서는 아버지 혼자 생활하게 된다. 그동안 시골에서 친구들과 마을 분들과 어울리며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던 아버지께서 소일거리도 없이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는 게 가장 걱정이다.

 

특히나 시골에서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분리수거며 소음 문제 등 도시 생활 문제도 만만치 않다. 아버지께서 이런 데 경험이 없는지라 더더욱 걱정이 컸다. 이런 말씀을 아버지께 드리면 아버지는 "그런 불편함과 어려움은 고향집을 떠나오면서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 아니냐"며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자식들 걱정할까 봐 그러셨겠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닐 듯싶다.

 

아버지 말씀대로만 감수하고 생활하신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가족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고향이 사라져도 내 고향은 영원히 마음속에...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이것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부른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라는 국가 대 프로젝트의 희생양으로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내 부모가,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자란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라는 고향은 영원히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비록 산이 없어지고 마을이 없어져서 다른 무엇인가가 그 자리에 새롭게 생길지라도 말이다.


태그:#반곡리, #행정중심복합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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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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