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엔 컴퓨터가 한 대다. 사용하는 사람은 최소한 4명이다. 나, 아내, 딸, 아들이 그들이다. '최소한'’이라고 굳이 단서를 붙인 것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는 마을 아이들이나 손님들도 컴퓨터 사용하는 데 한 몫 하기 때문이며, 그래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 가족 4명이라는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하루 중 컴퓨터를 최고 많이 만지는 사람은 나다. 이른바 프리랜서인 나에겐 컴퓨터를 많이 만질 일이 당연히 많다. 하지만 중학생 딸도 그 사용량이 만만찮다. 아마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사용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에 버금가는 사람이 초등학생 아들이다. 요즘 한참 게임하는 것에 맛들인 아들아이는 학교 갔다 오면 바로 컴퓨터 옆으로 다가가는 게 일이다. 누가 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먼저 차지하려는 심사다. 그러다 내가 계속 사용하고 있으면 컴퓨터 주위를 계속 맴돈다. 주위에서 맴돌다 아들아이가 한마디 하곤 한다.

 

"나, 어제 컴퓨터 별로 못 했는데…."

 

나를 보면서 대놓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 방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독백이라는 것이다. '웬만하면 아빠도 컴퓨터 그만하시고 저에게 양보하시죠'라는 메시지가 분명할지도 모르는 독백이다. 그래도 대놓고 하는 말이 아니니 "지금은 안 된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묘한 실랑이가 오가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싶으면 그제야 컴퓨터 방을 나간다. 그러다 요행히 그런 묘한 시위가 먹혀서

 

"야, 아들. 그럼 내가 1시간만 더하고 컴퓨터 넘겨줄게."

"아싸! 조금 있다가 컴퓨터 할 수 있고. 히히히히히."

 

만면에 미소를 뛴 아들 녀석은 당장 다른 방으로 건너가 숙제를 해댄다. 혹시나 숙제 때문에 컴퓨터 하는 것이 클레임이 걸릴까봐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부리나케 숙제하고 나서 약속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옆에 와서 아들아이는 졸라댄다.

 

"아빠, 언제 끝나요?"

"내가 말했잖아. 이 시간에 끝날 거라고."

 

아들아이가 이렇게 졸라대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될 수 있는 한 약속 시간을 지키기도 하지만, 때론 약속시간을 넘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중간에 멈출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알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 아들아이는 사전에 작업을 해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딸아이는 양반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경우, 그러니까 오래 걸릴 거라고 판단되면 아예 컴퓨터 사용 요청을 해오지도 않는다. 동생보다 나이가 많아서 철이 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비교적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한 딸아이의 성격 탓일 게다. 그렇게 알아서 졸라대지 않는 딸이기에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있다. 딸아이가 컴퓨터를 계속 사용하고 있을 때는 나름 분명한 사용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사용해야 될 경우가 생겨도 섣불리 컴퓨터를 넘겨달라고 못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치 챘겠지만, 아내와 나와 '컴퓨터 선점 전쟁'은 거의 없다. 물론 아내는 아이들과도 거의 없는 편이다. 정말 가끔씩 아이들과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한 달에 한 번도 있을까 말까다. 아내가 그렇게 '컴퓨터 선점 전쟁'에서만큼 자유로운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단지 컴퓨터랑 덜 친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컴퓨터가 없어도 잘 살기 때문이다. 가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는 메일을 확인하고 보내는 경우와 즐겨찾기에 추가되어 있는 해당 사이트에서 정보를 알아내려는 경우다. 그것도 나와 함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아내가 독자적으로 컴퓨터랑 친하게 지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웬만하면 컴퓨터 한 대 사지"라고.

 

 

우리 집에 컴퓨터 한 대를 더 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집이 좁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한 대 더 사면 본체, 모니터, 컴퓨터용 책상, 의자 등이 기본적으로 자리를 차지할 텐데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 '에이 설마 그럴까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13평도 채 안 되는 시골 흙집에 거실, 안방, 건넌방 등 3칸이 있다. 안방이야 잠자는 방이고 살림살이가 있는 방이니 당연히 컴퓨터가 들어갈 자리가 없고, 거실이야 싱크대와 부엌살림이 차지하고 있으니 자리가 없다. 남은 건 건넌방인데 그 건넌방에는 한 쪽 벽면 빼곡히 책장이 자리 잡고 있고, 한 쪽 벽면엔 공부하는 책상과 기존 컴퓨터 책상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노트북이라도 하나 들여 놓으면 되겠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에서 중고노트북을 사보려고 며칠을 별렀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너무 비싼 것은 필요 없고, 한글 작업만 되고 인터넷 검색만 되면 될 만한 것을 찾아 헤매었다. 가격과 컴퓨터 질이 내 수준에 적당한 것을 고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트북은 생전 처음 대해보는 거라 내심 잘 못 사서 고생할까봐 괜히 꼼꼼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여러분은 이 글 제목에서부터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 포기했다. 그동안 '편리함에 모든 것을 내맡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불편함'을 따르는 친환경적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온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번에 '컴퓨터'를 서로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만을 해결하려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나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불편함'을 돈을 들여서 한 방에 해결하려는 것을 선택하려고 했던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나는 '불편함'이 좋은 것이고, '편리함'이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는 그 반대 방향의 이분법 또한 그럴 생각은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편리함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며 우리 집도 그런 평범한 가정 중 하나임을 잘 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편리하게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불편함'보다 '편리함'이 좋은 것도 나는 안다. '편리함]에도 '불편함'에도 일장일단이 있음도 인정한다. 돈을 들여 '불편함'을 잘 해결하는 것도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대단한 능력중 하나임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에 '불편함'을 선택한 것은 우리 가족끼리라도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식을 돈으로 단번에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타협하고 양보하고 대화하는 기술을 서로 익혀보자는 것이다. 때로는 속상하고 때로는 화나는 일도 있겠지만, 어쩔 것인가.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인 것을. 이 일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타협하고 대화할 일이 수두룩할 것이니 말이다. 앞에서 계속 보여준 것처럼 평소 아이들과 내가 했던 대로 하면 큰 '불편함'이 없을 거 같아서 '불편함'을 선택했다.

 

그렇게 되니까 아이들도 자연스레 컴퓨터만 줄곧 하지 않게 되는 또 다른 좋은 점도 있다. 아이들이 너무 컴퓨터를 많이 사용할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컴퓨터를 하지마라고 윽박지르지 않을 만한 합당한 명분도 있으니 참 좋다.

 

앞으로 얼마나 이 결정이 지켜질지 모를 일이지만, 당분간은 변동사항이 없을 듯싶다. 그동안 편리함의 유혹에게 알게 모르게 연패를 당하다가 모처럼 거둔 1승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이기에 값지다. 이렇게 선언하는 것은 대세(?)를 굳히려는 나의 작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도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태그:#편리함과 불편함, #더아모의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