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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에서 대웅전 마당까지 이어진 벚꽃길.
 천왕문에서 대웅전 마당까지 이어진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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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神院寺)'에서 '신원사(新元寺)'로

비를 쫄딱 맞으며 계룡산을 넘어 신원사 경내로 들어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금쯤 벚꽃이 절정을 이뤘으리라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사이로 들어서는 기분이 매우 황홀하다. 비를 흠뻑 맞은 벚꽃잎이 더욱 싱싱하다.

갑사·동학사 그리고 지금은 절터만 남긴 채 사라진 절 구룡사와 더불어 신원사는 계룡산에 있는 4대 사찰이다. 계룡산 남쪽, 비교적 너른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 처음 지었다고 전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번 고쳐 지었으며 1980년대 말에도 대대적으로 수리한 바 있다.

절 이름은 처음에 '신원사(神院寺)'였다고 한다. 귀신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은 신원사가 계룡산 산신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사찰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1957년에 '신원(新元)'으로 한자를 바꾸었다. 계룡산을 국가의 신기원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자기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일이다.

열반종의 개산조로 알려진 보덕 화상이 창건한 절

충남 유형문화재 제80호대웅전과 5층석탑.
 충남 유형문화재 제80호대웅전과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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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안.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오른쪽에 창건주 보덕화상 진영이 걸려 있다.
 대웅전 안.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오른쪽에 창건주 보덕화상 진영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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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뒷벽에 그려진 비천상.
 대웅전 뒷벽에 그려진 비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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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는 늘 조용한 편이다. 계룡산 사찰 중 벚꽃 핀 풍경만 놓고 보면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전에서 가까운 동학사로 몰려간다. 그 덕분에 신원사의 벚꽃은 끝까지 제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신원사에 오는 나그네들은 벚꽃의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대신 관조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비를 맞으며 꽃 구경이나 하고 싶은 생각을 지그시 누르고 대웅전을 향해 간다. 이곳까지 왔으니, 그래도 전각들은 둘러봐야 할 게 아닌가.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 고종 13년(1876)에 보련 화상이 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1989년에 보수한 바 있다.

정면 3칸, 옆면 3칸 크기의 대웅전은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이 아닌 연천봉을 배경으로 남쪽을 향해 앉아 있다. 동쪽으로 약간 돌아앉은 채 처마의 끝을 살짝 올렸다. 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데 전각 이름은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 현판을 걸고 있다.

세 분 부처님 오른쪽엔 이 절의 창건주인 보덕 화상의 진영이 걸려 있다. 보덕 화상은 <대반열반경>을 근본경전으로 삼았던 종파인 열반종의 개산조로 알려져 있다. 열반종은 모든 중생은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깨달아 얻는 게 열반이라는 종지(宗旨)를 가진 종파다.

비 내리는 대웅전 마당 풍경. 우측에 있는 전각은  범종각이다.
 비 내리는 대웅전 마당 풍경. 우측에 있는 전각은 범종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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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에 걸린 독성탱.
 독성각에 걸린 독성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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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에 서서 마당에 서 있는 5층 석탑을 바라본다. 신라계 석탑의 형식을 취한 5층 석탑이 서 있다. 근래에 세운 것이다. 정면의 대웅전과는 세로로 축을 맞추고, 대웅전 우측에 있는 영원전과는 가로로 축을 맞춰 세운 것으로 보인다.

1990년에 미얀마와 태국에서 모두 7과의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이운해서 탑 속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왼쪽엔 독성각이 있다. 1982년에 지었다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옆 칸을 어칸의 1/3 정도로 작게 만든 게 특징이다.

독성각 안에는 독성탱이 봉안돼 있다. 독성(獨聖) 은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이다. 나반존자로 잘 알려진 분이다. 깊은 산속인 천태산을 배경으로 길고 흰 눈썹을 가진 나반존자가 폭포를 바라보며 사색을 하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무학대사가 신원사를 중창할 때부터 존재했던 영원전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영원전.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영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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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앞마당의 동쪽에 있는 영원전은 서향한 건물이다.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건물로써 명부전에 해당하는 곳이다. 영원전이라는 전각의 명칭은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신원사만의 특징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명부전보다는 매우 시적인 분위기인 영원전(靈源殿)이 마음에 든다.

영원전은 조선 태조 3년(1394년) 무학대사가 신원사를 중창할 때부터 존재했던 전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지은 것이다. 현판에는 신묘(辛卯)라는 간지(干支)가 부기돼 있다. 여기서 신묘년은 1891년을 가리킨다. 건물을 새로 짓긴 했으되, 현판은 옛 것을 그대로 단 것이다.

전각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젊은 수도승인 도명존자와 문인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아귀·축생·수라·사람·하늘 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끝없이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서원을 세운 분이다.

홀로 떨어진 채 '왕따'를 견디는 5층 석탑

영원전을 나와 절 동쪽에 있는 중악단(中嶽壇)에 들린다. 중악단은 왕실에서 사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산신당이다. 신원사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신원사 부속건물처럼 보이지만, 신원사와는 무관한 건축이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31호 5층석탑.
 충남 유형문화재 제31호 5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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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을 둘러보고 나서 동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5층 석탑을 향해 간다.

이 탑은 현재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2층 기단에 5층의 몸돌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의 처마는 거의 수평으로 밋밋하게 처리했다. 탑 앞에는 배례석을 두어 예를 갖추도록 했다.

1975년에 탑의 해체·복원 공사 당시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함원통보·황송통보·주둥이와 손잡이가 깨진 자기주전자·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형식을 따라 세운 고려 전기의 탑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 서면 계룡산 정상인 천황봉이 올려다보인다. 정상 근처 산자락을 비구름이 감싸고 있어 무척 신비롭다. 다시 산을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싶을 만큼. 그러나 멀리서만 허락되는 풍경이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신원사를 장엄하게 보이게 한 것은 벚꽃이 아니었다

벚꽃에 가려진 벽수선원.
 벚꽃에 가려진 벽수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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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참배하러 온 늙으신 어머니와 떨.
 법당을 참배하러 온 늙으신 어머니와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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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내로 돌아와 벚꽃을 감상한다. 벚꽃 풍경은 범종각에서 벽수선원으로 이어지는 축선이 가장 압권이다. 벽수선원 근처에선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진작가들이 촬영에 한창이다.

문득 앞을 바라보니, 지팡이를 짚은 연로하신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경내로 들어오고 있다. 옆에서 할머니를 부축하고 걸어오는 이는 딸일까, 며느리일까. 너무나 정다운 모습이다. 딸이라 치더라도 그렇고, 며느리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매우 곱게 늙으신 모습이다. 저런 얼굴을 가지려면 가슴속에 평생 모아두었던 미움뿐 아니라 사랑까지도 모두 불살라야 하리라. 고집멸도(苦集滅道)- 4성제 가운데 고와 집을 멸했을 터이니, 이제 곧 도에 이를 것이다. 조심조심 마당에 깔린 박석을 밟으며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다. 가슴 한 쪽이 찡해온다.

오늘, 신원사를 장엄하게 보이게 한 것은 결코 화려한 벚꽃이 아니다. 아름다운 벚꽃 위에 내리는 빗방울은 더더욱 아니다. 부축하고 부축을 받는 모녀의 소박한 모습. 이 풍경이야말로 절집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한떨기 꽃이다.

비를 맞으며 사하촌인 양화리 마을을 지나간다. 줄지어 선 음식점 어딘가에서 빈대떡 냄새가 새어 나와 잠시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나는 비를 맞으며 걷는 게 훨씬 좋다. 혀를 만족시키는 빈대떡보다는 온 몸의 오감을 고루 만족시키는 비가 더 좋다. 뒤돌아서 쳐다본 계룡산도 "나 역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태그:#계룡산 , #신원사 ,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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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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