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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이 끝났다. 백성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절묘한 수를 보여주었다. 역시 백성들의 의식은 정치권보다 몇 수 위였다. 백성들은 한나라당으로 표 쏠림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그야말로 '며느리'도 모르게 뒤집어 버렸다. 위대한 백성이 만들어낸 묘수 중의 묘수이다.

 

그러나 백성의 위대함은 아쉽지만 그 정도로 멈춘다. 편은 절묘하게 갈라 놓았지만 투표율은 최악이기 때문이다.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백성 2명 중 1명이 투표를 한 것이고, 후보자들은 투표한 1명의 몸뚱아리를 가지고 이리 찢고 저리 발려 골고루 나누었다. 

 

정치권을 무시한 백성, 머리카락만 확보한 이도 금배지 달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몸뚱아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위를 차지한 이가 당선이 되었는데, 어떤 이는 팔 하나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어떤 이는 머리만 차지하고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어떤 이는 다리 한 쪽을 확보하고도 당선의 영예를 얻었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빗질 할 때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도 여의도행 기차를 탔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까. 그러나 정작 우스운 것은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의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법이 그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팔 한 쪽과 다리 한 쪽으로 어떻게 걷고 뛸 것인가. 주워든 머리카락만으로 사람을 다 차지했노라 대표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데, 짐짓 현실은 그런 일들 모두 외면하고 당선자의 환호와 낙선자의 눈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체 백성의 절반만 참여한 18대 총선 게임은 실패작이다. 절반의 백성은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철저하게 정치권을 무시했다. 선관위에서 백성들을 향해 투표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대중가수를 등장시켜 선전전을 펼쳤지만, 절반의 백성은 정치권을 무시하는 즐거움을 선택했다.

 

당선자 만드는 여론조사, 유권자는 할 일 없었다

 

투표를 하고 건네 받은 할인권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적어도 시골에서 할인권은 밥 한끼를 해결할 수도 없는 종이 쪽지에 불과했다. 코를 풀기에도 작고 밑을 닦기에도 불편한 할인권은 무시하기로 작정한 백성을 투표장으로 불러 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름간 총선 현장을 지켜 보았지만 백성들의 관심은 꽃나들이에 더 부풀어 있었다. 이번 총선은 아르바이트생이 설문지 들고 쫓아 다니면서 설문지 받는 일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유세 현장은 썰렁했고, 박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후보자의 쉰 목소리만 허공을 떠돌았다.

 

"여론조사에서 저 사람이 앞선다는구먼."

"그래? 그럼 되겠군."

 

끝이다. 고작 몇 사람만이 모여있던 사람들도 그런 대화를 끝으로 유세 현장을 떠났다. 선거에 대한 관심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후보자가 어떤 공약을 가지고 나왔고,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미 여론조사에서 당선자가 나왔으니 달리 투표하러 갈 일도 없다는 이 나라의 백성들. 경제를 살린다는 말이나 대운하를 반대해야 한다는 말이나 먼 산 보듯 흘러보냈다. 참으로 간단하고 편리한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총선이 일개 백성의 백일잔치보다 못하게 된 것일까. 

 

 

이번 총선은 공천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선거라는 시합을 두고 백성은 선수로 준비하고 있었지만 상대 선수인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후보자는 백성들과 탐색전도 없이 나 뽑아 달라고만 호소했다.

 

"저게 누구여?"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자라는구먼."

"그래?"

 

또 끝이다. 상대 선수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그렇게 된 상황에서 이번엔 백성이 기다리다 지쳐 포기했다.

 

"어차피 조직 싸움 아니겠어?"

 

백성은 그나마 아쉬운지 겨우 한마디 곁들인다. 그리곤 백성들은 가던 길 간다. 조직에 속하지 않았으니 남의 일처럼 선거에 임한다. 백성은 이번 선거를 그렇게 조직에 일임했다. 이렇듯 18대 총선은 준비도 부실하고 진행도 서툴렀다. 총체적 부실의 책임은 백성이 아니라 정당에게 있지만 각 정당들은 자신들의 의석수가 몇 개인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 선거에 30%대, 그 다음 선거에 20%대로 투표율이 떨어져도 대표성을 인정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총선은 아니지만 몇몇 선거에서 이미 전자투표제를 실시한 경험이 있다. 효과는 좋았다.

 

민의 제대로 대변하는 전자투표제 도입 서둘러야

 

선관위도 전자투표제 준비는 끝났다고 한다. 문제는 정당들이다. 투표율이 높아지게 되면 각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전자투표제가 도입되면 불리하다는 편이다. 그러니 전자투표제 도입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도 적극적이지 않다. 계산이 복잡하단다.

 

백성은 없고 조직만 있었던 18대 총선 현장. 취재를 한답시고 유세장을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민망했다. 나도 그들의 조직원이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보기에 내가 민주당의 유세 현장에 있으면 민주당 조직원이었고, 한나라당 유세 현장에 가면 한나라당 조직원이었다. 내 진실과 관계없이 적어도 이번 총선 기간 중에서 나는 그렇게 이중 조직원으로 살아갔다.

 

그런 눈총만 받았을까. 평화통일가정당 유세 현장에 갔더니 "너도 통일교 믿냐?" 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달리 대답 할 말도 없는 질문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흡, 하며 숨을 멈추고 말았다.

 

선거라면 안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흔 여섯의 우리 어머니. 어제도 당당히 한 표 행사했다. 밤 시간 선거 결과가 궁금했던지 "누가 됐냐?"하고 묻는다. 아들은 "어머니가 찍은 사람이 됐네요" 했다. 우리 어머니 "그래? 아구야, 잘 됐네"하며 좋아했다. 투표의 즐거움을 누린 어머니. 지금까지 나라 일이라면 이렇게 앞장서며 사셨다.

 

총선은 끝났다. 간밤 바람이 세게 불었고, 비도 제법 내렸다. 총선에서 있었던 구구한 억측과 불미스런 일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빗물에 씻겨내려 가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총선결과,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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