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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울렁거린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꿈틀거리더니, 파릇한 새싹이 돋는다. 향기로운 마술이다. 댓돌에서 내려딛던 발을 움찔 멈춘다. 무언가 파릇한 게 눈에 띄어 몸을 낮추어 본다. 아직 쌀쌀한 바람결에 몸을 움츠리긴 했어도 제비꽃이 싹을 내놓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뵈지 않던 새싹이다.

 

 

쌀쌀한 바람에 마당의 진달래 망울이 오들오들 떤다. 읍내만 해도 벌써 진달래며, 개구리가 만개했는데 움푹 들어선 골짜기라 그런지 늘 봄이 늦되다. 늦은 만큼 늦게 떠날 봄이지만 마음은 벌써 조급해진다.

 

 

장독대 밑에도 괭이눈이 형광빛 눈을 뜨고 봄볕에 졸고 있다. 겨우내 차가운 북풍을 모질게 받고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반가울 뿐이다. 후미진 골짜기에서 두어 포기 캐어다 심은 것이 이렇게 자욱하니 깔렸다. 고마운 일이다.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모처럼 포근한 날씨에 바람도 잔잔하다. 어제까지도 오들오들 떨던 꽃들이 방글거리며 귀여운 얼굴을 세상 밖으로 내민다.

 

 

진달래들이 잎도 없이 시골 처녀 같은 연분홍 꽃들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개나리들도 노란 꽃들을 터뜨리고, 밭 가장이의 현호색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발밑이 훤해서 바라보니, 흰제비꽃이 소담하니 꽃을 피웠다. 겨우내 눈에 덮여 흔적도 찾을 수 없더니 이렇게 고운 꽃으로 돌아왔다.

 

 

밭고랑을 뒤져 먹이를 찾는 닭들 뒤로 노란 꽃다지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멀리서 보면 연록의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하다. 그 곁에서 괴불주머니가 노란 꽃을 활짝 펼치고 있다. 

 

 

아직도 발밑에서는 두런두런 속삭이는 소리들로 울렁거린다. 이맘때면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질척거리는 땅이 돋궈내는 싹들로 지구는 도처에서 꿈틀거린다. 소리도 없이 땅을 뚫고 나오는, 이처럼 향기로운 틈입자들이 있을까. 이제 봄은 이들을 앞세우고 저만치서 머리에 보라색 제비꽃을 꽂고 살랑거리며 올 것이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올해도 봄은 오고, 꽃들도 왔다. 세상도 이와 같고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아, 봄날처럼 오고 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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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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