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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6·15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 경제 살리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빌 클린턴의 대북 정책을 부정했다가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도 과거 10년간의 화해와 협력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백낙청(70)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4일 오전 <오마이뉴스> 등 몇몇 인터넷 언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3일 금강산에서 안경호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장과 접촉을 갖고 전날 저녁에 막 돌아온 상태였다.

 

이틀간이나 치렀던 남북한 회의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을 텐데 그가 급하게 기자들 앞에 나온 것은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고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백 대표가 이번에 만난 북쪽 안경호 위원장은 노동당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다. 그는 남한에도 여러번 오는 등 우리 쪽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대남 일꾼'이다.

 

이명박의 한미동맹 강화론, '민족자주'는?

 

안 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북한 정부의 당국자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노동당이 이끄는 나라로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남북 당국간 대화가 완전 끊긴 현 상태에서는 사실상 그가 최고위급 북쪽 인사로 남쪽 사람과 공식 회의를 한 셈이다.

 

백 대표에 따르면 회의 시간 중 안 위원장이 훨씬 많은 말을 했고 그 발언의 상당 부분이 남쪽 정부에 대한 비난이었다고 한다.

 

백 대표는 "변화된 정세에 대한 북쪽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게 이번 회의의 큰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며 "새 정부에 대해서 자신들로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관망하다 이제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대단히 부정적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에서는 최근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고 이는 전적으로 남한 당국의 책임이라는 것"이라며 "최근에 몇 가지 문제된 발언에 대해서는 북측을 자극하는 엄중한 사태로 파악하고 있음을 길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론'이 남북 관계도 잘 하면서 미국하고 잘 지내겠다면 북쪽도 상관할 바 아니지만 '민족 자주'는 버리고 '대미 의존'으로만 가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핵 문제 해결 없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나 합참의장의 '선제 타격론'도 단순히 개인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북을 무시하고 도발하려는 자세가 표현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백 대표는 "이번 회의 자리가 비록 적당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북은 식량이나 비료 지원 문제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며 "남측 당국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측 인사 "이명박 정부에 기대할 것 없다"

 

그는 "북한의 일부 인식에 대해서는 나도 이의를 제기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백 대표는 "새 정부의 기본적인 기조 자체부터 재검토의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분들이 너무 경험이 없고 북쪽을 모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인수위 때도 성급하고 오만한 자세로 숱한 문제가 생겼는데 이는 국민 여론과 총선 때문에 수정이 가능했지만, 남북 관계는 그동안 '피드백'이 없다가 갑자기 북한의 반응이 터져나오면서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3일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하자고 제의를 한 것은 좋다"며 "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의심할만한 언사나 행동이 우리 쪽에 많지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도 태도가 바뀔 테니까 당신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의 진전 상황을 보면 우리는 강경하게 바뀔 것이니까 당신들은 숙이고 들어오라는 말 밖에 안된다는 인상을 줄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흡사 논문을 쓰듯이 꽤나 길게 얘기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기존의 쌍방간에 이룩한 합의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6·15와 10·4 공동 선언은 김대중·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서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격하하는 것은 쌍방간의 관계를 진정성을 가지고 풀어가겠다는 발언의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비핵개방 3000' 구상도 이명박 정부는 선의로 제안했는지는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대단히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다. 핵 문제는 6자회담 등을 통해 북미 쌍방간에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진행중인데 남쪽에서 비핵화 안되면 못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으로서는 오만한 자세로 볼 수 있다.

 

개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북이 스스로 개방하지 않는 면도 있고 외부 환경이 개방을 못하게 하는 면도 있는데 그런 복잡한 문제를 차근 차근 풀어가기 보다는 개방해야 도와주겠다는 식은 고압적이다.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주겠다는 것도 남쪽의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일 수 있다. 그쪽은 자기 나름대로의 체제를 가지고 운영하고 있고 무엇보다 남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상호 존중하기로 했다. 최대한 국민소득이 올라갈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몰라도 목표치를 운운하는 것은 겸허한 자세는 아니다"

 

"비핵개방 3000구상은 천민자본주의적 발상"

 

백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아예 무시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예를 들었다. 부시도 ABC정책(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한 것만 빼고는 모두가 괜찮다는 방식)으로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확 뒤집어 엎었지만 결국 현재는 클린턴 식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바꾸는 데 6년 걸렸다"고 지적한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우도 어느 정도 학습기간이 필요한데 6년 걸리면 큰일 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남북 기본합의서가 제일 좋다고 하는데 이 문서는 사실 남북관계와 핵 협상을 병행하겠다는 내용"이라며 "7·4 공동성명, 6·15, 10·4, 남북 기본합의서 등 모두 소중한 문서인데 비핵화를 곡해해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최근 북핵 신고 문제는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많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엄동설한이어서 북한이 '통미봉남'(북한이 미국과는 대화하고 남한과는 관계를 단절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북한은 북미 관계가 잘 풀렸을 때 더 자신감을 갖고 남쪽을 배제하려는 통미봉남을 강화할 수도 있고 거꾸로 적당한 계기에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민간 교류에 대한 희망은 가지고 있지만 당국에 대해서는 더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것이 수뇌부의 최종 판단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남쪽이 어떤 식으로 나가느냐에 따라서 북쪽의 태도가 전혀 바뀔 여지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남쪽에서 부드럽게 나갈 때 북쪽이 원래 예정에 없던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쪽 체제의 성격상 우리쪽에서 고압적으로 나간다고 굴복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태그:#백낙청,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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