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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박사가 사랑한 수식>
ⓒ 도서출판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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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좀 괴이했다. <임신캘린더>였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 느낌이 좀 기묘했다.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오가와 요코의 소설에서 왠지 모를 '적요'를 느꼈다. 그리고 그 적요에서 약간의 두려움도 살짝 느꼈다. <약지의 표본>도 마찬가지였다.  

오가와 요코라는 이름의 인지도를 올려주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었다. 이 소설은 전에 읽었던 소설들과 같은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숫자의 세계가 그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것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숫자의 세계를 문학으로 표현해낸 작가의 솜씨가 더 절묘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80분이라는 한정된 기억력 속에서 살아야하는 박사와 그를 돌봐주는 가정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 '루트'의 이야기다. 8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박사는 모든 것을 숫자로 기억하고 증명한다. 처음 만난 가정부에게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신발치수를 묻고 생일을 묻는다. 그리고 그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 기억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는 '소수'다. 소수는 오직 1과 자신만을 약수로 하는 숫자다. 고결하고 순수하다. 박사가 가정부의 아들에게 붙여준 별명 '루트'는 그 기호 안에서 모든 숫자를 평등하게 포용할 수 있는 기호다. 그가 들려주는 질서정연하고 신비스러운 숫자의 세계는 이 세 사람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켜 주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숫자의 세계에서 이들의 추억과 기억은 영원한 것이다.

수학을 주 소재로 삼고있지만 읽기에 부담스럽거나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몰랐던 수학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감격할 정도였다. 읽는 내내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 야구라는 소재까지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야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이 소설에 더욱 열광한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까지 넣어 재미 높여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내 가슴 속에는 아름답다는 표면적인 감상 외에 또하나의 어떤 묵직한 느낌이 꽉 차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느낌의 정체를 두루뭉술하게나마 감지하려던 찰나, 책속에서 박사의 입을 통해 나온 한마디를 읽고는 '아, 바로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다. 바로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수학잡지의 현상문제를 풀어 리포트 용지에 깨끗하게 옮겨 쓰고서 다시 한번 훑어볼 때면 박사는 자신이 도출해 낸 해답에 만족하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조용하군."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이 아니라 조용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히 자리하여 덜고 더할 여지 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박사는 그런 상태를 사랑했다.(p.93)

조용함은 질서정연함이며 평화로움이며 단정함이다. 그리고 직선이다. 그리고 직선은 영원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직선과 같이 참으로 조용하며 아름답고 평화로운 소설이었다.

한가지 약간 미심쩍은 점은 작품 중 박사와 미망인 형수의 관계다.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음이 은연중에 암시되나 그 걸로 끝이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인지 작가의 마무리가 모호하다. 하지만 그것도 잘한 일이다. 거기에 집중했다면 숫자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용함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상한 3류 짬뽕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후카츠 에리가 가정부 역할로 나온다. 소설 속에서는 가정부가 '나'로 등장하나, 영화 속에서는 아들 루트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그 무한하고 아름다운 숫자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까, 내심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영화로 하기엔 약간 무리였나 보다.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한 장면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한 장면
ⓒ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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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멋진 영상으로 풀어간다 해도 자칫하다간 '교육방송'이 되기 십상이었을테니까. 아닌게 아니라 루트가 학생들에게 소수나 우애수를 설명하는 장면은 무슨 수학교육방송같았다. 어쨌든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도 끝내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소설속에서는 참 근사하게 풀어나간다.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수학의 아름다운 세계

대신 영화에서는 박사와 미망인 형수와의 관계에 조금 더 비중을 두었다.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딱 좋을 만큼 살짝 무게를 두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장면은 영화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던 장면들이 몇 개 있었는데 생략되었다. 좀 아쉬웠지만 표현방법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여배우 후카츠 에리의 빛나는 눈망울과 윤기나는 머릿결,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숫자의 세계를 대변해주는 듯 했다. 벚꽃이 만발한 풍경도 좋다. 특히 요즘과 같이 벚꽃이 막 꽃망울을 피기 시작한 거리를 걸을 때는 더욱 생각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마음이 심란할 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다. 영화보다는 소설을 '강추'하고 싶다. 그 안에 깃든 무수한 아름다움과 지극한 평화로움, 이런 게 가끔 그리울 때가 있으니까. 이 글을 쓰고 난 지금도 참 조용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도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도서출판 이레/2004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 테라오 아키라, 후카츠 에리 출연/2006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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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사가 사랑한 수식, #후카츠 에리,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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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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