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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2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인수위원회 첫 워크숍이 열렸다.(자료사진)
 지난해 12월 2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인수위원회 첫 워크숍이 열렸다.(자료사진)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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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영사모'가 뜨고 있다. 영사모는 '영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난 1월 국정홍보처의 한 공무원이 "우리는 영혼이 없다"고 한 뒤 널리 퍼졌는데 대통령의 말이라면 현실성이나 자기 주관은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집행하려는 공무원들을 지칭한다. 과거 10년간 잘나갔던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이명박 정부에서 태도를 확 바꾸자 이를 비꼬는 기사에도 '영혼'이 등장한다. (관련기사 '김하중 장관의 영혼')

'영혼이 없다'는 말은 자신의 주체적 판단이나 논리와는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영혼이 없다'는 말을 공무원들, 그것도 정권 성향에 따라 파리 목숨일 수밖에 없는 일반직 공무원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너무 편파적인 것 같다.

공무원들만 영혼이 없나?

최근 북한은 개성 경협사무소의 남쪽 정부 당국자를 추방하고, 서해에서 미사일 발사를 했고,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불렀다.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통상적 훈련"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을 역도라고 부른 것에 대해 "국가원수 이름을 거론한 것은 적절치 못한 태도로 본다"는 반응이 다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때 좌파 정권의 '안보 불감증'이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일상 다반사인 정치판이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비판 언론'을 자임해왔던 보수 언론들의 행태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한가한 태도를 보이면 보수 논조에 따라 맹비판하는 게 '태생적 비판 언론'의 기본 임무일 것 같은데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를 주문한다.

보수 쪽 인터넷 언론이나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북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면 되레 저들의 의도에 말려든다"는 식이다. 이전 같으면 "모이자! 서울 시청 앞으로" 이런 구호가 나왔을 텐데 말이다. '영혼이 없다'고 공무원들만 동네북처럼 두들기는데, 정권 바뀌니 태도가 싹 바뀐 한국의 보수도 영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곡절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요즘 조중동 가운데 유일하게 이명박 정부에게 가끔 까칠한 말을 하는 <조선일보>나 2일 정치부 신아무개 기자의 칼럼에서 현 정부의 한가함을 살짝 비판했을 뿐이다. (관련 기사 '북 문제에 침묵한 국무회의')

신 기자는 "1일 국무회의에서 회의 주재자인 총리는 물론이고 소관 부처인 통일부·국방부·외교부의 어느 장관도 북한의 '북' 자도 꺼내지 않았다"면서 "이 나라의 국무위원들은 정말 대담하거나, 생각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일반 공무원에서 이제는 정무직 고위 공무원으로 영혼 없는 현상이 번져 '계급 격차'가 줄어든 것일까?

이명박 대북 정책은 '적대적 무시 전략'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2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최근 북한의 도발적 발언과 행위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터무니없는 협박과 도발을 중단할 것' '이명박 정부는 원칙을 지키고 당당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2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최근 북한의 도발적 발언과 행위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터무니없는 협박과 도발을 중단할 것' '이명박 정부는 원칙을 지키고 당당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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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자유 선진당 총재는 2일 오전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총재는 "북한이 강공으로 나오는 것도 이명박 정부가 '실용'이니 '유연'이니 하면서 대북정책에 있어 모호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북한의 이러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북한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자'는 말은 보수진영이 지난 10년간 수없이 했던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수진영의 '비주류'인 이회창 총재의 입에서나 나온다. 정부 쪽 관련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사실상 '적대적 무시 전략'이다.

외교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핵실험을 다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며 "우리가 의연하게 대처해 현재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잘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현재 MB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을 아주 얕잡아 보고 있다, 마치 대학생이 초등학생과 함께 농구 경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며 "우리가 갑인데 을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고 북한이 가진 카드보다 남한이 가진 카드가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이 잠시 날뛸 수 있지만 결국 제  풀에 지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도적인 북한 무시는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오기 전까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전략과 비슷하다. 그러나 부시의 김정일 무시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핵 가진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말했던 것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워야

<노동신문> 1일 논평에도 "리명박은 《핵을 이고 통일로 나갈수 없고 남북관계도 힘들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며 "이는 이전 김영삼 역도가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떠벌인 것을 신통히 방불케 하고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일 <노동신문> 논평을 "저쪽 당국자가 한 게 아니다, 속된 말로 급이 맞아야 (공식 반응하지)"라면서 무시했다. 그러나 재임 중 1차 북핵위기로 한반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YS와 신임 이 대통령을 똑같다고 평가하는 '북한 노동당의 공식 기관지' <노동신문>의 논평을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급'을 따지는 청와대라면 김정일이 직접 마이크 잡고 이 대통령을 욕해야 공식 반응할 것인가? <노동신문> 논평에는 "리명박은 그 누구를 《걱정》하기 전에 제 코부터 씻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우리는 지난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남조선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남조선이 우리와 등지고 대결하면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두고 볼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말을 쉽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야 원래 가난한 살림이니 전쟁이 나도 그러려니 하지만, 남한은 견딜 수 있겠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군사적 긴장이 확 조성되면 남한의 국가신용등급 떨어지고, 외국 투자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라면 사재기 사태 벌어질 텐데 이러고도 이명박 정권이 유지될 성 싶으냐? 남 걱정하기 전에 자기 코가 석자나 빠질 수 있다는 것이나 알라.'

경제를 살리겠다며 당선된 이명박 정부의 약한 곳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고 공격하는 것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라면·쌀 사재기 사태가 벌어지자 북한과의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김영삼 정권 자체부터 흔들거렸다.

올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중국이 앞장서서 막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요즘에는 티베트 사태에 쏠린 국제적 관심을 돌린다는 면에서는 한반도의 웬만한 긴장은 중국에 나쁠 것도 없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시류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사람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영혼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보수들에게 과연 영혼이 있는지 의문이다.


태그:#이명박, #북한,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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