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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에는 종종 엄마와 함께 할인점으로 장을 보러 갑니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사냥꾼의 눈빛으로 ‘1+1’로 이름 지은 상품을 찾습니다. 한동안 장을 보지 않아 이것저것 집어넣다보니 산더미가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 옆에서 머리로 산 물건들의 가격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이 만원에…삼만 칠 천원…” 하고 돌아다니던 우리가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바로 쌀 코너입니다. 엄마가 쌀의 가격을 살펴보더니 “지금 우리가 산거 다 더해 보니까 칠만… 거의 칠 팔 만원 정도 될 것 같아. 쌀을 큰 거 사서 십 만원 채워 4천원 할인 쿠폰을 쓸까?”라고 물어보십니다.

 

우리 집은 밥을 먹는 사람이 없습니다. 10Kg짜리 쌀을 사면 4~5개월을 넘게 먹으니 어떤 때는 벌레가 생기기도 합니다. 밥에서 냄새가 나기도 하고요. ‘필요한 만큼만’이 제 모토인 만큼 “안돼! 우리 집엔 밥 먹는 사람도 없는데 큰 거 샀다가 괜히 벌레 생기고 쌀에서 냄새나” 선제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엄마도 질 수 없습니다.

 

“봐 작은 거 사면 4천원에다가… 지금 큰 거랑 가격 차이도 안 나서 거의 만원도 넘게 손해잖아!” 일순간 불꽃이 튑니다. “생각을 해봐 엄마! 우리가 쌀을 얼마나 먹는다고 욕심내? 차라리 조그만 걸 사면 전체적인 가격이 줄어들잖아. 그리고 그 쿠폰 다음에 써도 되는 거잖아?” 이겼다고 생각한 그 순간 엄마가 비장의 카운터를 날립니다.

 

“…이 쿠폰 유효기간 있는 거란 말이야.”

“…….”

 

쓰리, 투, 원! 그래 내가 졌다. 엄마는 기운 좋게 10Kg짜리 쌀을 들어 카트에 싣습니다. 쿠폰을 들여다보며 코를 씰룩거립니다.

 

“엄마, 싸게 산 거 같아서 좋아?”

“그럼!” 

씩씩하게 카트를 끌던 엄마는 계산대에서 예상치 못한 한 방을 얻어맞습니다.

 

“9만7580원입니다.”

“…너 가서 방울토마토 한 팩 집어와.”

기어이 4천원 쿠폰을 사용하고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던 엄마가 말합니다.

 

“이거 다 필요한 거야.”

“안 물어봤어, 엄마.”

“아니 그냥 그렇다고.”

 

야채 값이 도망가는 동안 모녀 사이의 다툼이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제품에 그램 수까지 따져서 쇼핑을 하게 됩니다. 외식을 줄이기도 하고요. 편하게 배추를 잡던 손이 바들바들 떨립니다. 예전엔 10원짜리 풍선껌이 있고 300원짜리 과자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향수하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물가가 오르는 것은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물가의 고속성장이 염려가 됩니다. 장을 본 후에 오랜만에 엄마의 흰머리를 뽑습니다.

 

“너는 안 늙을 줄 아냐?”

 

몇 십년 후에는 아마 제가 딸에게 저런 말을 하고 있겠지요. 그때는 이 물가라는 녀석이 얼마나 더 절 놀라게 만들까요?


#물가#할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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