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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저기 논둑길 좀 봐. 새싹이 많이 자랐어요. 어느새 파래졌지!"

 

아내가 작은 생명들에 대한 반가움으로 호들갑이다. 마당 앞 구불구불한 논둑길에 새싹들이 힘찬 탄생의 손짓을 한다. 검불을 헤집고 올라온 새 봄의 손님들이 며칠 전 내린 봄비로 한결 싱싱함을 더하고 있다.

 

 

만물이 생동한다는 계절이다. 연둣빛으로 번지는 봄의 색깔이 참 신비롭다. 어디 새싹뿐인가? 마당가 목련나무에도 변화가 왔다. 나뭇가지 우듬지 위로 올망졸망 달린 꽃망울에서 보시시 하얀 속살을 내밀었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일보 전이다.

 

봄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서일까? 아내가 소담한 목련 꽃망울을 들여다보다 코끝을 가까이 대본다. 꽃망울 향기를 맡아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봄은 우리 곁에 깊숙이 다가온 게 분명하다.

 

농촌의 봄은 이미 시작되다

 

생명의 기지개에 발맞춰 농촌일손도 바빠졌다. 농약가게 문이 열리고, 농부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웃집 비닐하우스에는 싹이 튼 어린 모종이 훌쩍 자랐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초여름에 수확할 씨감자를 넣었다.

 

우리도 서서히 농사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얼치기 농군이지만 엊그제는 돼지농장에서 두엄이 들어왔다. 작물은 땅에서 거름발이 나야 실하게 자라는지라 올핸 여느 때보다 넉넉하게 받았다. 바람결에 돼지똥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아내가 두엄이 군데군데 무덤처럼 놓인 밭으로 눈길을 돌리며 제법 농사꾼 같은 소리를 한다.

 

"돼지똥냄새가 싫지가 않네. 농촌의 봄은 거름냄새와 함께 온다던데 그 말이 맞죠?"

 

밭에 거름을 펴놓아야 한다. 거름을 펴고 밭을 갈아엎으면 냄새도 잠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작물이 잘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될 것이다.

 

이제 밭을 갈고, 씨를 넣고, 모종을 옮기고 부산을 떨 시기가 다가왔다. 밭에 작물이 채워지면 이를 가꾸느라 꽤나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삽을 챙겨 거름을 리어카에 퍼 담았다. 아내도 거든다. 몇 삽을 뜨더니만 힘이 드는지 그만두며 내게 묻는다.

 

"올핸 얼마라도 돈 되는 농사를 짓자구요. 만날 나눠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이 사람, 우리가 언제 프로였나?"

"암만 그래도 그렇죠. 뭐 이문이 남아야죠!"

"아마추어는 그러는 게 아냐!"

 

이문이 없는 아마추어 농사에 아내는 불만이 많다. 취미생활 농사는 이제 별로라는 것이다. 더욱 농기계가 없는지라 남의 손을 빌려 밭을 갈아 두어 마지기가 넘는 농사일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을 양만 가꾸고, 힘닿는 데까지만 일을 하자고 늘 투덜댄다.

 

올해 농사는 프로로 전향해?

 

아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 돈 되는 농사를 짓자는 아내의 꿍꿍이 속은 뭘까? 아내가 오늘은 그만 하자며 손을 잡아끈다. 그리고 뜬금없는 소리를 꺼낸다.

 

"여보, 우리 거름 값 좀 벌까?"

"무슨 수로 거름 값을 번다는 거야?"

"작년에 거둔 서리태 팔면 되잖아요."

"그거 팔면 돈이 얼마나 된다고?"

"다문 얼마라도!"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데, 그건 좀 그렇다!"

"거름 값이며 밭갈이하며 드는 값을 마련하면 좋죠."

"누가 우리 콩 산다는 사람이 있기나 한대?"

"그럼요. 우리 것은 진짜라며 내 아는 친구가 산다는 걸요."

"난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라구."

 

 

아내가 서리태 파는 것은 자기한테 맡기라고 한다. 며칠 전, 아내 친구가 집에 서리태가 있느냐고 물은 모양이다. 그 친구는 그냥 달라고 하기는 그렇고, 좀 팔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손수 지은 것이니까 진짜라며 값을 잘 쳐준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곳저곳 수소문해 팔아준다고까지 하였단다.

 

지금 시중에 나온 콩은 수입콩이 많다. 수입콩은 농약잔류물도 염려되고, 더구나 유전자조작콩도 나돌아 아무래도 믿음이 덜 가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아무튼 서리태를 팔아 농사비용을 댄다고 하니 좀 우습다. 아마추어가 장사를 하는가 싶어 썩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는 작년에 서리태를 가꿨다. 특별한 재배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텃밭 빈 곳에 콩씨를 넣었다. 그리고 애쓴 보람이 있어 수확양도 수월찮았다. 밥 지을 때마다 콩을 넣어 먹었지만 많은 양이 남았다.

 

콩알 하나에도 소중함이 있다

 

아내가 서리태가 담긴 함지박을 꺼내왔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상을 펴놓았다.

 

"당신, 뭐하려고?"

"콩 골라야죠."

"고를 게 뭐 있나? 우리 것은 일류인데."

"그래도 골라서 팔아야 사먹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 법이에요."

 

 

콩을 상 위에 펴놓는다. 한 알 한 알 실한 것과 물짠 것을 가린다. 사실, 좀 작고 덜 여문 것을 먹어도 아무 상관없다. 그래도 상품가치를 높이려면 골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 얼마씩 받을 거야?"

"주는 대로 받지 뭐."

"그래도 시세라는 것이 있을 게 아냐?"

"그런가? 아마 사먹는 사람이 알아서주지 않을까?"

"그럼 근이나 잘 쳐주라고!"

"그 거야 물론이죠!"

 

아내는 이미 장사꾼이 다된 듯싶다. 둘이 꼬박 두 시간이나 애썼다. 이것도 일이라고 허리가 아프다.

 

그러고 보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콩농사도 그렇다. 밭을 갈아 심고, 가꾸고, 그리고 가을에 털고! 또 잘 생긴 것과 못 생긴 것까지 골라야 돈이 된다니! 그래서 콩알 하나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 맞는 듯싶다.

 

새봄과 함께 시작한 텃밭농사. 올해도 얼마나 부산을 떨어야 할지 모르겠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을 보니 마음이 바쁘다.


#봄 농사#서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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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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