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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선택한 귀농 1년의 시간의 지나고 이제 2년차의 시간이 봄기운과 함께 제법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농사를 경제자립의 기본으로 삼고 육체와 정신노동의 조화로운 삶을 실천해보겠다고 도전한 지난 1년 나의 귀농 성적표는 우선 경제면에서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빈집과 700평 밭을 임대받아 무농약, 무제초제, 무비료를 고집하며 감자, 고추, 서리태콩, 들깨, 고구마를 지었고, 곶감 생산까지 합쳐 농사로만 약 250만 원을 벌었다. 여기에 임대료 40만 원과 기타 투자비용을 제하면 200만 원이나 제대로 벌었을까?

얼추 계산해 보니 연 지출 2천만 원에 총수입 5백만 원 잡으니 1년 동안 시골살이 경험하고 농사 배우는 수업료로 1천5백만 원을 수업료로 지출한 셈이다.

첫 해야 그렇다 쳐도 2년차부터는 그렇게 낭만적으로 안일하게 다섯 가족의 생활을 설계할 수는 없었다. 모아 놓은 돈이 많아 여유자작하며 살 형편도 아니고, 농사 외에 바로 소득이 될 만한 부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힘닿는데까지 농사로 기초경제자립을 해보자고 한 귀농 초심을 견지해 가기로 했다.

감자밭에서 감자밭을 일구는 아내와 그 앞에서 활짝 웃는 늦둥이 성결이
감자밭에서감자밭을 일구는 아내와 그 앞에서 활짝 웃는 늦둥이 성결이 ⓒ 이종락


1년 농사 통해 주제 파악을 하다

지난 1년간 경제 문제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몸의 고통이었다. 귀농 전 3년간 백 평 정도 텃밭 농사를 한 경험이 있어 나는 농사일에 대해 자신만만했다. 게다가 공병대 3년의 군대생활을 통해 삽질과 '노가다' 일에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허풍'과 달리 1천 평 밭농사에 완전히 두 손 들고 말았다.

한참 아플 때는 도로 보따리 싸서 올라가야 하지 않나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허리부터 시작해 손가락, 팔꿈치(일명 테니스엘보), 어깨, 손목, 다리 등 곳곳에 통증이 찾아오는데, '아~시골사람들이 이러다 골병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농사일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병이고, 내가 주제를 모르고 초장부터 너무 몸을 혹사시킨 게 주원인이었다. 근본적으로 보면 내 체력이 남들보다 부실하다는 것 일테고. 그렇다고 한 해 농사짓고 몸 아프다고 귀농을 고민할 수는 없었다.

우선 내 몸과 체력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몸 상하게는 일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바로 '환자처럼 길게 일하자'였다.

그러나 생각뿐이지 어디 일이란 게 그렇게 되는가. 당장 내일 비가 온다하고, 오늘 중으로 감자를 다 심어야 하는데, 밭고랑은 까마득하게 멀기만 한데 힘들다고 일을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에 끝낼 일, 두세 번 작업하는 시행착오의 연속

그러던 차에 마을주민으로부터 7년 된 포도밭 1200평을 우선 1년 임대로 지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상주시 화서면은 최근 들어 포도농사가 한창 확산하고 있는데, 포도는 다른 작물에 비해 부가가치가 매우 높아 소득과 농사경험을 고려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전에 농사짓는 이가 너무 바빠 평소 밭관리가 부실했다고 전해 들었다.

포도밭 농사는 시작부터가 사서 고생의 연속이었다. 날씨 탓으로 게으름 피우다 때 놓쳐 비가림 비닐 절반이 찢어지고 몇 개라도 건져 보려다 결국은 쓰지도 못할 비닐을 묶어 놓아 아내로부터 연신 빈축을 사고 말았다.

가지를 쳐내는 전지작업도 주변 얘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한 번에 끝낼 작업을 두세 번이나 반복하는 미련한 짓을 하고 말았다. 또 처음부터 순서대로 해야 할 일을 그때 그때 대충 해버리니 나중에 수습하느라 몇 배의 작업을 해야만 했다. 이러니 아내와 함께 하는 즐거운 노동이 아니라 작업 순서, 방법을 놓고 옥신각신 싸우기가 다반사였다. 속도 모르는 마을 어른들은 밭 옆을 지나치시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정경이 참 보기가 좋다고 한마디씩 하신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귀농 2년차, 경제자립의 시금석이 될지도 모를 포도농사에 전력 집중하기로 다짐하고 부지런히 밭에서 시간을 보낸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해 이를 본 마을 어른들이 덕담을 건네신다.

"허! 그 엉망인 밭이 그래도 이젠 깨끗해졌네."

포도밭 품앗이 포도밭에서 묘목심기 공동품앗이를 하는 아내와 주민들
포도밭 품앗이포도밭에서 묘목심기 공동품앗이를 하는 아내와 주민들 ⓒ 이종락


귀농의 고비라는 2년차, 희망을 다잡으며 밭으로 향한다

포도농사가 벅차다고 해서 기본적인 밭농사를 아주 안 할 수는 없었다. 작년 한 해 호되게 몸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선 올해는 포도농사만 짓자고 결심했지만 말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도 시골살림이란 게 고추, 감자, 콩, 고구마 등등의 기본 작물은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생각과 일치해 결국 밭 400평을 임대해 감자를 심었고 고추와 콩도 심을 예정이다.

이제는 삽과 호미로 해보겠다는 만용을 버리고 관리기도 한 대 새롭게 장만했다. 다행히도 묵묵히 농사일을 감당해 내는 아내가 옆에서 지켜주고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 1년간 몸 고생과 경제 손실도 적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꿈꾸어왔던 삶의 실현을 위해 귀농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훗날 어떤 모습으로 시골에 남아 있을지는 나 자신도 아직 모른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는 자본의 공세 앞에 삶의 양식이 황폐해지고 노인들의 한숨 소리만 남아 있는 황혼의 농촌이지만 아직은 정직한 노동이 숨 쉬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소비의 즐거움보다 생산의 기쁨이 넘치는 농촌, 나는 이곳에서 귀농 초심을 가다듬으며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귀농의 고비라는 2년차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시원치않은 몸이지만 일에 익숙해지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오늘도 봄기운이 꿈틀거리는 붉은 밭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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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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