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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 정당지지도가 실렸다. 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50%에 육박하는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상대당이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 민주당의 지지율은 12%를 좀 넘긴 수준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기 일보직전에 15%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니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던 분들이 지금 모두 통합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합 민주당의 탄생과정

 

많은 사람들이 통합 민주당이라는 당명조차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그 당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만큼 국민이 공감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것도 사실 국민의 눈총을 받을 일이다. 지금 결과론적으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이합집산을 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구성원들의 개략적인 행보를 돌아보자.

 

국민의 정부에서 여당으로 나름의 역할을 했고, 재집권까지 성공을 거두웠던 새천년 민주당이 그 뿌리일 것이다. 당시의 민주당은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세력과 후단협 및 구 동교동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당을 개혁하는 것이 지상과제였으나 계파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실패하였다. 그래서 분당이 현실화되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화를 거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창당을 위한 명분을 충분히 갖추고 출범하였다. 지역구도 극복, 깨끗한 정치, 상향식 정치등은 시대정신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었다. 초창기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탄핵역풍에 힘입어 과반의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점차 지역몰표가 그립고 상향식 정치가 불편하게 여겨진 정치인들은 해당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민주당과의 통합론, 기간당원제 폐지등은 그러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시작되었고, 그 것이 결국 열린우리당의 뿌리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김한길등의 탈당이 있었다. 그 들은 또 민주당과 통합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러더니 다시 이해관계가 엇갈려 또 탈당하고 후에 열린우리당과 다른 탈당파까지 포함해서 대통합 민주신당에 합류한다. 과정에서 명분없는 이합집산을 몇번씩 반복한 것이다. 대통합 민주신당에는 민주당의 일부인사도 참여하였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별도의 정당으로 존재하였다. 대통합 민주신당에는 시민사회의 일부 인사가 합류하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참여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후 민주당은 대통령의 탄핵에 적극 나서며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2004년 총선에서 겨우 9석을 얻어 민주노동당에 이어 제 4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에서 제기되던 통합론을 거부하며 독자생존을 모색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지난 대선에는 탈당 신기록 제조기라 불릴만한 이인제씨를 대선후보로 선출하여 0.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대선전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일부세력과 잠시 통합하여 세를 불리는 듯 했지만 곧장 분열하였다. 대선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당은 대통합 민주신당과 통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대선용 정당이었던 대통합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하여 지금의 통합 민주당이 된 것이다. 참 복잡다단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결국 통합 민주당의 뿌리는 과거의 새천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다.

 

대선용 정당이 막을 내리고 또 다시 총선용 정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뿌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전지사가 당대표를 맡고 있다. 뭔가 정체성을 확연히 느낄 수가 없는 정당이다. 새천년 민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후단협, 시민단체, 한나라당, 개혁국민정당, 탄핵세력, 탄핵반대세력이 모두 엉켜있는 모습이다. 과정의 복잡성만큼 정체성도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지지율이 저조한 원인

 

첫째, 창당의 명분이 없다.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여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국민 누구도 무조건 아무 생각없이 모두 뭉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를 주고 받으며 이합집산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적절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누구도 통합 민주당의 탄생에 대하여 명확한 명분을 제시한 일이 없다. 양당구도가 복원되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각이 궁색하나마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복원이 지역구도만 복원한 것은 아닌지 염려될 뿐이다.

 

둘째, 정체성이 매우 모호하다. 위에서 이합집산의 과정을 보았듯이 누가 봐도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 없다. 한나라당과 구분하자니 손학규 씨가 대표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구분하자니 대다수가 그와 함께 정치를 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구분하자니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출신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구분할 수 있는 요소는 오로지 호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밖에 없다. 아무리 국민이 지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역기반만이 정체성인 정당을 흔쾌히 지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셋째,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과거의 3김정치는 사라졌다. 선거가 다급한 정치인들만이 3김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이미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탈지역주의를 전혀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 또 상향식 정치에 극도의 혐오감까지 보였던 정치인들이 모여서 만든 정당이다. 계파간의 나눠먹기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적어도 정치를 5년 이상 퇴행시킨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정치인들이 그 시대정신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넷째, 탈색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탈 DJ, 탈 노무현, 탈 열린우리당에 여념이 없다. 과거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묶어 내기보다는 의미없는 털어내기에 바쁘다. 결국 지지세력이 등을 돌리고 외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면서 과거의 핵심적 지지세력은 모두 내쫓고 있다. 이미지를 털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지지세력을 털어낸 꼴이다. 과거로 회귀하려면 차라리 확실하게 지지세력을 묶어내려 노력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여전히 한나라당의 1/4에도 못미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비난하고 없애려고 노력했던 열린우리당의 최저 지지율에도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명분도 얻지 못하고 지지세력도 묶어내지 못하려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이합집산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공천이나 재선에 대한 불안감에서 시작된 열린우리당 허물기의 결과가 이렇다. 지금쯤 열린우리당을 허물고 이리저리 움직인 사람들의 후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나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

 

수 많은 비판받을 일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여전히 지지율이 높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게 마련이지만 아직 그러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정에 미숙한 모습들, 특권층으로 구성된 내각, 당내의 계파싸움, 권력다툼, 어설픈 자리챙기기, 탈당과 분열등을 겪고 있는 정당의 지지율이라고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는 현상이다.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정당의 역사가 깊다. 사실 한나라당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국민에게 심판받은 일이 여러번 있었다. 외환위기 초래, 차떼기, 탄핵 등으로 철저히 국민의 외면을 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당을 깨거나 이합집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온 것은 높이 살 일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심판을 회피하지 않는 책임정치의 모습이다.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며 당의 뿌리가 든든하게 이어진 것이다. 정당은 긴호흡으로 국민의 심판을 감당하며 이어가는 것이 옳다.

 

둘째, 단호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차떼기와 탄핵의 역풍으로 당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을 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일은 인상깊다. 박근혜를 대표로 내세워 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반성하며 국민의 채찍을 달게 받은 것 때문이다. 천막당사, 연수원 국가헌납, 비리전력자의 출당, 상향식 원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 등 국민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그것이 진정성이 있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국민의 눈높이에 충족된 측면이 있다.

 

셋째, 지역구도의 덕이다. 영남이라는 최대의 파이를 완전히 독식하고 있는 한 그것을 버리고 함부러 이합집산을 하기가 어렵다. 당의 역사성도 그러한 기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당개혁안을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지역의 무조건적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한나라당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넷째, 과거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인들이 서로 이익을 추구하며 지지멸렬하는 동안 한나라당은 그 반사이익을 꾸준히 챙겼다. 명분에 상관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몰려 다니는 정치를 해서 국민이 외면할 때 그 반대쪽에는 항상 한나라당이 있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자멸이 한나라당에 대한 신뢰를 상대적으로 높여왔던 것이다. 쉽게 허물기 어려운 아성이 되었다.

 

48% 대 12%에서 배워야할 교훈

 

여러가지 요인으로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이다. 여야가 바뀌었고, 입장도 바뀌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지금 48% 대 12%의 구도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괴멸을 피할 수 없다.

 

첫째, 정치를 긴호흡으로 하라. 정치인들이 너무 가볍게 이리저리 이합집산을 했던 통합 민주당의 경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당이 심각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개선한 측면이 있다. 국민의 질책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긴 호흡의 정치가 필요하다.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여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둘째, 국민의 심판을 회피하지마라. 국민은 정치가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심판을 한다. 잘못을 하고도 그 심판을 억지로 회피하려 든다면 영원히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주권자이니 심판을 하지 못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심판을 받고 다시 반성하고 돌이켜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국민의 심판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셋째, 명분을 확보하라. 당을 만들고, 깨고, 탈당하고, 입당하는 행위는 물론 정치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확고한 명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드시 국민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당적을 수시로 바꾸고 이리저리 옮겨다닌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잘된 경우는 없다. 잠시 이익을 보는 듯 하지만 곧장 국민의 철퇴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한 사례는 이미 현역 정치인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넷째, 시대를 거스르지마라. 역사는 전진하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 아무리 달콤하게 느껴져도 그것은 과거의 것일 뿐이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려서 되돌리는 정치는 국민의 외면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미 지역구도의 탈피나 상향식 리더십 창출같은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흐름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정치는 곧 파멸을 맞을 뿐이다.

 

지금 국민이 보여주고 있는 48% 대 12%라는 지지율의 격차에서 정치인들은 배울 것이 많다. 그렇게 국민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는 정치라면 차라리 이제라도 그만 접는 것이 옳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정치적 이익이 있다면 누려도 좋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하려고 더러운 욕망을 보인다면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도 불행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부디 다시는 명분없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도 정당들이 수십년씩 골격을 유지하며 국민의 선택에 의하여 부침하는 정치를 할 때가 되었다. 만들고 허물고 또 만드는 그러한 정치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정당지지율#이합집산#책임정치#정치적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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