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니체가 말했던가. '신은 죽었다'고.
오기와라 히로시의 <신으로부터의 한마디>를 읽으면서 갑자기 니체의 말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고객의 존재를 신의 존재로 생각하는 '다마가와식품'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식품업계에 신은 없는 존재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과자에서 생쥐머리가 나오고, 참치캔에서 칼날과 담뱃재가 발견되고, 곰팡이가 슨 라면이 버젓이 유통되는 사회는 고객을 신으로 보는 사회라고 절대 볼 수 없다. 아니, 신은 고사하고 인간대접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고객이 그런 불량식품(?)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는 '불사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신으로부터의 한마디>를 읽는 동안 불거져나온 여러 불량식품 뉴스는 책 읽는 나의 흥분지수를 한 5도 정도 올려놓았다. 그도 그럴 듯이 이 소설은 다마가와식품의 고객상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를 회사 사훈으로 삼고 있는 '다마가와식품'에 근무하는 료헤이는 처음에는 판촉부에 입사했으나 직속 상사와 맞짱떴다는 이유로 제일 하급부서인 고객상담실로 좌천된다. 언제 퇴사 당할지, 제 발로 스스로 나갈지는 이제 시간문제다. 그 정도로 이 회사의 고객상담부는 이 회사에서 더 이상 갈데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선대 사장 시절에는 맛있고 저렴한 ‘다마짱라면'으로 전성기를 맞기도했던 다마가와 식품이었다. 그러나 그 후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특색 없고 불성실한 식품판매로 다마가와 식품의 고객상담실에는 고객들의 원망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직장인의 애환, 맛깔 나게 버무려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하고, 잘못을 비는 일로 시작하고 끝나는 고객상담실. 상담의 내용도 가지각색, 천차만별이다. 뚜껑이 안 열린다, 음식 맛이 이상하다, 어떻게 조리하는 거냐, 왜 포장지의 사진과 요리의 실물은 다른 거냐는 등의 질문에서부터 음식이 옷에 튀었으니 배상해달라, 요리하다 접시가 깨졌으니 책임지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까지 각양각색이다.

사과하는 일에 익숙치않고 괴롭기만 했던 료헤이. 그는 직속상사인 시노자키로부터 사과하는 법, 용서를 비는 법 등을 배우면서 고객상담실 업무에 적응해간다. 그러던 중 그는 맛있는 라면을 만드는 한 장인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음식 만드는 이의 본연의 태도, 마음가짐에 대해 듣게 된다.

대충 예상하겠지만 그 덕목은 하나를 만들더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것, 재료가 다 떨어지면 그날 영업을 마칠 것. 일부러 발품을 팔아 멀리서부터 온 고객에게는 최대한 정성을 다해 대접할 것. 그리고 마지막 덕목.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것. 그는 영업을 마치고 난 후면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국밥을 무료로 나누어준다.

'다들 뜨거운 음식에 굶주려있지. 폐기하는 도시락이나 남은 패스트푸드 음식 같은 건 다 차갑잖아.'

라면의 장인이 말하는 '뜨거운 음식'은 만든 사람의 세심한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을 말하는 것이리라.

한편 료헤이는 다마가와 식품의 신제품 라면 면발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시즈카와와 함께 원료 공장을 추적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의 배후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회사와 공장 간의 모종의 커넥션이 개입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덧 부사장의 눈에 들어 다시 판촉과로 승진을 앞둔 료헤이였건만 현실을 택할 것인가, 정의를 택할 것인가의 귀로에 서서 잠시 고민하던 그는 전자를 택하기로 결심한다.

작품의 후반부, 프리젠테이션에서 료헤이가 부사장의 비리를 폭로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고 영화 같은 면이 없잖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수많은 '직딩'들의 십 년 묵은 체증을 간접적으로나마 확 내려가게 해주는 쾌감이 있다. 그리고 직장이라는 조직사회에서 자꾸만 작아져 가고 왜소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위로가 되는 한 구절도 발견할 수 있다.

"회사라는 게 뭘까요?"
"오뎅냄비와 똑같지."
"예?"
"봐, 좁은 그릇안에 보글보글 끓고있잖아. 부장이다, 과장이다, 임원이다 해봤자 냄비속의 다시마나 어묵이 누가 더 대단하냐 다투는 꼴이지. 이 오뎅집 메뉴 가운데는 소 힘줄 찜이 제일 비싸고 대단해 보이지만 다른 술집에 가면 취급도 하지 않아. 곤약은 이 집에선 싸구려지만 허름한 꼬치구이집에 가면 당당히 고급 메뉴축에 들지…. 네가 이 감자라고 해봐. 오뎅 안에서는 그저 평사원이야. 하지만 소고기와 감자를 넣고 조린 음식에서는 공동경영자지. 감자 버터구이라면 어엿한 사장이고." (p.375)

결국 '감자'가 될 것인가 '버터'가 될 것인가,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직장 안에서의 자신의 현 위치가 자신의 본질 자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만하면 답답한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위안은 된다.

회사란 부글부글 끓는 '오뎅 그릇' 같은 것

여담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고객상담실'이라는 곳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품 중에서도 고객상담실은 '한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고객의 상담을 전문적으로 받는 부서가 존재하고 있으며, 상담사들을 위한 서비스도 확실히 갖출 만큼 어엿한 한 전문직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객상담실에 문의하거나 항의하는 사람 중에는 꼭 해당 식품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어쩌면 식품은 핑계일 뿐, 그것을 통해 답답한 자신의 삶 한구석을 위로받고 위안받고자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모모깡을 비롯한 여러 불량식품에 대한 항의는 답답한 삶에 위안을 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위로를 받는 것도 아닌, 생존 자체의 문제니 이를 어쩌면 좋을지.

덧붙이는 글 |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도서출판 예담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예담(2007)


#일본소설#오기와라 히로시#신으로부터의 한마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