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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은 우리 집이 그동안 때던 연탄을 끊은 날이다. 지난해 10월 29일에 연탄을 들여 놓고 월동 준비를 했으니 144일을 때고 끊는 것이다. 그동안 땐 연탄의 장수는 991장이었다. 하루에 평균 7장 정도 땐 꼴이다. 평균이 그 정도니 추운 한겨울에는 12장도 때었고 춥지 않은 초겨울과 초봄엔 4~5장을 때기도 했기에 평균이 그 정도 나온 게다.

 

하여튼 우리 집이 오르지 않은 연탄 가격인 1장에 300원을 주고 샀으니(요즘은 1장에 350~400원 정도) 하루에 2100원이 소요된 셈이고, 겨우내 5개월 동안 약 30만원을 난방비로 지출한 셈이다. 물론 거기에다가 불 피워주는 번개탄 10묶음 정도 가격인 3만원을 추가 하면 될 듯하다. 

 

요즘 난방유 가격인 1드럼에 약 22만원 정도 한다고 하면(사실 보일러 기름을 때지 않아 기름 가격을 정확하게 모른다) 5달 정도에 월 1드럼씩만 기름을 때었다고 해도 약 11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 게 한 달에 1드럼 때는 경우를 산출한 것이니 1달에 평균 1.5 드럼을  땐다고 하면 165 여만 원의 난방비용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기름 값이 아까워 시원하게 때지도 못할 것이니,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따뜻하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시골 흙집이라 외풍이 심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연탄 너 정말 효자다 효자야. 기름 값보다 약 5배가 적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기름 보다 3배는 따뜻하게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연탄을 주구장창 갈아야 되는 번거로움, 행여나 꺼질새라 하루에 3~5회 정도는 봐 주야 하는 세심함, 그러다가 불이 꺼졌거나 불이 시원찮으면 번개탄을 넣어주는 지극 정성이 들어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번개탄 피워 연탄불 살리는 거 장난 아니다. 맨 아래 타다 남은 연탄재를 하나 넣고,  그 위에 종이로 불 피운 번개탄을 넣는다. 번개탄이 타오르려고 하면 잽싸게 불 뚜껑을 닫아야 한다. 행여나 조금 늦게 닫으면 그 시꺼먼 연기와 냄새가 머리와 옷을 온통 적셔버린다. 그렇게 불 뚜껑을 닫고 2~3분 기다려서 불 뚜껑을 다시 열면 번개탄에 제대로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 위에 새 연탄을 하나만 얹어 놓는다.

 

그러고 끝이 아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불이 피었는지 확인하고 그제야 나머지 새 연탄을 넣으면 불 새로 피우기가 끝난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해도 냄새는 피해갈 수 없다. 끝나고 나면 머리랑 옷이랑 팔이랑 몸 전반에서 불 냄새가 난다. 그러니 샤워를 할 수밖에. 입었던 옷은 세탁기로 골인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어렵게 5달 정도를 보냈지만, 연탄 때는 것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연탄이 우리 가족에게 준 따스함에 대한 고마움때문이기도 하지만, 연탄을 때면서 번거로운 수고를 한 덕분에 가족에게 겨우내 점수를 톡톡히 탄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내가 몇 해 전 학습지 교사를 할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끊는다’는 말이었었다. 내가 맡은 학생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 학생이 튀어나와서는 “선생님, 엄마가 학습지 끊는데요”라고 말하면 그 학생이 얼마나 얄미웠던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인사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학습지 끊는다는 이야기부터 하는 아이가 좋아보일 리가 있었겠는가. 그날 수업은 죽을 쑤는 것이다. 행여나 학생의 엄마가 들어오실까 가슴이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끊는다는 소리를 하면 학습지 회원이 하나 줄기 때문에 나의 관리 성적이 떨어지기에 좋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학습지를 그만두게 되면 정말 걔들 말대로 관계가 끝내기 쉽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처럼 두고두고 관계가 이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은 학습지뿐만 아니라 학원, 과외 등도 ‘끊는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세태를 고스란히 반영해주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학원, 과외, 학습지 등을 끊는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지만, 연탄을 끊는 것은 얼마나 희소식인지 모른다. 연탄 땔 때는 땔 때로 좋았고, 오늘처럼 안 때면 안 때는 대로 좋은 것이다. 이제 연탄불 신경 안 써서 좋고, 봄이 왔으니 좋고, 난방비 안 들어가도 괜찮으니 좋고. 물론 연탄불 때문에 점수 딸 일은 없어졌지만, 또 겨울은 어김없이 올 테니까 나는야 걱정 없다. 연탄 끊고 쉬는 동안 집안 청소로 점수 따면 되니까 말이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니까 전기 장판으로 온도를 조절하려고 우리 가족은 벌써 준비를 끝냈다. 연탄을 끊는 날을 정하는 것은 가족 모두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이제 올해 겨울에 연탄을 다시 때기 위해 보일러를 잘 닦고 깨끗이 청소해주는 일만 남았다.  

 

“연탄아, 겨우내 따뜻하게 해주느라 수고했다. 좀 쉬었다가 올해 겨울에 또 만나자. 사랑한다. 연탄아.”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태그:#연탄,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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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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