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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구례 산동면입니다.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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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산동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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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봄입니다. 햇살은 완연한 봄빛인데 바람은 여전히 코를 베어갈 듯 차갑지요? 꽃샘추위에 감기에는 걸리지 않으셨는지요.

지난 겨울 내내 감기를 떨쳐내지 못하고 지내는 제게 형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냐고 물으셨지요? 마음의 감기. 그리움이 끝나고 외로움조차 사라져버린 그 자리에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그 감기가 제 마음의 다리를 걸고 넘어진 걸까요? 형의 그 말에 까닭없이 울컥해지며 콧잔등이 시큰해져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폭포같은 햇살에 뽀송뽀송 영혼 말립니다

형!

지금 저는 구례 산동면에 와 있습니다. 남도의 신령스럽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는 지리산의 한 자락에 깃들어 있지요. 중국 산동성 처녀가 수백년 전 지리산으로 시집올 때 산수유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하여 지명이 유래한 이 곳 산동면은 전국 최대 규모의 산수유 군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디를 가나 산수유 꽃들로 지천이지요. 마을 전체가 노오란 꽃 터널에 푹 안겨 있는 형국입니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 그리워서 눈 감으면 /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저를 이 곳으로 이끌었던 곽재구의 시, <산수유 필 무렵>입니다.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산수유 꽃을 잊지 못하던 제게 '그리워 눈 감으니 산수유 꽃 칠십 리 길' 꽃그림자로 어른거리게 했던 까닭입니다.

형!

지금 제가 앉은 민박집 창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햇살의 기울기만큼 가만가만 몸을 되작이며 축축한 영혼을 말리고 있습니다. 이 곳 창가에서 내려다보니 산마루 저 낮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꽃걸음이 다 보일 듯 합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되작이고 구름이 나뭇가지 끝에 앉아서 놀다 가는 것까지 보이지요. 계곡과 들판 가득 핀 노오란 산수유 꽃그늘마다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연인들은 서로의 머리와 귀에 꽃을 꽂아주며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하듯 껴안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들은 산수유 꽃말이 '불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요?

따뜻한 햇볕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옵니다. 상춘객들이 민박집 마당에까지 파고든 산수유 꽃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꽃가지가 파란 페인트칠을 한 대문 위까지 풍성하게 드리워져 있으니까요. 바람 끝은 여전히 차고 매섭지만 마당 안의 온기는 안온하기 그지없습니다.

산수유꽃 귀에 꽂은 연인들... 불변의 사랑처럼

구례 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구례 산동면입니다.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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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나섭니다. 고샅을 걸어가는 동안 돌담 위로 드리워진 산수유 꽃그늘이 몽환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꽃구름 속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포즈를 잡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노란 산수유 꽃빛이 가득합니다. 봄은 언제 이처럼 바람 속에도 햇살 속에도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에까지 슬그머니 들어앉아버린 걸까요?

산수유 가지마다 어린 새의 부리처럼 매달린 노란 꽃망울들이 밤새 불꽃놀이를 하듯 빙 돌아가며 탄성을 질렀나 봅니다.

샛노란 속내를 다 드러낼 듯 피어난 꽃망울들이 고른 잇바디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소녀처럼 아름답습니다. 산, 수, 유, 이름만큼이나 예쁜 소녀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부드러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합니다. 내게 지난 겨울의 추웠던 기억은 말끔히 씻어버리라고 속삭입니다. 

선현들이 왜 글자가 적힌 인간의 책만 읽지 말고, 글자가 없는 자연의 책을 읽으라고 했는지 그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남들은 책을 읽지도 않고 다 아는 이야기를, 책을 읽고도 잘 모르는 아둔한 제게 딱 맞는 말이니까요.

형!

지난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이 겨울답지 않으니 봄이 온 것도 실감하기 어렵다고들 했다지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갈구하는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의 온난화가 사계절의 경계를 지워버리듯 희로애락의 감정이 무디어진다는 것.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 채 감정의 무중력 상태에 빠져버린다는 것. 무의미하고 무기력해져 버린 나머지 그립고 사랑하는 감정마저도 놓치고 살아간다는 것……. 형,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사랑을 놓치고 살아도, 정말 괜찮을까요?

계곡으로 들어섭니다. 길 양편으로 터널을 이룬 듯 산수유 꽃그늘이 이어집니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흘러내린 맑고 깨끗한 물이 힘차게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습니다. 문득 잠을 이루지 못했던 지난 밤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으로 들려오던 계곡의 물소리에 밤새 몸을 뒤척였습니다. 외로움이 사무쳤던 것일까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요? 날이 밝으면 이렇듯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산수유 꽃가지 사이로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계곡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흰 물살을 바라봅니다. 그런 내 자신이 마치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느껴집니다. 인생의 봄날이었던 때를 향해 다시 거슬러 오르고 싶은 걸까요? 

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산동면입니다.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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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산동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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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켜 들판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피네……’ 노래를 읊조리기도 합니다. 산이나 계곡 들판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수십 수백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무리를 지어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아지랑이 아른대는 밭고랑 사이에는 자운영이 납작 엎드려 바람에 푸른 머리칼을 날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마다 봄기운으로 넘실댑니다.

따뜻한 햇살을 온몸 가득히 받으며 들길을 걷고 있노라니, 불현듯 형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간에 1km의 속도로 북상한다는 봄의 보폭에 맞춰 형과 함께 자운영 가득한 밭둑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마음의 감기일랑 뚝 떼어버릴 수 있게 말이에요.

형!

저기 산수유 꽃그늘 아래에서 할머니 한 분이 호미로 땅을 갈아엎고 있습니다. 등이 구부정한 할머니가 앉은걸음으로 땅을 옮겨 다니며 씨를 뿌리고 있네요. 무엇이 할머니로 하여금 바람 맵찬 들녘에서 저토록 부지런히 몸을 놀리게 만드는 걸까요? 할머니는 평생 저 들판에 앉아 씨앗을 뿌리고 가꾸셨겠지요. 할머니가 뿌린 그 씨앗이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꽃등불로 피어날 것 같습니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형!

내가 형을 생각하는 것도, 외롭다는 것도 어쩌면 축복받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 또한 아직 사랑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말이에요.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리움도 끝나고 외로움조차 사라져버린 시간이겠지요. 사랑이 남아 있지 않아 그리움이 없고, 그리움이 없으니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시간을 산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도시의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길 때, 이 곳의 봄날을 떠올리며 노여움과 어지러운 욕망을 가라앉히고 싶어질까요? 봄날의 기억은 제 영혼에 평화롭고 따뜻한 치유의 노란빛을 드리우게 될까요?

형에게도 따사로운 봄 햇살 가득 담아 보낼 수 있다면!

2008. 3.  구례 산동면에서

구례 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구례 산동면입니다.
ⓒ 장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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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동면입니다.
▲ 산수유 구례 산동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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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구례 산동면, #산수유,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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