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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입니다. 24절기에서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은 양력 3월20일-21일이며,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지점에 와 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때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며칠 전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지면서 서울을 기준으로 오늘은 16분가량 낮이 길다고 하네요. 신비한 우주의 섭리도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일몰 후에도 한참은 빛이 남아 있어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춘분(春分)인 오늘의 해돋이 시각은 오전 6시 36분이고, 해넘이는 저녁 6시 44분이라고 합니다. 따뜻한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낮에는 20도 안팎까지 기온이 올라가 나들이하기에 좋다고 하네요.    

 

올해는 유난히 황사가 잦았는데 점차 약해진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황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들이 손상되거나 기능을 제대로 못해 성능이 떨어질 정도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더군요.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

 

개구리가 알을 낳는 경칩(驚蟄)과 밭갈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청명(淸明) 중간에 들어 있는 춘분(春分)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추운 북쪽지방에서 “추위는 춘분까지”라고 했을 정도로 겨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과 ‘꽃샘추위’, ‘꽃샘바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봄꽃이 필 무렵인 2월에 부는 바람이 겨울처럼 차갑고 매서운 데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춘분에서부터 약 20여일은 일 년 중 기온상승이 가장 큰 시기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농부들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지요.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듯 옛날에는 이날을 농경일로 삼고 1년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또 논밭에 뿌릴 씨앗의 종자를 골라 파종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겨울철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연약해진 논두렁·밭두렁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고 말뚝을 박고, 천수답과 물이 귀한 논에 물을 가두려고 물꼬를 손질했습니다.   

 

송사리를 잡으러 다니던 추억

 

옛날 시골에서는, 1년 농사의 시작인 애벌갈이가 끝나면 물을 저장해놓았던 묘판에 볍씨를 뿌리고 애지중지 기르며 모내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식량창고나 다름없었지요. 그러나 개구쟁이였던 우리에게 묘판은 송사리를 잡는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 따뜻한 봄날 우리는 헌 소쿠리와 병을 하나씩 들고 ‘꺼먹다리’(서래다리) 옆에 있는 논으로 송사리를 잡으러 갔습니다. 자세한 숫자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일행이 10명은 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사한 봄볕으로 가둬놓은 물이 미적지근해져서 휘젓고 다니기에 좋았습니다. 소쿠리로 송사리를 잡아 병에 넣는 일도 즐거웠지만, 논바닥을 휘젓고 다닐 때의 간지럽고 미끈거렸던 부드러운 촉감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옷차림이라고 해야 삼배 고쟁이에 고무신 아니면 맨발이었으니까요.

 

한참을 떠들며 송사리를 잡고 있는데, 등에 곰방대를 꽂은 할아버지가 멀리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몸이 둔했던 윗동네 사는 영철이가 붙잡혔고, 도망치다 벗겨진 고무신을 줍지도 못하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뛰놀던 동료가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아프리카 초원의 임팔라처럼, 담뱃대로 종아리를 맞으며 우는 영철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고무신도 주우러 가지 못했습니다.

 

도망치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잡혀 곤욕을 치렀던 영철이는 두고두고 놀림을 당했고,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가슴 아픈 사건이었는데 지금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네요. 영철이도 이제는 손자·손녀들의 재롱잔치에 행복해하는 노인이 되었을 터인데 어디에 사는지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보이(http://www.newsboy.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춘분, #송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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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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