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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아침 시내의 한 커피숍, 너덧명의 친구들이 모여 더듬거리며 대화에 열중한다. 각종 사회 문제부터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성격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영어로 이야기해 온 시간이 어느덧 5년을 넘어섰다.
 
대학 시절 말도 안되는 영어회화 실력을 키워보고자 만든 영어 스터디 모임이었다. 무언가를 5년 동안 쭉 해온 게 이것 말고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하다. 그것도 영어 '공부'를 위한 모임을.
 
복학 후 같은 과 친구들 네 명이 모여 영어회화를 한번 해보자 하고 만든 모임이 시초가 됐다. 명색이 외국어를 전문으로 한다는 대학의 영어 전공 학생들인데, 영어 회화가 도무지 대학생 수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앉아서 읽고 쓰기만 했지, 말을 할 기회가 없었으니 말문이 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한명씩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주제에 대해 나름의 준비를 해와서 토론하는 식의 모임을 꾸렸는데, 한번 두번 하다보니 재미가 붙게 됐다.
 
그때 우리들의 영어 회화, 정말 '같지 않았다', 그런데
 
영어라는 언어로도 단순한 대화를 넘어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게 초반의 가장 큰 재미였다.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희열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발견한 것은 '토론'의 매력이었다. 알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고, 또 그에 대한 반응을 하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느끼게 되는, 토론의 매력을 대학 4학년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 것이다. 거의 '읽기'가 대부분이었던 지난 시절의 공부 방법을 통해선 접할 수 없었던, 내게는 획기적인 공부 방법이었다.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가졌던 첫 모임을 떠올려보면, 이 모임이 얼마나 많은 진전을 거쳐왔는지 느낄 수 있다. 정말 '공부'하기 위한 자세로 자료를 준비해 와서, 경직된 모습으로 더듬더듬 이야기하던 모습. 소중한 추억이며, 동시에 '영어'에 대해서,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 얼마나 경직된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중에도, 그리고 취업 3년차가 돼가는 지금까지도,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어김없이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 구성원 모두가 이 모임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중심이 돼 과 동기들이 하나 둘씩 모였고, 여름 엠티를 가서 영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작년엔 우연한 기회로 일본 오사카의 비슷한 영어회화 모임을 알게 돼, 여름 휴가 삼아 오사카에서 조인트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한·일 양국간의 역사 문제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는데,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양국간의 거친 관계와는 달리 젊은이들간의 순수한 우정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몰입과 압박 아닌 즐거운 영어공부가 필요해
 
 
어제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며 '영어몰입교육 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 우리 모임은 '현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우리들은 토론하면서 몰입식 교육이니 인증시험이니 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정말이지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나름 영어에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외국어라면 일류로 친다는 대학의 영어전공을 지원했다. 그리고 대학 4년 동안 영어를 전공했다. 유창하진 않지만 의사 소통은 가능한 영어회화. 해외연수를 다녀오지 않은 나는 그 대부분을 지난 5년 동안 가져왔던 영어회화 모임에서 배웠다고 확신한다. 나 스스로 영어를 즐기며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은 대부분 이 모임에서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원어민 강사로부터 회화 수업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수업 시간에 말할 기회는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영어학, 혹은 영문학, 그건 원어민 교수가 하든 한국인 교수가 하든 '학문'이지 '회화'가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도 대학의 영어 전공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일 것이다. 회화는 공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을 통해 생생하게 체득하면서 얻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나의 영어학습 경험을 통해 가지고 있다.
 
교실 위주 영어 교육에서 벗어나자
 
요즘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을 보면, 학생 위주가 아닌 학교 위주, 교실 위주로 방향이 잡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전히 학생들을 앉혀놓고 가르침으로써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국가적 이슈로 만들었다가 "영어몰입 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며 스스로 폐기를 선언한 영어몰입식 교육이 그 대표적인 정책이다.
 
영어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며 내놓은 정책들이란 것도 영어 수업시간 확대, 원어민 교사제, 영어전용 방송 채널 마련 등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일방향성 교육 방법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학생들의 관심을 얼마나 이끌어내고, 얼마나 자발적인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느냐 인데, 이를 위한 보다 창의적인 정책들은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해외에 나간 사람들 중에, 글을 읽지 못하면서도 현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토익 공부를 아무리 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어능력과 공부는 꼭 정방향의 함수관계가 아닌 것이다.
 
영어회화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영어를 접할 때, 자연히 습득할 수 있다. 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그리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차근히 출발하는 것이 영어정책 성공의 열쇠가 아닐까? 대통령 특유의 추진력이 교육분야에서만큼은 '불도저'식이 아닌 '컴도저(기업 CEO 시절 추진력과 지혜를 겸비한 대통령의 새로운 별명이었다는)' 식이 되길 바란다.

태그:#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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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합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해 왔다고 믿는데 이제는 저의 작은 의견을 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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