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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유적은 솔직히 내게는 재미가 없었다. 거대한 무덤 같아서 그냥 무덤덤했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인도 외국인들도 바티칸 시티는 꼭 다녀오라고 추천했다. "넌 거기 가서 그것도 안 봤냐?"는 말들의 압박감에 눌려 바티칸 시티로 향했다.

박물관과 성베드로성당 중에 나는 박물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바티칸 시티 입국을 위해 줄을 섰다. 들어갈 때도 국경이나 공항에서처럼 검사를 받는다. 바티칸은 나라인데, 무솔리니가 독재하던 시절 교황청을 의식해서 독립을 시켜줬다고 한다. 어쨌든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가톨릭은 계급이 있는데 여기가 종파 최고들의 공간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했을 때 나는 군대에서 근무교대 중이었다. TV 뉴스 화면은 바티칸의 광장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너른 광장이 군중들로 꽉 차있었다. 총각대에 총을 집어넣으면서 TV 속의 순례 인파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넓은 광장인 인파로 꽉 찼던 장면이 보도 됐던 기억이 난다.
▲ 바티칸 광장 이 넓은 광장인 인파로 꽉 찼던 장면이 보도 됐던 기억이 난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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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대 전 몇 년간 냉담에 가까운 신앙 생활을 했다. 훈련소 조교는 '군대에 무교가 없으니 3대 종파 중 하나는 가입해라'고 명령했고, 나는 교적을 따라 '종교 : 천주교'라고 썼다. 다시 천주교인이 된 군인 신자였다.

'내가 믿음이 강한 신자라면, 내가 민간이고 유럽을 여행중이라면, 저 화면 속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왠지 모르게 내가 자유의 몸이라면 어쩌면 이 순간 저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떠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보도 내용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조문객도 많다고 했다. 그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와 종교 외적인 이유로 전세계에서 조문을 오던 바로 그곳에 섰다. 그날의 뉴스 영상은 아직도 굉장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박물관 보다 더 바티칸 시티가 궁금했었다. 사람들은 성 베드로 성당은 가능하면 가이드 투어할 것을 권한다. 두세 번 가이드 투어를 받아야 제대로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만큼 느끼고 상상하고 싶어서 사전지식을 배제하고 가이드 없이 그곳으로 갔다.

내겐 너무 '불쾌한' 성베드로 성당 본당

일단, 너무 넓었다. 이곳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신이 인간의 손을 빌려서 만든 것이거나, 인간이 신에 홀려서 만든 것이거나, 어쨌든 인간이 인간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어서  불쾌했다.

그곳의 미술품들 역시 그런 이유로 대체로 불편했다. 다만 돌로 옷주름과 구겨짐을 표현하는 부분만큼은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마치 돌이 바람에 흔들리는 거 같았다. 이곳의 조각들은 모두 무표정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심하게 무표정해서 무서웠다. 성당을 둘러보는 내내 무서웠는데 그런 무서움이야 말로 중세의 미감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인간이 신을 두려워하고 지배받는 것.

미켈란젤로가 만든 위대한 작품들에 압도 당하다가, 나는 좀 더 인간중심적인 작품들이 보고싶어진다. 벽과 천장의 그림들도 모자이크로 했는데 회화만큼이나 그 표현이 정교했고 너무 잘 그려놔서(붙혀놔서) 웬만한 사람, 특히 '나 같은 사람은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는 거구나' 싶어졌다.

자신의 무능함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고, 그 결과 기가 죽었다.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천재가 만든 작품을 보고 누군가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관객을 위한 '블랭크'가 없는 대가의 완벽함은 눈과 마음에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빨리 로마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로마에서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 여겨졌다. 나는 역사 책이나 미술사 책에서 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현재의 예술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 '꼭 천재만 그림 그리라는 법 있냐, 아마추어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라는 뻔뻔한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 위로했다.

문맹이 많았고 출판이 발달 되지 않던 시대에 대중들을 교육하고 성서를 전파하려면 이런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정교한 기술과 이야기 표현 능력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성베드로 성당 같은 곳에 갈 때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고 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가이드 투어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 공부, 미술 공부 했던 것을 확인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최대치를 느끼고 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 시대의 미술은 성경을 그림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성경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성경을 모르고 글을 읽을 줄 모르더라도 매일매일 그곳에 오는 신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성경 말씀을 알 수 있는 잘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인 것이다.

신화를 전하는 그림. 문자보다 전달이 강했을 것이다. 요즘은 문자가 그것을 대신해서 현대인들의 그림을 읽는 능력들이 퇴화되고 있다. 현대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글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대신 그 시대의 그림을 읽는 능력은 퇴화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걸어서 성당 꼭대기에 오르다

가능하면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기왕이면 입장권 없는 곳 위주로 관람을 다녔는데 막상 성당에 들어가보니 꼭대기는 유료 관람임에도 불구하고 꼭 올라가고 싶어졌다. 성당 아래서 올려다 보이는, 돔 꼭대기 위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밑에서 보기에 너무 높았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도 저 위에 올라서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 걸어 올라가는 요금은 4유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7유로. 당연히 튼튼한 내 다리를 택했다. 몸은 건강하고, 힘은 남아 돌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은 길고, 언제 탈지 기약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빨리 올라가고 싶어서 뛰어올라 갔다.

경건한 성당에서 그러면 안 되지만 계단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젊은 혈기에 뛰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경우보다 늦게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성당은 때로 익숙했던 놀이터였다. 나선형의 계단을 뛰어오르자, 형들과 뛰어 놀던 어린시절 기억들이 동그란 계단 벽을 타고 빠르게 스쳐지나 간다.

▲ 성베드로성당 성당을 오르는 계단. 혼자 걸어 올라가기에는 좀 침침한 분위기였다. 단숨에 뛰어 올랐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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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30m가 넘는 높이의 계단을, 헥헥거리며 뛰어올라 갔다. 높이가 몸으로 체감 됐다. ‘군대였다면 가혹행위하기 딱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뛰어갔다. 여기는 성당이 엄청 많은 나라인데 다른 성당에 올라 봐도 항상 드는 생각은 ‘가혹행위하기 좋겠다!’는 것. 대한민국 국군은 예비역 병장의 머릿속 깊은 곳까지 가혹행위를 심어놨다.

여전히 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주변 어른들은 어린 시절부터 군 입대 전까지도 ‘너 군대 가서 어떻게 견딜래?’ 이런 소리했다. 그런 말을 들었던 것까지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군 복무는 2~3년이면 끝나지만 '군생활'은 2~3년 만에 끝나지 않는다.

천주교는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계급이 낮거나 규칙을 잘 지키지 않은 성직자에게 종을 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일 군대처럼 뭔가 잘못 했을 때 ‘뛰어가서 종치고 와’ 이런 명령이라도 내리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고통일 것 같았다. 성베드로 성당에서는 종치는 것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다른 유럽의 성당에서는 종탑에 사람이 올라 직접 종을 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바티칸 시티에서 가족들에게 엽서를 보내다

두오모 꼭대기까지 올라 간 순간 로마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로마가 아니라 바티칸이다. 로마보다 바티칸 시티가 맘에 들어서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를 썼다.

종교가 가톨릭인 우리 가족 생각이 가장 많이 났던 곳이다. 온 가족이 같이 왔더라면 평생 기억에 남을 좋은 경험이 됐을 테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서 슬퍼졌다. 성베드로 성당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로마시내는 아름다웠다.

비가 짧게 자주 내리던 로마의 맑았던 오후. 성베드로 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보던 시내. 훤하게 뚫린 도시를 보며 가슴도 뻥 뚫렸다. 허전함과 함께.
▲ 로마시내 전경 비가 짧게 자주 내리던 로마의 맑았던 오후. 성베드로 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보던 시내. 훤하게 뚫린 도시를 보며 가슴도 뻥 뚫렸다. 허전함과 함께.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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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가기 위해 내려 왔는데 토요일이라 일찍 끝났다. 그래서 2박을 더 묵고 월요일 아침에 나가면서 볼까 생각했다가 포기했다. 아쉽지 않다면,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랬더라면 2박을 더 머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거짓이니까. 또 운이 없던 것은 토요일이어서 일찍 끝났고 일요일도 쉬었기 때문에 2일 기다려야 했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다시 오고, 아니면 먼 훗날 언젠가 다음에 오고, 아니면 어쩌면 평생 못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 로마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다 그것을 봤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유명하다는 모든 것을 볼 수도, 또 봐야한다고 스스로 압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 아쉬우면 다시 오겠다 다짐하고 떠나기로 한다.

나중에 민박을 하면서 들었는데 박물관은 시간이 짧아서 일찍 들어가야 하고, 성당의 광장은 야경이 예뻐서 성당 쪽을 늦게 간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은 나와 반대 순서로 한다고 한다. 오전에 박물관 오후에는 성베드로 성당의 본당. 저녁에는 광장 야경. 바티칸 시티에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바티칸에 간다면, 그리고 그곳에 가서 둘 다 보고 싶다면, 성당을 나중에 보는 코스를 추천한다. 또 토요일에 가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태그:#이탈리아, #유럽여행, #바티칸시티, #성베드로 성당, #카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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