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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되는 곳.
▲ 인사동 거리.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되는 곳.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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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봄볕이 완연한 지난 주말(15일)이었습니다. 정선의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눈과 얼음을 보며 떠났는데 서울은 누가 뭐래도 봄이었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여인들의 발랄한 웃음소리는 분명히 봄의 왈츠였습니다. 노란색 꽃무늬 치마를 나풀거리며 건널목을 건너는 여인의 모습은 봄의 전령인 나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거리는 봄이었습니다. 탑골공원 안에 있는 산수유는 샛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공원을 서성이는 초로의 인생들이 막 피어나는 산수유 꽃을 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합니다. 중절모를 쓴 한 할아버지는 아예 산수유꽃 하나를 꺾어 모자 깃에 꽂더니 곧장 공중화장실로 갑니다. 아마 거울에 비친 꽃 모습을 보려 함일 테지요.

봄 거리를 걷는 여인들의 발랄한 웃음소리는 '봄의 왈츠'

입고 온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는 봄날의 오후입니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땀이 배어 나옵니다. 이런 날은 가능하면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서울 거리는 낯설면서도 친근합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야 어디인들 다르겠느냐만 서울은 어느 도시에 비해 활기찹니다. 활기찬 이면엔 군중 속의 고독도 엿보입니다.

그 고독을 이겨내려 인사동으로 갑니다. 인사동이 '인사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 94년이나 되었습니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입니다.

인사동은 예나 지금이나 미술의 거리입니다. 어느 골목을 들어가더라도 마주칠 수 있는 것이 화랑입니다. 인사동이 미술의 거리가 된 것은 조선 초기 시절부터라고 합니다.

6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역사를 간직한 인사동이지만, 역시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나 봅니다. 요즘의 인사동 거리는 예전 모습을 많이 잃었습니다. 낮은 지붕을 하고 올망졸망 모여 있던 골동품점들은 언제부터인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책 먼지 풀풀 날리던 고서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 낮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던 예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길가에 막걸리 술판을 차려놓고는 한잔하고 가라며 소리치던 사람들도 없습니다. 인사동의 명물이었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더러는 천상병 시인처럼 먼저 저 세상으로 가기도 했지만, 다들 전통보다는 이국적으로 변한 인사동에 적응하지 못해 떠난 것은 아닌지요.

변한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인사동을 떠난 것은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의 소란함과 게임방에서 나는 소음이 귀에 거슬렸겠지요.

옥수수로 만든 호떡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 불난 호떡집. 옥수수로 만든 호떡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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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은 이국에서 온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 저 사람들 먹는 게 뭐지? 인사동은 이국에서 온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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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엿치기'를 할 수 있는 인사동 거리

그러나 낮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인사동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인사동을 아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그들이 있어 인사동의 밤은 즐겁습니다. 그들이 인사동을 떠나지 않기에 예술의 거리라는 전통이 봄꽃처럼 피어납니다.

아무려나 요즘의 인사동은 전문가들의 거리가 아닌 대중의 거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탓에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많이 찾아듭니다. 상대의 허리를 껴안고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만 보면 이 곳이 명동인지, 신촌인지, 강남인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리에 즐비한 민속 공예품들을 살피면 그래도 이곳은 인사동입니다.

몇해 전만 해도 인사동 거리를 걸다 보면 아는 안면들을 손쉽게 만나고는 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퍼런 눈을 가진 외국인과 검은 머리 외국인들과만 어깨를 부딪치곤 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던가요. 주말을 맞은 인사동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물 흐르듯 흘러다닙니다. 

인사동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거리의 음식점들입니다. '리어카' 한 대 놓고 장사를 시작한 호떡집 앞은 아예 불이 났습니다. 어떤 맛인가 맛보고 싶지만 늘어선 줄의 꽁무니를 보면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맛이 궁금해 호떡을 사들고 가는 젊은 처자에게 물으니 "호떡 맛요? '대빵'이에요" 합니다. 좀 예쁜 말을 쓰지. '대빵'이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호떡 맛 하나는 최고라는 것 아니겠는지요.

이번에는 울릉도 호박엿을 파는 곳으로 갔습니다. 역시 젊은이들이 많고 엿 맛 보다는 추억을 사려는 중년들도 섞여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작게 포장된 엿을 즐겨 찾고 중년의 남녀는 엿치기용으로 막대 엿을 삽니다. 그들은 옛 추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즉석에서 엿치기를 합니다.

"엿치기는 역시 '구녕'이 최고여~"

엿치기의 승패는 부러진 엿 단면에 나있는 작은 구멍들이 좌우합니다. 어느 사람의 엿 구멍이 더 큰 것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엿치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던 전통놀이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놀이를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행운입니다. 

인사동에 가면 엿치기를 할 수 있다.
▲ 엿치기 한번 할래요? 인사동에 가면 엿치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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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은 여성들에겐 아무래도 옷이나 스카프, 가방 등이 가장 인기입니다. 봄옷이 골라 3개 1만원이고, 어느 나라 제품인지 알 수 없는 스카프가 하나에 5000원입니다. 역시 외국에서 들어온 화려한 가방들이 균일가 9000원에 손님을 맞이합니다.

이제 인사동에서는 국산을 찾아보기가 더 힘듭니다. 공예품은 중국이나 동아시아 제품들이고, 지필묵도 중국산이 판을 칩니다. 더러 값이 비싼 것을 고르면 그것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말이 자조 섞인 듯 들려오는 곳 또한 인사동이기도 합니다.

요즘의 인사동은 예술의 거리라기보다는 나만의 멋을 찾는 이들이 즐겨 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인사동은 우리의 전통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곳이 많습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정갈한 우리의 음식들이 식객을 반깁니다. 남도 음식에서부터 전통 사찰 음식, 강원도 음식까지 없는 게 없는 곳이 인사동입니다.

강원도 사람인 내가 찾는 것은 남도 음식인 '매생이국'

인사동 구경을 하면 허기가 빨리 밀려옵니다. 거리에서 유혹하는 음식들을 먹지 않고 참은 까닭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사동 거리에도 스멀스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강원도 태생인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남도 음식을 먹으러 갑니다. 비릿한 갯내음이 나는 싱싱한 것을 먹으려면 미리 찜해둔 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날 내가 찜한 음식은 '매생이국'입니다. 강원도 사람인 내가 좀처럼 맛볼 수도 먹을 수 없는 남도 음식입니다. 매생이국을 먹으러 덕원갤러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찾아 들어갑니다. 인사동의 골목은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겸손하게 어깨를 접어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듯 '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는 좁은 길입니다.

인사동의 골목은 거미줄처럼 이어집니다. 앞선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돌다 보면 나중에 그 집을 다시 가려해도 쉽게 찾지 못하는 곳이 인사동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여행자에게 매생이국을 내어줄 집은 골목 끝자락에 있는 '시인'입니다. 남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시인' 집은 간판에 적시하듯 김여옥 시인이 이 집의 주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시인은 인사동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허물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김여옥 시인이 강원도에서 온 여행객을 반깁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매생이국부터 부탁합니다.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주는 매생이국. 해장국으로 좋다.
▲ 매생이국.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주는 매생이국. 해장국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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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 그것 먹으려고 이 집에 왔소?"
"사람은 둘째고 매생이국부터 내어 오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지요. 일단 먹고 싶은 것부터 해결한 후에 서로 안부를 물어도 늦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강원도에서 뭐 먹고 사냐 등등 물어볼 말이 많습니다. 내 입에서 '그만큼 먹고 싶었던 음식이 매생이국'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인은 그제야 주방으로 내달립니다.

매생이는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해초인데요. 그 올이 얼마나 곱고 가는지 아리따운 여인의 고운 머릿결 같습니다. 그것으로 시원하게 국을 끓이니 얼마나 맛있겠는지요.

김여옥 시인이 끓여낸 매생이는 전남 고흥에서 올라온 것이랍니다. 한 입 뜨니 싱싱한 것이 입안으로 촉촉하게 감겨듭니다. 남도 바다를 한 숟가락씩 퍼먹는 기분도 듭니다. 매생이국을 먹고 있으려니 집을 지키고 있을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후루룩 넘어가는 국이 잇몸만으로 사시는 어머니가 드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약전이 지은 현산어보에는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른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다. 서로 엉키면 잘 풀어지지 않고,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하니 어찌 홀로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지 않겠는지요. 강원도까지 배달이라도 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 꾹 참아야 했습니다.

이러하니, 인사동에 안 오고 배기나요

남도 음식점 시인.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 시인. 남도 음식점 시인.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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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시인'이 문화예술인의 집이 아니랄까봐, 매생이국을 다 먹기도 전에 아는 얼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악수를 하며 자리를 잡으면 다른 이가 어깨를 치며 옆 자리에 앉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이렇게 인사동의 밤은 깊어갑니다.

술잔을 비워내던 누군가는 주말이면 잠잘 곳이 없다며 여행객을 위해 잠자리를 예약하러 갑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이러하니 인사동에 오지 않고 배길 수 없지요. 그러하니 인사동 사람들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지요.

인사동이 아무리 변했다고 하지만 이들의 마음 쓰임은 예전보다 더 진하기만 합니다.

밤을 맞은 인사동 골목. 예술가들의 멋과 맛이 흐드러지는 곳이다. 골목 끝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며 "뭐혀? 얼른 오소. 골목에선 자칫하면 길 잃는 당게"한다.
▲ 인사동 골목. 밤을 맞은 인사동 골목. 예술가들의 멋과 맛이 흐드러지는 곳이다. 골목 끝에서 한 사람이 기다리며 "뭐혀? 얼른 오소. 골목에선 자칫하면 길 잃는 당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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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사동, #전통,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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