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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피해자 엄마 중의 한명입니다. 겨울에 일어났던 알몸체벌을 다들 기억하시지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의 제보창에 뜬 글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50여일 전 '알몸체벌' 사진 제보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모든 언론이 나서서 떠들썩거렸지만, 경찰과 구청 등의 미온적 태도에 화가 난다는 내용입니다. 한편으로는 '냄비언론'의 폐단을 꾸짖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를 첫 보도한 <오마이뉴스>는 2차 제보자의 말처럼 '알몸체벌, 그 후' 바뀐 게 없는지 등을 취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말]
▲ [알몸체벌 그 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 최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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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구립 어린이집 '알몸체벌' 사건이 보도된 지 50일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 16일 저녁 8시 이태원동 한 커피숍에서 그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 엄마들이 모였다. 엄마랑 같이 온 5명의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모두 문제가 됐던 어린이집의 '토끼반'에 다녔던 아이들. 올해로 5살이 됐다.

사건이 터진 뒤 각자 다른 어린이집으로 흩어졌던 아이들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모양이다. 줄지어 테이블을 빙빙 돌기도 하고 금세 "넌 큰 엄마. 난 작은 엄마"라며 소꿉놀이도 한다.

여자아이 A는 오랜만에 만난 남자친구 B의 뺨에 뽀뽀를 한다. A 엄마가 "A 아빠가 A에게 B가 다른 어린이집에서 여자친구 생겼다고 그 친구랑 결혼할 거라고 하니깐 하루 종일 펑펑 울더라"며 웃었다.

다들 웃고 있지만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친해졌던 아이들이 뿔뿔히 흩어져 서로 보고 싶어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짠하지만,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어른에 대한 처벌도, 아이들의 치료도 뭐 하나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이 없어 더 서글프다.

'알몸 체벌' 후 엄마 곁에서만 잠들 수 있는 아이로 변해

 회의 중인 용산구 이태원동 어린이집 '알몸체벌' 피해자 어머니들. 이들은 "구청이나 경찰이 엄마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속상해 했다.
회의 중인 용산구 이태원동 어린이집 '알몸체벌' 피해자 어머니들. 이들은 "구청이나 경찰이 엄마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속상해 했다. ⓒ 이경태


여기 있는 아이들 중 반 이상이 '알몸체벌'을 받은 적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그 기억을 떠올린다.

C 엄마는 "원래 대소변도 잘 가리고 다른 집에 가서도 잘 자던 C가 대소변도 못 가리고 잘 때도 엄마 손을 잡아야만 자게 됐다"고 말했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 한다. 애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하루는 C가 막대사탕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꾸짖었더니 '엄마. 선생님이 나랑 D 머리 이걸로 때렸다'라고 하더라."

B 엄마도 "B는 기사에 난 사진을 보고 내가 운 것을, 자기가 옷 벗고 나가서 울었다고 생각한다"며 "B가 가끔씩 '엄마가 내가 옷 벗고 나간 적 있어서 울었지?'라고 물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구청의 소개로 용산과 수서에 위치한 아동전문 심리치료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엄마들은 구청이 무심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 엄마는 "엄마들이 구청에 항의한 뒤에야 어린이집 아이들이 치료가 필요한지에 대한 검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원래 구청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을 '픽업'해서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몇 번 데려다주다가 딱 끊겼다. 알고보니 구청이 업무가 밀려 어린이집 원장한테 일을 넘긴 것이다. 원장은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깐 내가 하겠다'고 답해놓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애들이 다시 원장을 보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

C 엄마는 병원에서도 아이가 무슨 일로 왔는지도 잘 모르는 의사 때문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의사가 4살 애한테 '너 왜 여기 왔어?, 뭐 때문에 온 지 몰라?' 그러면서 어른이 들어도 기분나쁜 말투로 묻더라. 알고 보니 내 앞에 왔던 엄마한테 사정을 듣고서야 대충 알고 있는 정도였다. 구청에서 먼저 이야기를 해줘야 했지 않았나?"

지금 엄마들은 결국 각자 알아서 병원에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구청은 교통비와 치료비를 따로 청구하면 정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엄마들은 이마저도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

용산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1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치료를 받기로 한 학부모 중 한 명이 연락을 전담한다고 알고 있었다"며 "다시 연락하도록 하겠다"고 시정을 약속했다.

"알몸체벌 교사 자격정지 2개월이 전부? 다른 이들은 엄마 마음 헤아리지 못해"

 파란색 원 안이 '알몸 체벌' 장소로, 이곳은 ㅂ어린이집의 2층 비상계단 난간으로 알려졌다.
파란색 원 안이 '알몸 체벌' 장소로, 이곳은 ㅂ어린이집의 2층 비상계단 난간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엄마들은 지난 1월 30일 해당 교사를 동일한 혐의로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 그러나 지난 8일 MBC <뉴스후>를 통해 해당 교사는 자격정지 2개월, 어린이집 원장은 자격정지 3개월의 행정처분만 받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구청 관계자는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를 아동에 대한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지만 당장 구청으로서 할 수 있는 행정처분은 이것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형사처벌이 결정되어야지만 이후 자격취소 등 좀 더 강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용산경찰서는 이 사건을 수사종결하고 서울서부지검에 송치한 상태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교사를 제외한 다른 교사들에게는 혐의가 없었다"며 "해당 교사와 원장을 아동에 대한 학대 혐의로 수사를 마쳤고 도주 우려가 없어 불구속기소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지식이 없는 엄마들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아이들이 7살이 안돼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 안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흥분해 수사팀에게 따지다 "법은 알고 그러시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D 엄마는 "<뉴스후>를 보니까 아이가 죽었는데도 형량이 너무 적게 나오던데 우리가 정말 싸워서 될 일인지 모르겠다"며 "애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시간이 가면 덮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A 엄마도 "다른 사람들은 엄마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애들 몸에 상처도 없고 지금 아이들도 괜찮은데 되겠냐"며 불안해했다.

한편,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는 법 체계에 대한 분노도 공존했다. E 엄마는 "다른 애들이 입을 모아서 이 아이가 알몸체벌 당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증거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분해했다.

"증거를 잡겠다고 일일이 가정 방문해서 애들 이야기를 듣고 갔다. 그런데 7세 미만의 아이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제 애들한테 핸드폰을 사주고 동영상 찍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줘야 한다. 증거가 있어야 나쁜 사람 벌 줄 수 있다고 설명해줘야 할 판이다."

C 엄마도 "아이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C랑 5살 여자아이가 같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 여자애가 '나 여기 알아요. 아는 언니가 옷 벗고 서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가 나중에는 '그 아는 언니가 자기'라고 하더라. 그 아이처럼 여자아이 5살이면 수치심을 아는 나이다. 그런데도 신빙성이 없다니 이해할 수 없다."

"내 아이에게 엄마는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말해줄 생각"

엄마들은 계속 싸워나갈 생각이다.

이대로 있다가 혹시라도 한겨울에 아이들을 옷을 벗겨 내보낸 교사가 2개월 뒤에 다른 어린이집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들 했다. 맞벌이 인생에서 아이를 계속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이 일이 유야무야 덮인다면 다른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아무런 경각심도 못 갖게 하고 더 이상 아이를 맡길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앞으로의 재판에 임하거나, 시민단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볼 생각이다.

E 엄마는 "혼자서라도 지든 이기든 할 수 있는만큼 할 생각이다"며 "나중에 E한테 엄마는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이 나라 법 때문에 못 했다고 말해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C 엄마도 "지금까지 원장에게 사과 한 번 받아본 적 없다.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면 이런 일이 다시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계속 싸울 뜻을 분명히 했다.

엄마들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들은 여전히 친구들과 덜 놀았는지 서로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E 엄마가 말했다.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구청과 경찰 쪽 이들도 자기 자식이었다면 이렇게 조용할까?"


#어린이집#알몸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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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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