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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은 중국에서도 다양한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다. 그동안 윈난 서북부는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았다. 중국은 작년 3월 아시아횡단철도 다리-루이리를 잇는 338km 구간 공사에 착공하여 본격적인 윈난 서북부 개발과 서남아시아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현지를 다녀온 모종혁 통신원의 르포를 통해 개발과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윈난 서북부의 현실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지방정부에서 분양해준 18마리의 돼지우리 앞에 선 장더순. 장은 13살부터 마약에 손을 댄 중독자였다.
 지방정부에서 분양해준 18마리의 돼지우리 앞에 선 장더순. 장은 13살부터 마약에 손을 댄 중독자였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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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힘든 세상살이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통로와도 같았죠. 어머니의 끈질긴 설득과 정성 덕에 마약을 끊을 수 있었지만, 하루도 멀리하기 힘든 유혹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중국 윈난성 더홍 다이·징포족 자치주 루이리시 제러향 카난촌. 주민 대다수가 징포족인 카난촌은 경작할 토지가 적당하고 수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카난촌은 루이리 도심에서 8㎞ 떨어져 있는데다, 더홍자치주의 주도인 루시로 통하는 도로상에 있어 생활 물자도 풍부하다.

1990년대 동남아 최대 양귀비 재배지인 버마와 맞대어 있는 루이리는 밀수되어 들어오는 마약의 1차 소비지였다. 버마에서 유입된 마약을 판매상은 카난촌에 들어와 싼 값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던 카난촌 주민들은 하나둘씩 마약에 손을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은 조용한 농촌마을 카난촌 전체를 휩쓸었다.

범죄없던 카난촌, 남성 64명 중 22명이 마약 중독자로

1998년 카난촌 남성 64명 중 마약 중독자는 22명. 대부분 한참 일할 나이의 청장년층이었다. 마약 판매상은 처음과 달리 약값을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올려받았고, 돈을 구하기 위해 카난촌 주민들은 갈수록 흉포해져 갔다. 절도·구타·강도…. 범죄없이 살기 좋던 카난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카난촌 마약 중독자 가운데는 각각 13살·15살에 불과했던 장더순(23)·장더젠(25) 형제도 있었다.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와 함께 마약에 빠진 장씨 형제는 마약 대금을 위해 루이리 시내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절도 행각도 벌였다.

"한 봉지에 20위안(한화 약 2600원) 하던 약값을 갑자기 120~130위안에 파니, 돈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의 돈을 훔칠 수밖에 없었죠."

장더순은 멋쩍게 당시를 회고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께서는 마약 대금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께서 돈을 빌려오라고 폭행을 일삼곤 했습니다."

마약이 카난촌의 가족 공동체를 잇달아 풍비박산나게 하자, 어머니들이 행동에 나섰다.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마약 중독자가 된 파이난샹(46)은 주민회합을 주도하여 가정과 마을을 지키기 위한 조직 '호촌대'를 결성했다.

8명의 어머니가 참여한 호촌대는 우선 마약에 중독된 자신의 남편과 자식을 경찰에 자진 신고해 금독소로 보냈다. 날마다 금독소에 갇힌 가족을 면회하면서 호촌대 어머니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마을 순찰을 돌았다. 마약을 팔기 위해 마을에 들어온 판매상을 발견 즉시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들이 마약에 찌든 가족을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 판매상의 진출을 끈질기게 막자, 카난촌을 괴롭히던 마약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장더순 형제가 감금되어 노동개조 등으로 교화 교육을 받았던 제러향 금독소. 작은 변방도시 루이리에만 5곳의 금독소가 설치되어 있다.
 장더순 형제가 감금되어 노동개조 등으로 교화 교육을 받았던 제러향 금독소. 작은 변방도시 루이리에만 5곳의 금독소가 설치되어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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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난촌을 초토화한 마약, 윈난성 전역을 휩쓸다

마약으로 홍역을 치룬 곳은 카난촌만이 아니었다. 윈난성은 버마·태국·라오스 등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과 맞대어있다.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은 한 때 세계 아편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중국에 마약을 대는 주 공급원이었다.

태국과 라오스 접경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며 대량의 마약을 공급했던 마약왕 쿤사는 1996년 버마정부에 투항한 뒤 작년 10월 죽었다. 쿤사의 몰락 후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양귀비 재배는 격감했지만, 버마 산간지대에서 마약 생산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에 걸친 '황금 초승달' 지역에서 마약 재배가 급증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중국정부에 공식 등록된 마약 중독자 수는 약 116만 명. 실제 마약 흡연자 수는 정부의 등록자 수보다 8~9배 많은 900만~1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시장 규모는 2000억 위안(한화 약 26조원)에 달하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해마다 10~20% 증가하고 있다.

마약 중독은 에이즈 확산이라는 또다른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다. 작년 7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외국으로부터 마약이 유입되는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윈난·쓰촨 등에서는 마약주사 공용에 따른 에이즈에 걸리는 비율이 5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에이즈 감염원인 중 마약 중독이 42.0%로 가장 많고 이어 성 접촉(32.7%) 순"이라며 "마약 중독자의 에이즈 감염률은 1996년 1.95%에서 2006년 7.5%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중국엔 청나라 말기 심각한 아편의 만연으로 영국과 전쟁까지 벌인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마약 범죄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격하다. 2004년부터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류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을 벌여나가고 있다.

중국정부는 각 성 간의 공조수사를 강화하는 한편, 버마·태국·라오스·인도 등 주변국과 합동 단속훈련을 실시하는 등 국제 공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까지 나서 '전 국가적 역량을 동원한 마약과의 인민전쟁'을 벌이는 덕에 국경 주변지역의 마약 중독자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편전쟁 벌였던 중국, 마약과의 전쟁 벌이지만

감소 추세라고 하지만, 윈난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관련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윈난성 공안청의 발표에 따르면, 작년 적발된 마약 거래 범죄는 무려 1만4276건에 달했다. 압수된 마약량은 7톤을 넘어섰고 붙잡힌 마약사범만 1만6836명이나 되었다.

지난 1월 16일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은 "2007년 윈난성에서 발생한 마약 범죄와 압수한 마약량은 전년도에 비해 각각 17.9%, 29.3% 떨어졌다"면서 "마약사범도 전년 대비 15.4%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신문>은 "주변국과의 원활한 공조로 마약 관련 범죄가 줄고 있지만 윈난성 내 마약 중독자 수는 여전히 6만 명을 웃돌고 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던 어린 자녀들까지 마약에 중독된 한 일가족. 충칭(重慶) 출신인 이들은 루이리에 와서 남편은 막노동, 아내는 매매춘을 하면서 마약 대금을 마련했다.
 2005년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던 어린 자녀들까지 마약에 중독된 한 일가족. 충칭(重慶) 출신인 이들은 루이리에 와서 남편은 막노동, 아내는 매매춘을 하면서 마약 대금을 마련했다.
ⓒ 둥팡(東方)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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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서 윈난성으로 들어오는 마약의 유입 경로도 다양화되고 있다. 2005년까지만 해도 루이리는 중국 최대 마약 수입 도시였다. 2006년 2월 루이리를 방문했던 기자는 제까오 자유무역구와 루이리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마약 거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제까오에는 두 군데의 출입국관리소가 있었지만, 중국·버마인은 국경 철책선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다. 당시 만났던 한 마약 판매상은 "전에 비해 심해진 단속으로 마약 유통이 어려워지긴 했다"면서도 "주문받은 마약량은 언제든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윈난성 정부가 루이리 일대의 마약 단속을 강화하면서, 최근 들어 텅충이 새로운 마약 공급지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1월 21일 텅충현 공안국은 버마 산림지역에서 중국 국경으로 이동하던 SUV자동차 한 대를 발견, 숨겨진 아편 112㎏을 적발했다. 지난 2~3년 사이 윈난에서 발생한 마약 관련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적발량이었다.

작년 7월에는 텅충에서 루이리·잉장(盈江)으로 운반하던 마약사범 3명과 그들이 휴대한 26.3㎏의 아편을 적발했다. 같은 해 12월 쿤밍(昆明)시 공안국은 쿤밍을 중심으로 윈난성 전역과 13개 성에서 활동하던 대규모 마약조직을 검거했다. 쿤밍시 공안국은 "체포된 조직원만 53명에다 활동지역이 넓은 대형 판매조직"이라고 발표했다.

전문직 종사자도 청소년도... 이제 한국인 관광객까지

대부분 마약조직은 마약 운반을 위해 청소년을 속여 조직원으로 이용하거나 사람의 몸 안에 넣어 운반하는 수법까지 쓰고 있다.

쿤밍시 공안국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남기거나 채팅을 통해서 윈난성 여행을 시켜주고 사례금을 주겠다며 청소년들을 모집한 뒤 마약을 운반하는 사례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며 순간의 실수로 마약사범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마약 중독자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베이징·상하이·광둥 등 경제가 발달한 동부 연해 지방에서는 중독자 수가 늘어 중국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국 내 적지 않은 유흥업소에서는 마약을 흥분제나 최음제로 속여 팔고 있다. 일부 범죄조직은 조직원에서 마약을 복용토록 한 뒤 절도·강도·살인 등을 교사하고 있다.

마약을 흡입하다 체포된 장위안 감독 사건은 전문직 종사자에게도 마약이 파급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1월 9일 베이징의 한 음향제작회사 사무실에서 동료 4명과 마약을 복용하던 장 감독은 주민의 신고로 공안에 붙잡혔다. 장 감독은 대표적인 중국 6세대 영화감독으로 <북경녀석들> <사랑해> <녹차>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마약의 유혹은 중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노리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한국인이 자주 찾는 유흥업소에서는 히로뽕을 비롯해 유사 마약을 이용한 '캔디' '초콜릿' 등을 손님에게 권하고 있다.

중국 마약조직은 골프와 섹스를 위해 중국을 찾는 관광객을 표적으로 하여 히로뽕과 엑스터시를 최음제나 피로회복제로 속여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의 경시와 무관심이 갱생자를 다시 마약으로

호촌대를 조직해 카난촌에서 마약을 쫓아낸 파이난샹. 마약으로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중독자가 되자 가정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호촌대를 조직해 카난촌에서 마약을 쫓아낸 파이난샹. 마약으로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중독자가 되자 가정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 장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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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마약의 유혹에서 빠져나온 중독자의 갱생은 힘겹다. 장더순은 "금독소에서 출소한 뒤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면서 "일손이 과잉 상태인데다 농사거리도 한정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고 말했다.

장은 "장쑤성 쑤저우에서 4년 동안 생활했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면서 "학력도 낮았지만 마약 중독자 출신이라는 남들의 시선이 더욱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장은 작년 10월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돈벌이는 시원치 않지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이난샹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마약에 손을 댄 카난촌 청소년들 대다수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면서 "배운 게 없다보니 집안에 눌러앉아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 나가서도 가장 천한 일자리만을 맡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작년 6월 광둥성 광저우시 유에시우구 공안국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반 주민의 85%는 마약 흡연을 끊었던 사람을 경시하거나 접촉을 꺼리고 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의 75%는 이웃이나 사회로부터 질시나 배척을 당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대다수 마약 중독 경험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사회의 경원으로 인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내몰려 다시 마약의 유혹으로 내몰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윈난성 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 중인 파이난샹은 "마약을 끊기란 중독되는 것보다 10배는 더욱 힘들다"면서 "가족·친척의 관심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사회나 국가에서 중독자의 재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이는 "카난촌이 마약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주민 전체의 단합과 지방정부의 지원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을에는 마약 중독에다 에이즈까지 얻어 사망한 몇몇 부부로부터 에이즈 고아만 6명이 남겨졌다"면서 "지방정부가 각종 세제 혜택과 금전적 지원을 하고 18마리의 돼지를 분양해주어 금독소에서 나온 주민의 재활과 에이즈 고아의 부양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장더순은 "마약이 얼마나 무섭고 끊기 힘든 해독인지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은 "마약조직은 처음에는 싼 값에 공급하여 중독시킨 뒤 점점 값을 올려간다"면서 "한 번 마약에 중독되면 빠져 나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장은 "다른 지방과 달리 이 지방 농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마약에 당한 꼴이었다"면서 "처음부터 정부에서 마약에 대한 교육과 단속을 철저히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2004년에야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은 너무 늦었던 것이다.

생명을 아낀다면 마약과 에이즈를 멀리하자는 선전 문구가 적힌 루이리의 한 농촌마을. 마약은 에이즈라는 질병까지 중국에 안겨주었다.
 생명을 아낀다면 마약과 에이즈를 멀리하자는 선전 문구가 적힌 루이리의 한 농촌마을. 마약은 에이즈라는 질병까지 중국에 안겨주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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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약, #골든트라이앵글,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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