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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이면 교회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나눈다. 반찬 서너 가지를 담은 통에다 국거리 주전자 하나를 들고 나간다. 물론 많은 집들은 아니다. 사랑을 나눠 주는 집들은 겨우 열 집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집들은 대부분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거나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분들이다. 그야말로 국가로부터 매월 얼마씩 도움을 받는 분들이다.

 

그 가운데 독거노인도 아닌데도 사랑의 반찬을 나눠줘야 하는 분들이 있다.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에 살고 있는 부부가 그렇다.

 

남편은 58세이고, 아내는 47세이다. 아직 60세도 안 된 남편은 한창 일할 나이다. 아내 역시 남편과 10살 차이라 한창은 젊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의 찬을 베푸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남편이 뇌졸중이고, 아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기 때문이다.

 

남편은 2006년 10월 19일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전 3일간 하남시 망월동에서 지금의 풍산동으로 이삿짐을 옮기느라, 또 막내아들 혼인식을 위해 직접 버스를 운전하며 오가느라 무리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전 날 저녁에 몸에 이상이 왔지만 뇌졸중을 겪어 보지 못한 그는 괜찮거니 하며 날을 지새우고 말았다. 날이 밝자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입은 뒤틀려 있었고, 오른쪽 몸도 마비가 와 있었다. 그로부터 2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치료비를 구할 데가 없어서 퇴원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달 약과 진료비 명목으로 20만 원이 들고 있는 상태다.

 

남편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아내도 그저 죄스러울 뿐이다. 이삿짐 옮기는 것을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편이 운전하며 오갈 때에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날 밤에 뭔가 이상 징후가 왔을 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뿐이다.
 
어디 그 뿐이랴. 남편의 병원비라도 자신이 벌어서 갚고 싶건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박스를 뒤뚱뒤뚱 걸으며 주워 모아 파는 일뿐이다. 그것으로 돈을 모은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정도라면 국가에서 지정하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두 부부에게 세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물론 그들 세 자녀는 1년을 두고 줄줄이 혼인을 하여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현재 30살인 큰 딸은 현역 대위와 혼인하여 인천에서 살고 있다. 맏딸로서 부모님을 돕고 싶지만 남편의 월급도 시댁에서 다 거둬들인다. 28살인 둘째 딸은 주방기기를 만드는 회사에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데 월급이 겨우 100만원 안팎이라 한다. 더군다나 둘 사이에는 벌써 2살 된 딸까지 딸려 있다. 부모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그저 마음뿐이다. 막내아들도 일찌감치 데릴사위로 혼인을 하여 장인과 함께 처가댁 농사를 꾸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방에 기름은 떼고 사세요?”

“남편 방만 전기장판 깔고, 난 그냥 그래요.”

“그러다 병 나시겠어요?”

“겨울 내내 그렇게 살았는데요, 뭐.”

“너무 힘드셔서, 어떻게 하신대요?”

“기초생활수급자도 안 돼서, 국민연금이라도 알아 보려했는데….”

 

사실 아내는 국민연금에 관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녔던 것이다. 만일 국민연금으로부터 3급 심사라도 받았다면 매달 25만원이 나온다고 했다.
 
그것은 두 분에게 월셋값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국민연금 심사에서 2급을 받을 경우 37만원, 1급을 받을 경우 60여 만 원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 기준들은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3급이라도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3급조차도 그들 부부에게는 하늘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1년치에 해당하는 100만원을 내야만 그것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에게 지금 당장 100만 원이 없어서 그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까닭에 아내는 동네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빚을 빌려보려 했지만, 가난한 풍산동 사람들에게 100만원은 만지기 힘든 돈이었다.

 

“제가 청와대 고충처리반에라도 사연을 올려볼까요?”

“자녀가 있다고 해서 안 되는데, 그곳이라고 해 주겠어요?”

“그럼 어떻게 해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빈 집이라도 있으면 옮겨 가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월세 때문에 그러세요?”

“한 달에 25만원씩 월세를 내야 하는데, 몇 달 밀린 것도 아들이 어렵사리 해 줬거든요.”

“…….”

 

그 무렵 남편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이 저렇게 된 것이 자신이 돕지 못해서 그렇게만 된 것 같았고,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서 어엿하게 소득을 벌어 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욱더 괴로웠던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한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 때문에 피눈물 나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들 부부에게 반찬을 주고 오는 발걸음이 그래도 가벼웠다. 그저 반찬만 나눠 주고 오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분의 사연을 조목조목 다 듣고 알게 된 이상 왠지 그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부랴부랴 우리 교회 청년회에서 의견을 나눴는데, 매월 마지막째 주 헌금의 반액을 그 분들의 통장으로 넣어 드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끼 식사 값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두 분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하늘 아래의 천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태그:#사랑의 도시락, #뇌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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