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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원자재 가격 폭등! 살인적 물가상승?

'물가상승'은 오랫동안 학생으로 살아온 내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가장 큰 지출내역이 교통비나 식비 등이었지만, 여태까지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8년은 다르다. 내가 쓰고 이용하는 것, 대부분이 올랐다. 이 '물가의 폭풍'이 나를 바꾸고 있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지출은 크게 증가하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인 나의 하루를 '가계부 쓰듯' 되돌아보았다.

[오전 8시] 학교 가는 길, 집 밖에 나오면 다 돈이다

대학교 4학년 학생인 나는 집에서 일명 '먹고 대학생'으로 통한다. 밤늦게 들어가서 아침만 되면 사라지느라 본의 아니게 내 방은 '잠만 자는 방'이 돼버렸다. 그런 만큼 바깥에서 쓰는 돈이 많은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가는 지하철을 탈 땐, 꼭 신문 한 부를 챙겨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오른 신문값 때문에 집에서 동전을 긁어모으곤 한다.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고 400원의 거스름돈을 받을 때의 허무함은 꽤 크다. 정기구독료도 한 달에 3000원이 올랐다고 하니 동전 한 닢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 30여 분 이상을 가야하는 길. 버스개편이 되기 전에 비한다면 환승으로 인한 할인이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초과거리에 대한 요금까지 정산하고 나면 아침에 쓰는 교통비가 1100원. 하루에 2200원의 교통비를 꼬박꼬박 쓰는 것이다.

여기에 시내에 약속이 생기면 하루 교통비가 3000~4000원으로 훌쩍 오른다. 교통카드에 1만원을 넣어도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니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줄어드는 잔액을 보기가 부담스럽다.

[오전 10시] 단돈 500원으로 무엇을 사리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었던 것들. 이제는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더 얹어줘야 한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었던 것들. 이제는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더 얹어줘야 한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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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금연 핑계로 담뱃값까지 오를 것 같은데 이러면 서로 담배 나눠 피기도 민망할 것"이란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음료수라도 하나 먹을까?"
"어 내가 살게!"

그런데 이게 웬 일!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500원으로 먹을 수 있었던 음료 중에서 600원으로 오른 것들이 눈에 띈다. 1000원으로도 캔음료 두 개를 못 먹는다니… '울며 겨자먹기'로 아직 500원을 고수하는 작은 캔커피와 콜라 하나를 샀다.

이젠 대학가에서 100원짜리 커피도 보기 힘들다. 적어도 우리학교에서는 사라졌다. 캔 음료 값이나 자판기 커피 값이 100원씩 올라도 학생회관 1층 커피전문점에서 3000~4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이런 게 소득의 양극화란 말인가. 슬슬 동전 하나에 민감해지는 내가 싫어진다.

[낮 12시] 1200원짜리 학생식당 국밥이 그립구나

학생식당에서 식권을 구입하는 학생들. 아무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학생식당이라지만 비싸다.
 학생식당에서 식권을 구입하는 학생들. 아무리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학생식당이라지만 비싸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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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수업에 관련해 도움을 준 친구에게 점심을 사려고 마음먹었다. 과방에 앉아 식당의 메뉴판을 살펴보니 대략 3500원에서 4500원 사이. 뚝배기 불고기와 치즈철판볶음밥을 시켰다.

"이거 다 합하면 얼마예요?"
"뚝배기가 4500원, 치즈가 5000원…. 9500원이네요."

헉! 밥 두 개 시켜먹는데 9500원이란다. 전단지에는 각각 4000원 4500원으로 써 있었지만 올해 들어 500원씩 올랐단다. 어이가 없어 친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래도 어떡해. 먹기는 해야지."

순식간에 지갑 안의 세종대왕께서 자취를 감추셨다. 밥을 먹는데 입안이 깔깔하다.

싸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자장면과 짬뽕 등 중국요리도 오른 건 매한가지. 2500원 하던 자장면이 500원 오르니 이것도 부담스럽다. 전단지를 뒤져서 2500원으로 판매하는 곳에 자장면을 시켰더니 내용이 영 부실하다. 고기 대신에 '고기분말'이 들어가 있고 두 그릇을 시켰는데 단무지는 달랑 한 접시. 이제 중국요리도 서민의 음식이라고 하기 힘들겠다. 대학 근처 음식점 가격이 이런데 주택가 인근은 더하겠지.

내친 김에 학생식당으로 가보니. 2000원·2200원 하는 메뉴들이 2400원·2500원으로 올랐고 나름 '고급메뉴'들도 2700원에서 2900원으로 올랐다. 200~300원씩의 증가. 원재료 값이 올랐다고 하니 올린만큼 맛있어졌냐고 따져 묻기도 귀찮다. 그래도 가벼운 주머니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곳이 학생식당이었는데 그것도 옛말이 되어간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캠퍼스를 활보하는 08새내기들은 알까? 내가 새내기였던 2003년엔 아침 국밥으로 1200원·1500원 하던 메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궁여지책으로 매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려고 해도 난관이다. 1000원짜리 김밥 한 줄에 컵라면이면 어느 정도 허기를 메울 수 있었는데 새 학기부터 오른 가격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참치김밥·불고기김밥 등 각종 김밥류는 1600원으로 올랐고 라면은 가격이 올랐다는 말을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은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려했다. 하지만 850원은 너무하다. 결국 미니 컵라면을 샀지만 이것도 700원. 깁밥 한 줄에 라면 한 개 값이 2300원이니 어디 구내식당 가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후 6시] '먹고 대학생' 특단의 조치, '가계부' 쓰기!

지난 한 주의 지출내역을 정리했다. 써놓고 보니 충격이 더하다.
 지난 한 주의 지출내역을 정리했다. 써놓고 보니 충격이 더하다.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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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 노점의 닭꼬치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길에서 군것질을 잘 하지 않지만 닭꼬치에 어묵 국물이면 추위도 가시니 일석이조. 그런데 여기도 올랐단다. 입에서 '젠X'가 절로 튀어나온다. 작은 닭꼬치 하나에 1300원. 닭고기값 올랐단 얘긴 못 들었는데, 닭꼬치값은 왜 오른 거야?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아침식사용 식품을 골랐다. 포도주스·식빵·베이컨·계란…. 세종대왕께서 또 사라지셨다. 개강 후 일주일을 되돌아보니 쓴 돈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내린 특단의 조치가 가계부 쓰기.

3월 한 달 동안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가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는 과감히 줄여야 한다. 여자 친구는 담배만 줄여도 돈이 남아돌 것이라고 채근하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담배 소비는 더 느니 이거 원….

'월급쟁이 비애' 어렴풋이 느껴져... 이게 '서민을 위한 나라' 일까?

운 좋게 이번 학기엔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을 하게 되어, 교통비나 밥값 정도는 스스로 벌게 됐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려면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다. 이젠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부모님께서도 물가가 오른 것을 아시기에 별다른 말씀은 안하시지만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도움은커녕 짐만 되는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는 애초의 7% 경제성장에서 조금 후퇴했지만 6% 전후의 경제성장 목표로 국정운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오른다. 신문 속의 '물가상승률'이라는 것이 내 피부에 와 닿으니 꼭 감전된 것처럼 짜릿하며 아프다. "물가고 뭐고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오르지 않더라"는 월급쟁이들의 비애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물가를 잡지 않으면서 서민생활 안정을 운운하는 그들이 의심스럽다. 돈 나올 구멍도, 돈을 쓸 구멍도 조이면서 어떻게 경기를 활성화시키려는지 궁금하다. 부디 그 계획들이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만 펑펑 쓰면 소비의 총합은 증가할 것이란 어이없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태그:#물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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