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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녹색의 자연, 그것은 생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 생과 사의 경계 녹색의 자연, 그것은 생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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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 그것은 축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행복이라는 것과 아주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살아 있는 것만 행복한 것이 아니고, 살아 있는 것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나뉘어지지 않고, 생명 안에 죽음, 죽음 안에 생명이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 그것은 축복이요, 행복이다.

덩굴식물은 어딘가로 퍼져가려면 기댈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담이든 벽이든 썩은 나무토막이든…. 누군가에게 내어 줄 등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도 쉽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런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야 어떨까?

생(生)과 사(死)의 조화, 죽은 것은 살아 있는 것의 기댈 곳이 되어주고,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기대어 살거나, 기댈 곳이 되어주거나 모두 소중하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진지하다.
▲ 새싹 작은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진지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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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것은 큰 것의 반대말이 아니다. 작은 것의 반대말은 소유이며, 홀로 삶이다. 작은 것은 존재이며, 더불어 삶의 다른 말이다. 큰 산,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작은 벌레와 새들과 풀들과 더불어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맘몬(하나님과 대립되는 우상 가운데 하나)이 판을 치는 세상은 물량적으로 큰 것만을 탐하고, 일류 혹은 일 등, 적게 땀흘리고 많은 것을 얻는 것을 능력이요 성공이라고 부추긴다. 경쟁의 대열에서 빠져나오면 낙오자요, 실패자라고 윽박지른다.

참으로, 작은 것의 아름다움에 감격할 줄 아는 이들, 그 작은 것을 보기 위해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기꺼이 엎드려 절할 줄 아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의 감성은 큰 것에만 빠져 있는 사람의 감성과 다를 것이다.그런 눈으로 보고, 그런 입으로 말하고, 그런 귀로 들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의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비록 작아도, 그들은 작은 것이 결코 작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름아름 맺어갈 것이다.

그 언젠가는 넓은 바다와 호흡했던 것들이다.
▲ 소라껍데기 그 언젠가는 넓은 바다와 호흡했던 것들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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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도 축복이다. 사람들은 자연이 준 때를 거역하며 살아가지만 자연은 오고감에 있어 자유롭다. 살아 있어도 아름답고, 죽어서도 아름답다. 살아 있음과 죽음의 경계가 묘연하다.

언젠가는 푸른 바다를 호흡했을 작은 생명들, 모래사장에 이런저런 상형문자들을 남기며 천천히 느릿느릿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남겼을 것들, 자기의 걸어온 길을 스스로 지운 것이 아니라 파도가 지워주었을 그들, 지워진 그 곳에 또 다시 길을 남겼을 그들의 몸짓을 상상해 본다.

진지하다. 그들의 삶이 그렇게 진지했음으로 돌아가서도 헛헛하지 않고 빈 고동에 바다의 소리를 담고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텅 빈 충만'이다.

오는 것, 가는 것을 봄바람이 내 볼에 스치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길 소망한다.

한 송이 홀로 피어나도 활짝 웃는다.
▲ 알록제비꽃 한 송이 홀로 피어나도 활짝 웃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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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지만 홀로 가는 것이 삶이다

어느 봄날, 깊은 산 중에서 홀로 피어난 알록제비꽃을 만난 적이 있다.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 외에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을 것만 같은 작은 꽃, 키도 작아 앉은뱅이꽃이라고도 불리우는 작은 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

"혼자 있는데 뭐 그리 좋다고 웃나?"
"혼자 있으면 왜 슬퍼야 되지요?"

법문같은 그의 대답에 나도 홀로 숲 속에서 오랫동안 앉아 홀로 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돌아보았다. 결코 홀로 될 수 없는 것이 삶 같지만 누구나 더불어가 아닌 홀로 가야만 하는 그 순간이 있다. 그 길을 덤덤하게 가려면 간혹은 외로움 속에서 눈물 흘리는 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것이 홀로 가는 길을 위한 훈련이구나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마지막 삶의 끝자락에서는 홀로 가는 것이 삶이다.

고사리 손, 아이들의 손에 희망을 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 우리 아이들의 손에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 고사리 손, 아이들의 손에 희망을 들려줄 수는 없는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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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손에 들려주고 싶은 것은 생명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무엇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텃밭에서 딸기를 몇 개 따서 막내의 고사리 손에 쥐어준 적이 있다. 서너 알에 행복해 하는 모습이라니, 매일 매일 텃밭을 와보면 기적처럼 두 세알씩 빨간 딸기가 방긋 웃으며 막내를 바라본다.

"세상에, 시장에서 사온 것보다 훨씬 맛있어."

나는 그 경험이, 그가 오감으로 맛보았을 그 딸기의 맛이 막내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경험 하나가 인생의 긴 여운을 남길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결코 부정적이지 않은 그런 긴 여운으로 말이다.

돌아보니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사주었던 그 어떤 선물보다도 귀한 선물이다. 그 안에는 생명이 들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무엇을 들려주고 있는가? 생명인가 죽음인가? 나는 우리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생명의 기운을 한 움큼 쥐어주고 싶다. 그 작은 손에 넘치도록.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명,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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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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