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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나갔더니 개구리알이 가득합니다. 봄이었습니다.
▲ 개구리알. 계곡에 나갔더니 개구리알이 가득합니다. 봄이었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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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봄이 왔단 말입니까. 천변에 핀 버들강아지만으로 봄이 왔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며칠 전까지 정선의 가리왕산 자락엔 눈이 펑펑 내렸는데도 지금이 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아직도 저녁만 되면 땅이 얼어들기 시작하고 수도꼭지의 물도 틀어놓아야 하는데 세상은 봄이라고 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까? "예, 들립니다"

하긴 이틀 정도 낮기온이 포근하기는 했습니다. 방에 있는 것보다 바깥의 바람이 더 온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당 가득 쌓였던 눈도 햇살을 받더니 스르르 녹아들었습니다. 겨우내 녹지 않던 눈이었습니다. 이틀 만에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계곡은 눈 녹은 물이 흐르며 물이 조금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생이(냉이)를 캐러 나가셨습니다. 눈이 녹아 질척한 밭에서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한 바구니 캐오셨습니다. 싱싱한 냉이에다 콩가루를 묻혀 냉잇국도 끓였습니다. 그 덕분에 봄 향기가 집안에까지 퍼졌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계곡을 따라 걸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좋습니다. 음지와 먼 산에는 여전히 눈이 하얗게 쌓여 있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나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자연은 인간보다 봄이 오는 소리를 더 빨리 듣는가 봅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 얼음이 녹은 개울에도 봄은 풀어져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개울엔 개구리 알이 가득 낳아져 있습니다. 벌써 알집을 깨고 부화한 흔적도 보입니다.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까만 올챙이들이 오글오글 합니다. 갓 태어난 올챙이들은 움직일 줄도 모릅니다.

발걸음 소리가 나자 개구리들이 이리저리 숨기 시작합니다. 당장 눈에 띄는 놈들만 해도 서른 마리가 넘습니다. 겨우내 어디에서 잠을 잤던지 다들 홀쭉합니다. S라인을 완벽하게 자랑하는 것을 보니 아마 알을 낳아 그런가 봅니다. 아무튼 개구리들은 긴 겨울을 무사히 보낸 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계곡의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긴 겨울을 무사히 난 개구리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 개구리. 긴 겨울을 무사히 난 개구리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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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도 개구리들은 알을 잔뜩 낳았습니다. 그런데 다 부화하기도 전에 봄 장마가 졌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개울에 가보니 개구리 알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고 말았습니다. 올해는 개구리 알이 부화를 끝낼 때까지 봄장마가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구리알이 가득한 계곡은 이미 봄이었습니다

개구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이웃집에 사는 농부의 아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봄이 오기도 전에 농부는 올해 농사를 준비합니다. 비닐하우스에 고추씨도 넣고 받아둔 산나물 씨도 넣었답니다. 모종이 잘 자라야 한 해 농사를 보장받는 것이지요.

농부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시기, 개울에 있는 개구리들도 팔다리를 모처럼 쭉쭉 뻗으며 헤엄을 즐깁니다. 갓 나온 올챙이들이 꼬물딱 거리며 어미를 따라 움직여 보지만 아직은 올챙이일 뿐입니다. 개구리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처럼 올챙이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제 짝을 찾아다니기에 바쁩니다.

만화 영화를 보면 작은 개울에 '투투'란 녀석이 살고 있었습니다. 흉악하게 생긴 그 녀석은 퉁가리나 메기쯤 되겠지요. 개울의 무법자인 그 녀석, 하지만 가리왕산 계곡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가리왕산 계곡에선 개구리들이 왕 노릇을 합니다.

계곡물이 큰 강으로 흐르는 지류이긴 하지만, 강에 이르기 전 건천이 되는 통에 민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건천이 되기 전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개울에서 천렵을 했다고 하지만 민물고기가 사라진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 눈이 몇 번은 더 오겠지만 봄은 분명합니다.
▲ 물가에 핀 버들강아지. 아직 눈이 몇 번은 더 오겠지만 봄은 분명합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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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왕눈이를 찾아보았습니다. 분명 어딘가엔 눈 큰 개구리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피를 '삘릴릴리...' 불고 있을 것만 같은 날입니다. 왕눈이를 찾고 있는데, 이번엔 지나가던 이웃집 농부가 차를 세웁니다. 장화를 신은 모습이 농사철 같습니다.

"뭐 하십니까?"
"보시다시피 개구리 관찰 중이지요."

농부가 보기엔 팔자 좋은 말입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식수원 공사를 한다? 고맙지요

"올봄에 식수원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어휴, 다행이네요. 겨울만 되면 물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근데, 어디에다 공사를?"
"샘이 나오는 이곳에 할 겁니다."
"아, 그러면 좋지요. 몇 집이 사용하기엔 적합한 곳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한가롭게 놀고 있는 개구리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공사가 4월 말이나 시작된다고 하니 그전에 개구리 알의 부화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공사가 시작되면 중장비가 드나들 테고, 그렇게 되면 개구리들도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거든요.

그나저나 식수원 공사를 하게 되어 큰 다행입니다. 올겨울부터는 물 때문에 보초 서는 일은 없겠다는 소리부터 하게 됩니다. 겨울만 되면 물이 얼까봐 수도를 온종일 틀어 놓고 살았는데, 그 일 또한 하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봄이라 그런지, 좋은 소식부터 들려 옵니다. 올해는 좋은 소식만 많이 들려 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암요, 그래야지요. 이런저런 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만 터지는 요즘 아니던가요. 나쁜 소식들이랑 다 사라지고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같은 놈들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지요.

이웃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스멀스멀 어둠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옵니다. 개구리 왕눈이는 다음에 찾아야겠습니다. 농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거름이 되자마자 찬바람이 몰려듭니다.

겨울보다 봄에 얼어 죽는 이가 훨씬 많다죠? 그들을 폼생폼사들이라고 하더군요. 아직은 한낮은 봄이고 밤은 겨울입니다. 그러니 부디 봄 추위 조심하세요.

▲ 개구리 왕눈이는 어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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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구리, #올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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