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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양조장 겸 음식점

 

여행을 하면서 본 한국인은 항상 바쁘게 많은 곳을 보러 다니기에 바쁘다. 그러나 서양에서 온 관광객 중에는 책을 읽으며 한 곳에서 온종일 지내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서양 관광객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어제 저녁에 봐 두었던 바다 앞 조그만 맥주 집을 책 한 권 들고 찾았다. 해변에 있는 음식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맥주를 양조해 팔고 있다. 식당 가운데 큰 맥주 양조 통이 자리 잡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식당에는 이곳에서 주조한 각 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메뉴도 있다.

 

식당 가운데에는 적당한 크기의 수영장도 갖춘 맘에 드는 맥주 집이다. 수영장 주변과 앞 해변에는 의자를 갖추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일러서인가 사람이 많지 않다. 나와 아내는 햇볕을 막아주는 야자수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관광지에 왔으니 무엇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멀리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며 책을 펼친다.

 

얼마나 지났을까? 덥다. 준비한 모든 의자에는 손님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서양 사람이다. 나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더러는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눈다. 나도 흑맥주 한 잔을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맛이 깨끗하고 좋다. 흑맥주를 유난히 좋아하던 한국의 친구가 생각난다.

 

 

 

베트남에서 윗옷을 벗고 수영하는 여자를 만나다

 

책 속에 빠져있는데 옆에 앉아 있는 집사람이 나를 건드린다. 수영장을 보란다. 조금 나이가 들었음직한 서양 여자가 윗도리를 벗고 수영을 한다. 내가 살던 호주에서는 종종 보아온 모습이다. 그러나 호주에서도 해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수영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몇몇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이 그 여자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공산국가 베트남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베트남을 공산 국가로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아니면 학생 시절 지독하게 배운 공산주의가 틀린 것인지 다시 한 번 혼란을 느낀다.

 

내친김에 저녁까지 먹고 밤 바닷가를 산책해본다. 침침한 백사장 곳곳에 젊은 남녀가 앉아있다. 넓은 백사장을 원망하듯 꼭 붙어 앉아 있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들과 같은 청순한 모습을 이제는 나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서글픔이 마음 깊이 박힌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떻게 되어간다는 뜻인가?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씩 마셨던 맥주에 취해서일까, 아니면 젊은 시절을 잃은 허전함 때문일까? 아침까지 깊은 잠을 잤다.

 


태그:#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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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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