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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얼문화예술관 전시실 모습
한얼문화예술관 전시실 모습 ⓒ 황원종

 

며칠 전 내린 눈이 따스한 봄볕에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눈(雪)물이 스며든 대지는 질펀하게 변해 찾아오는 이들의 바짓가랑이에 달라붙는다. 봄이 옴을 시샘하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민 채 ‘한얼문화예술관’이라 표지가 내걸린 입구에 멈춰 선다.

 

횡성군 우천면 산전리 426-3번지. 한얼문화예술관이 자리한 곳이다. 예전엔 아이들이 공을 차며 뛰놀았을 학교가 지금은 폐교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폐교가 그대로 방치된 것은 아니다. 강원도 문화 진흥을 위해 고향을 뒤로 하고 이곳에 정착한 두 화백에 의해 폐교는 자그마한 박물관으로 변했다. 동헌 이양헌 화백과 설매 이정자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반려자이자 예술의 혼을 나누는 동업자이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날개를 활짝 펴 보이는 공작새와 함께 타조가 고개를 쑥 내밀며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중에 들으니 30여종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운동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단다.

 

사비를 털어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동물원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한얼문화예술관을 찾는 이들은 다양한 예술작품과 함께 살아있는 야생동물들을 직접 보는 체험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미술관에 갈지, 아니면 동물에 갈지 고민한다던데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단번에 해결되는 셈이다.

 

외지인을 반기는지 아니면 경계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짐승들의 울음을 뒤로한 채 교정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다양한 모양의 나뭇가지와 그 위에 새겨진 시서화(詩書畵)가 눈길을 빼앗는다. 어느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다. 과연 이곳의 주인은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토록 경이로운 공간을 만들어 놨을까? 발길을 옮길 때마다 궁금증이 더해져 그들이 기다릴 본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옛날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여닫이 문을 열고 본관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온화한 미소의 두 내외가 반가이 맞이한다. 사무실로 쓰고 있는 교실 안 벽면에는 각종 상패와 기념사진들로 가득하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상을 받는 사진은 이곳의 주인이 범상치 않음을 예견케 한다.

 

이 화백이 “상패가 700여개 됩니다, 다 작품 활동을 통해 탄 것들이죠”라며 말을 건넨다. 따뜻한 매실차와 함께 본격적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어떻게 이곳에 이러한 공간을 조성하게 됐느냐란 질문에 이 화백은 “강원도는 문화나 예술에 있어 불모지입니다, 우리 내외가 낙후된 강원도의 문화공간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한얼문화예술관을 만들게 됐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화백 내외는 젊은 시절부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현재 미술계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을 겸비한 화가라 평가된다. 1994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으로 선정돼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한 남산골 타임캡슐에 이 화백의 작품이 담겨지기도 했다.

 

 이정자, 이양형 화백
이정자, 이양형 화백 ⓒ 황원종

평생을 한 자루의 붓에 의지해 살아온 이들은 더 늦기 전에 강원도에 자리 잡아 남은 예술혼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강원도의 낙후된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마음과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야말로 예술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강원도에 발을 들인 이 화백 내외는 자신들이 소장한 수천 점의 예술작품들을 이용해 전시공간을 만들기로 계획한다. 그것이 바로 한얼문화예술관이다.

 

한국화와 서양화를 비롯해 도예품, 수석, 서예, 민속품 등 2천여 점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단순 전시관이 아닌 박물관으로써의 입지를 넓혀간다. 횡성군에서도 각종 홍보 책자에 한얼문화예술관을 등재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한다.

 

횡성읍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월 평균 1천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정도로 한얼문화예술관은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관람을 위해 받는 비용은 없다. 물론 비용을 받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 화백 내외는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는 것보단 더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라며 “비용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조금이나마 관람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앞으로도 비용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화백 내외는 이밖에도 매년 ‘한얼문화예술제’를 펼치며 횡성을 비롯한 강원도민들에게 다양한 문화행사를 선보인다. 예술이나 전시공간의 부족으로 이를 접하기 어려운 도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고마운 행사인 것이다. 올해도 도민들에게 좋은 공연과 작품을 보이기 위해 벌써부터 준비가 한창이었다.

 

교실 가득히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 둘 살피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한얼문화예술관을 떠나 올 수밖에 없었다. 이 화백 내외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교정을 나서며 진정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또한 그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며, 더불어 이를 아무조건 없이 내보이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살아있는 예술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눠주는 문화와 예술혼이 궁금하다면 단지 이 글로 끝을 내지 말고 직접 방문해 몸소 체험해 보길 바란다.


#한얼문화예술관#이양형 화백#이정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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