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민가에서 일 년 중 가장 중 행사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가족들의 1년 양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그 양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장 담그기다.

 

보릿고개가 한창일 때에도 우리 어머니들은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찹쌀과 엿기름을 이용하여 고추장을 담갔다.

 

어릴 때 어머니가 고추장이나 메주를 쑤기 위해 콩을 삶을 때 난 구수한 냄새가 나는 메주콩을 훔쳐 먹었다. 특히 메주콩 위에 놓인 흰 백설기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또 내 허리만한 밥주걱으로 고추장이 달라붙지 않도록 팔팔 끓는 고추장을 저을 땐 팔이 저리고 나중엔 아프기까지 했다. 그때 어머니는 “어뗘, 힘들지? 재밌어 뵈도 쉬운 게 없는 벱이여” 하며 주걱을 내 손에서 가져  가곤 했다.

 

지금도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젊은 며느리한테 당신만의 고추장 담그는 법과 메주를 쓰는 법을 손수 알려주신다. 손길 하나하나엔 온갖 정성이 다 들어간다. 간장을 담글 때도 잘 말린 메주를 깨끗한 물로 씻어서 물기를 빼고 간장독에 넣고 고추와 숯을 넣어 마무리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된장이건 고추장인건 사서 먹는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시골에 살면서 장을 담그지 않는 주부들은 된장, 고추장, 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장 담그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장을 담그는 시기는 언제쯤이 좋을까. 지역마다, 장 종류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조선 후기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를 보면 음력 3월에 주로 장을 담갔음을 알 수 있다.

 

삼월은 모춘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 소리 각색이라

당전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 기니

미물도 득시하여 자락함이 사랑홉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3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곷 피어 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대청 앞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에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홉다)

 

온갖 백화가 만발한 춘삼월, 사람들은 농사철이 한창이기 전에 장 담그기를 마무리하여 1년 먹을거리를 준비하였던 것 같다.

 

인가의 요긴한 일 장 담그는 경사로다/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고추장 두부장은 맛맛으로 갖초 담그소.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농가월령가에 보면 고추장뿐만 아니라 지금은 볼 수 없는 두부장 같은 것도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옛말에 ‘찬이 없는 시골에 손님이 찾아와도 장이 맛이 있으면 걱정이 없다’란 말이 있다. 지금도 밥맛을 잃었을 때 간장이나 고추장에 뚝딱 밥 비벼서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살림살이에서 장은 요긴하고 든든한 상비식품 역할을 한 것이다.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우리 입맛도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장을 만드는 재료로 유전자조작식품의 사용여부를 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젠 우리 장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때가 올는지 모른다. 이러한 때에 우리 농부들이 직접 농사지은 콩과 쌀로 여러 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웰빙 시대의 음식으로 제격이지 않나 싶다.

덧붙이는 글 |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나 기관에서 장 담그기 행사를 하고 있다.  전주에서도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고추장 된장 같은 장 담그기 행사(3월 9일)를 진행했다.이런 장 담그기 행사를 통해 우리 전통 맛을 찾고, 선조들의 맛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맛보기 위함이다.


#장 담그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