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 교육 사업을 한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시내(35·푸른 도서관 관장)씨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도서관 사업을 준비 중이다. 지난 3월 8일 오후 8시 이씨를 만나기 위해 안양 박달동 '푸른 도서관'을 찾았다. 마침 도배 공사 중이었다. 아차! 싶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도저히 인터뷰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음에 올까 하다가 팔 걷어붙이고 도배 대열에 합류했다. 기술자들이 도배하는 것이 아니고 친구들로 보이는 몇 명이 풀범벅이 된 채 땀 만(?) 흘리고 있었다. 일손 하나라도 보태주어야 할 상황이었다. 인터뷰는 도배를 끝내고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시작됐다.

 

지하셋방에서 지하셋방으로… 수도 없이 이사했던 어린시절

 

가장 궁금한 것 '왜? 아직 미혼이라 아이 키워 본 경험도 없을 텐데?'를 먼저 물었다.

 

"사회사업 하면서 가정에서 관심 못 받는 아이들 많이 봤어요. 저소득 맞벌이 부부 가정이나 편부모 가정 아이들이죠. 그 애들 모습 보며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결심했지요.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저 아이들 안전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만들겠노라고."

 

푸른 도서관은 이시내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갖게 된 꿈이었다. 이씨는  지난 98년 IMF 실업극복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사회 문제, 특히 아이들 교육 문제가 심각함을 절감했다. 이씨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가정형편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었이 필요한지 잘 알아요. 그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해요. 저도 어렸을 때 그렇게 살았거든요. 초등학교 때 지하 셋방에서 일곱 식구가 함께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했고 엄마,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분들이었지만 늘 먹고 사는데 바빴어요. 자식들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먹고 사는 일 다음이었죠."

 

 

궁금증은 풀렸다. 오랜 시간 품어왔던 꿈이 푸른 도서관이었고 그 바탕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녹아 있었던 것. 이씨의 어린 시절은 전형적인 도시빈민의 삶이었다.

 

이씨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경기도 여주에서 소작농으로 살다가 이씨가 3살 때 형편이 어려워져서 수원으로 이주했다. 그 후 이씨 아버지(현재 70)는 운전을 해서 가족들을 부양했고 지금도 경기도 안산에서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다. 이씨는 지하셋방에서 지하셋방으로 수도 없이 이사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대학 다닐 때는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문제를 해결했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나머지 학비를 충당했다. 사회사업은 사실 대학 때부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나 여학생회 활동으로 바쁘게 살았지만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을 방문해 목욕봉사와 청소봉사를 했다.

 

이씨는 대학 졸업 후 계속 안양에서 활동했다. 그동안 '안양 일하는 청년회'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본부' 'IMF실업극복센터'에서 일했고 현재 안양포럼 총무를 맡고 있다.

 

"교육은 사회의 책임입니다"

 

본격적으로 도서관 사업을 준비한 것은 지난 2007년 10월경이다. 여유가 생겨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더 늦으면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서둘렀다.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박달동 인근 학부형들을 모아 '도서관 설립 준비위원회'를 구성 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그 후 자금을 모았다. 준비위원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았고 부족한 자금은 지인들에게 빌렸다. 책도 지인들에게 기증받아서 현재 약 1,800권 정도 보유하고 있다.

 

"회비는 무료입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마음 편히 쉬고 갈 수 있게 하려고요. 또, 각종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무료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맞벌이 편부모 가정 아이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할 계획이에요. 이런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거든요."

 

 

도서관 사업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사회가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주자는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 제대로 돌볼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푸른 도서관 운영 방침의 뿌리는 이씨의 교육철학이다.

 

"아이 한 명 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라는 관점이 필요하지요. 교육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 때문에 어른은 누구나 아이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의 책임입니다. 특히 저 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 할 책임입니다."

 

푸른 도서관에서는 동화구연이나 교육전문가 초빙 강연 등 각종 학습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할 예정이다. 운영기금은 후원회원을 모아 충당할 계획으로 현재 모집중이다. 향후 무료 공부방 사업도 해 볼 생각이다. 이씨는 도서관을 지역아동센터로 발돋움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지고 있다. 3월 중순 경 문을 열고 4월 중순 경 개관식을 할 예정이다.

 

푸른 도서관에 올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은 얘기 있느냐고 물으니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엄마 손 잡고 왔으면 좋겠어요. 책도 함께 읽으면서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누는 쉼터를 만들고 싶거든요. 문턱은 아예 없어요. 누구든지 편하게 올 수 있거든요. 이웃집에 마실 간다 생각하시고 오세요."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결혼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씨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 질문 왜 안 나오나 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바쁘게 살다보니 때를 놓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만나면 결혼해야지요. 마음의 준비는 항상 되어 있어요. 어디 좋은 사람 없나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시내, #푸른 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