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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선 영화 한 편 더 보기도 힘들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볼 극장이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상영관이라곤 '주 팔라스트'(zoo palast · 독일 통일 전에는 이곳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밖에 없다. 그래도 걸어서 20여 분 정도 걸린다.

이번 영화제에서 '파노라마 스페셜' 부문에 오른 영화만 상영하는데, 이날(2월 14일) 가장 빠른 영화는 오후 7시에 시작했다. 영화 '가베'를 본 우라니아 극장도 바로 다음 시간, 같은 영화를 틀었다.

처음엔 "뭐 이래" 그랬다. 국내 국제영화제는 보통 극장이 가까운 곳에 한데 몰려 있어, 하루에 3~4편 보는 것은 일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개막식이 열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야 한다. 지리라도 익숙하면, 아니 말이라도 잘 통하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 모두 다 내 못난 탓이다.

제 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판매한 영화표. 국내 영화제와는 달리 표가 싸게는 4.5유로(6300원, 1유로=1400원 기준)에서, 비싸면 9.5유로(1만3300원)까지한다.
 제 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판매한 영화표. 국내 영화제와는 달리 표가 싸게는 4.5유로(6300원, 1유로=1400원 기준)에서, 비싸면 9.5유로(1만3300원)까지한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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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 기준으로 따지면 부산영화제가 훨씬 낫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자. 영화 표 값은 또 어떤가. 일단 비싸다. 그리고 아주 '골고루 작작'이다. 싸게는 4.5유로(6300원, 1유로=1400원 기준)에서, 비싸면 9.5유로(1만3300원)까지 한다.

영화별 사전 구매 기준 가격은 다음과 같다. ▲ 마돈나 감독 데뷔작인 <타락과 지혜>(filth and wisdom)는 7유로(euro) ▲ <가베>(감독 야마다 요지·원제 Kabei - Our Mother) 9.5유로 ▲ 멕시코 영화 <나자린>(감독 루이스 부뉴엘) 8.5유로 ▲ 이탈리아 영화 <La Terramadre>(감독 nello la marca) 8.5유로 ▲ <32A> 4.5유로 등이다.

이건 간단한 팁(tip). 극장에서 현장 구매를 하면 싼 값에 살 수 있다. 이날 우라니아에서 영화 <가베>를 현장에서 샀는데, 장당 8유로에 구매했다. 사전 구매하는 것보다, 무려 1.5유로(2100원)가 더 싸다. 단,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 사람이 몰리면, 못 볼 수도 있다.

잠깐 국내 영화제와 비교해보자. 부산국제영화의 경우, 보통 가격은 일반 영화표 값(8천원)보다 3~4천원 더 싼 4~5천원 수준이다. 극장도 보기 편하게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철저하게 보는 사람 기준으로만 따지면, 국내 영화제가 100만 배 더 낫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제 아무리 세계 3대 영화제에 꼽힌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영 아니올시다"다.

현지 가이드 김경흡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상영 영화나 극장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면서 "영화제 기간 상영되는 수백편의 영화 가운데 본선에 오른 영화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다큐멘터리나 애들 영화 등은 싸다"고 말했다.

극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원래는 서독 쪽에서만 영화제가 열렸는데, 통일이 되면서 지역 극장 배분도 고려하면서 장소가 다소 멀리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흥분하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극장 얘기는 여기까지만.

여유가 넘치는 거리, 길거리는 예술가들로 북적이고

자! 어쨌든, 우리 셋(별똥대)은 그렇게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혹시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오래 전 '랜드로바'라는 신발 광고에 나왔던 노랜데, 가수 '봄여름가을겨울'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바람 부는 데로/ 햇살 닿는 데로/ 우리 함께 이 길을 떠나자/ 이 길을 떠나자" 당시 느낌을 설명하자면 딱 그랬다. 마치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 배낭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떨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2시간 남짓 베를린 시내를 걸었다. 목요일 오후, 우리 같으면 열심히 일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곳 거리는 여유가 넘쳤다. 길거리는 예술가들로 북적였다. 분필 같은 것으로 대충 바닥에 커다랗게 네모 표시를 해두고,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펼쳤다. 한쪽에선 그림 그리기가 한창이다. 길 건너편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몇이 모여 각종 악기로 신명난 가락을 뽐냈다.

베를린 시내 길거리에서 한 스케이트보드 공연팀이 시민들 앞에서 묘기를 뽐내고 있다.
 베를린 시내 길거리에서 한 스케이트보드 공연팀이 시민들 앞에서 묘기를 뽐내고 있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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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길거리에서 한 화가가 앞에 앉은 여성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베를린 시내 길거리에서 한 화가가 앞에 앉은 여성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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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 복판에 우뚝 솟은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Kaiser Wilhelm-Gedaechtniskirche)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교회는 세계 2차 대전 때 '부서진 성당'으로 더 유명하다. 예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건물이 주변에 새로운 것들과 아이러니하게도 잘 어울렸다.

베를린 시내 한 복판에 있는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Kaiser Wilhelm-Gedaechtniskirche)의 모습. 이 교회는 '부서진 성당'로 더 유명하다.
 베를린 시내 한 복판에 있는 '빌헬름 황제 기념교회'(Kaiser Wilhelm-Gedaechtniskirche)의 모습. 이 교회는 '부서진 성당'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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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요금, 심하게 비싸다

오후 4시 30분쯤, 일행과 다시 합류하기 위해 주(zoo)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잠깐 지하철 얘기를 해보자. 이곳 지하철은 거리에 따라 권역별(A,B,C)로 요금에 차이가 있다. 지하철 1회 승차권 기준으로 했을 때, ▲ Berlin AB 2.10 유로(2940원) ▲ Berlin BC 2.30 유로(3220원) ▲ Berlin ABC 2.60 유로(3640원)다. 심하게 비싸다.

이곳서 제일 싼 Berlin AB가, 우리 같으면 적어도 3번은 더 타고 남을 돈이다. 가격이 비싼 탓에, 단체 할인이 있다. 말이 단체지, 기껏해야 5명 정도면 살 수 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포츠담 광장'(postsdamer platz)을 가기 위해, 역 안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Berlin AB'표를 끊었다. 어떻게 끊었느냐고? 물론, 독일어로 돼 있었지만, 가이드가 헤어지기 전 여러 차례 친절하게 알려줘 그림을 외웠다. 모르면 역시, 그냥 외우는 게 최고다. 표는 역 입구에 있는 카드 인식기에 찍으면 된다.

사실 안 찍어도 별 상관은 없어 보였다. 국내처럼 역 입구에 출입차단기 하나 없기 때문이다. 순간, 지하철 요금도 비싸고, 여행인데 한번쯤 그냥 하고 싶은 '검은 유혹'이 물밀듯 밀려왔다. 가이드에게 살짝 "안 찍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가끔 사복 입은 검사원들이 검사하는데, 걸리면 40유로(5만6000원)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흠, 한 번 장난치기에는 다소 위험해 보였다. 그것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아쉽지만 별 수 있나. 그냥 급(急) 포기했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역에서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있다.
 베를린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역에서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있다.
ⓒ 베를린영화제원정대 타블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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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생각보다 작았다. 내부도 좁았다. 서로 마주보고 다리를 뻗으면 서로 민망할 만큼 거리가 가깝다. 덩치 큰 사람들이 어쩌려고 이렇게 만들었는지. 색깔도 단순하다. 지하철을 보는 순간, "참 '독일사람스럽다'"는 느낌이 확 밀려든다. 역사 내부 공기도 별로다.

이곳 특유의 눅눅함과 탄 냄새가 진동했고, 워낙 탁해 처음엔 몇 초간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 사람들, 교통비 많이 걷어서 뭐하는지. 뒤 좀 캐보면 무언가 쏟아져 나올 것도 같다. 뭐 평생 살 곳도 아닌데, "알게 뭐야".

시네맥스 극장, 국내보다는 푹신했다

20여 분 뒤, 지하철을 탄 '별똥대'는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역에서 내렸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천천히 역을 빠져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시네맥스'(cinemaxx 7) 극장을 찾았다. 이름부터, 대형 멀티플렉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역시나 그랬다. 이날 둘러본 '우라니아'와는 달리, 매표소부터가 국내 극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극장 안도 오히려 우리보다 더 좋았다. 이날 오전 이곳서 영화를 본 다른 원정대 말에 따르면, 극장 크기부터 20~30% 정도 더 컸다.

좌석 앞뒤 간격도 앉아서도 성인 1명이 넉넉하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의자 색깔이 모조리 빨간색이지만, 촌스럽지는 않다. "국내보다는 푹신했다"는 평이 많았다. 말을 종합해 보면, 대(大)형이란 말이 붙을 법했다.

'시네맥스'(cinemaxx 7) 극장 근처에 있는 쇼핑 몰에 설치된 부스에서 사람들이 영화제표를 사고 있다.
 '시네맥스'(cinemaxx 7) 극장 근처에 있는 쇼핑 몰에 설치된 부스에서 사람들이 영화제표를 사고 있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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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 30분 전, 시간이 애매해 극장을 나와 근처 쇼핑몰에 들렀다. 새로 지었는지 크고, 깨끗했다. 음료수를 사러 지하 1층을 걷고 있던 중,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설마, 설마, 설마.' 눈을 비벼 다시 앞을 살폈다.

다시 봐도 그였다. 홍상수 감독이 찍은 영화 <밤과 낮>의 남자 주인공, 배우 김영호였다. 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만 만나도 기쁘다던데, 게다가 혹시나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다.

우리가 누군가. 베를린영화제원정대가 아니겠는가. 잽싸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다소 피곤해보였지만, 그는 친절하게 짧은 인터뷰를 해줬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따로 썼으니 관련기사 참조.

이날 오후 6시쯤, 소니(sony) 센터 앞으로 일행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한진관광 이창성 대리님이 마중을 나왔다. 불과 몇 시간 떨어졌는데도, 다들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 김영호 만났어요!" 버스에 타자마자 이내 '별똥대' 자랑은 시작됐다. "장하다! 별똥대여!"

덧붙이는 글 | '베를린영화제원정대'는 지난 12일 독일로 출국, 다음 블로그를 통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원정대는 미디어 다음(daum)과 CGV, 한진관광이 공동으로 후원한다.

이기사는 블로그(blog.daum.net/erowa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를린영화제원정대, #베를린, #영화,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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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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