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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경성 치매(일명 노인성치매, 알츠하이머)의 특징은 '세포의 자살'로 일컬어지는 뇌세포의 망실이다. 뇌세포가 파괴 되는데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흐트러진 퍼즐 조각처럼 기억이 흩어지고 합리적 사고와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다. 이 중 쓰기와 읽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포함된다.

 

어머니가 1주 쯤 전에 글씨를 쓰셨다.

 

오랫동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던 글쓰기를 어머니가 해 내신 것이 여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책 읽기를 여기 오신지 서너 달 만에 회복하셨는데 쓰기는 끝내 불가능해 보였었다. "다 까먹고 모른다"고 하시거나 "이 나이에 그까짓 거 배워 뭐해?"라면서 글 쓰는 것을 외면하셨다. 실제 다 잊어 보였다.

 

지난 주, 아주 우연한 기회가 왔다.

 

어머니 이야기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함양군수'다. 평생을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나고 자라서 시집갔으니 함양군수라면 어머니 생에 최고의 권력와 위세를 가진 상징적 인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귀한 것들은 다 '함양군수'가 보낸 것이고, 자식을 내 세우고 싶을 때도 '함양군수 상'을 받았다고 하실 정도다.

 

무슨 얘기 끝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 컴푸타도 함양 군수가 사다 줬고, 마늘 찧는 믹스기도 다 함양군수가 사다 준기라. 그래서 내가 시원한 삼배적삼을 한 벌 지어 줄락 카는데 시간이 없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때다 싶어서 바로 종이와 볼펜을 꺼내 놨다.

 

"어머니. 함양군수가 전화가 왔는데요. 컴푸타랑 잘 받았냐고 전화가 왔어요."

 

"아하! 그래? 아이구 군수영감이 전화까정 다 했구나. 그래 잘 받았딱켔나?"

 

"예. 그런데요 어머니. 군수님한테 편지 좀 써 보내요. 제가 우체국에 부칠 테니까 편지 좀 써 보내요."

 

이 순간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글씨를 쓸 것 같은 직감이 있었다.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어머니는 글씨를 썼다.

 

한 자, 한 자… 글자를 쓰시는 모습을 보며 걸음마를 막 시작하는 갓난애 추임새 넣듯이 옆에서 응원을 했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글씨 잘 쓰시네에. 군수영감이 좋아 하시것네."

 

"그렇지이. 안 까묵고 잘 쓰시네에."

 

한자 쓰고 나를 쳐다보고 또 한자 쓰고 내 판별은 기다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쓴 글씨가 총 다섯 개였다.

 

내가 태어난 고향마을 '봉전'과 우리 일가친척 모두의 고향 '함양', 그리고 내 이름을 아주 정확히 쓰셨다.

 

어머님 이름과 큰 형님 이름은 철자가 하나씩 틀렸다. 어머님은 '님'이 아니고 '임' 인데 이것을 틀렸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동안 어머니가 써 오시던 글자는 분명 '임'이었다.

 

큰형님 이름도 '항'이 아니고 '행'인데 모음이 하나 틀린 셈이다.

 

어머니 쓰신 글자가 맞고 틀린 것을 두고 뭐라 분석할 능력에 내게 없기도 하려니와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도리어 내 관심은 올해 어머니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고 주문처럼 외는 소원처럼 '벌떡 일어나 쫒아 댕기는' 기적에 있다.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니 그 날이 오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카페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http://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똥꽃> 이라는 책이 나왔다.


태그:#치매, #어머니, #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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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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