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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은 펑펑 내리고..산동백이 화들짝 놀라 헷갈리네. 봄맞아?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산동백이 화들짝 놀라 헷갈리네. 봄맞아?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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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월 5일)는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경칩(驚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봄기운이 시작되고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꿈틀꿈틀 기지개를 켜는 날입니다. <농가월령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경칩 봄맞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반갑다 봄바람이 의구히(옛 모양과 다름없이)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萌動-일어나기, 피어나기)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 나니 버들 빛 새로워라.
- 정학유 <농가월령가 2월령>

요새 며칠간 날씨가 따사롭고 온화하여 본격적인 봄이 오는가 했더니 오늘(6일)은 아침부터 함박눈이 쏟아지다가 지금은 가루 눈이 오기 시작합니다. 개구리 우는소리가 들리나 싶어 귀를 기울여보나 헤살 궂은 봄 날씨에 개구리가 입을 열다 화들짝 놀라 한참 헷갈리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앞산 멧비둘기 소리가 ‘구구구’ 봄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흰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듣는 비둘기 소리는 유별납니다. 좀 더 가까이 듣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눈 구경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함박눈 속에 맞이하는 봄 기운은 정말 싱그럽고 풋풋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같은 날은 도롱뇽 구경하기 참 좋은 날..작년 오늘 찍은 것인데, 오늘은 눈이 내리고..아직 더 기다려야 될 듯.
 오늘같은 날은 도롱뇽 구경하기 참 좋은 날..작년 오늘 찍은 것인데, 오늘은 눈이 내리고..아직 더 기다려야 될 듯.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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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때는 도롱뇽 알이나 고로쇠 물을 먹으면 위장이나 신경통에 좋다는데 그 귀한 도롱뇽 알을 어찌 먹을까 싶어 작년 이맘때 찍어놓은 이미지를 꺼내 보고 또 봅니다.

고로쇠 물은 돈만 내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며칠 전 산정호수에 사는 친척 한 분이 한 통을 보내와 아침저녁으로 맛보기를 합니다. 달착지근한 게 그대로 ‘봄물 맛’입니다.

이맘때면 봄 미나리의 살찐 맛도 겨우내 찌든 입속을 상큼하게 닦아낸다 하니 오늘 저녁 식단에 한 번 맛봄이 어떨까 싶습니다.

고추모를 우수를 전후하여 씨를 넣었다가 어제 가식(옮겨 심기)을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 시작입니다.
 고추모를 우수를 전후하여 씨를 넣었다가 어제 가식(옮겨 심기)을 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농사 시작입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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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속신앙에 경칩 때 흙일을 하면 동티(토신이 재앙을 내림)가 없고, 흙벽이나 담장을 쌓으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흙손을 탈까 싶어 어제는 하루 종일 고추와 봄 배추 가식을 했습니다. 어린 것들을 옮겨 심으며 봄볕을 온종일 실컷 마셨더니 오늘까지 봄 냄새가 배어나 저릿한 기운이 몸을 감싸 돕니다.

채소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손수 키워서 먹는 게 장땡입니다.
 채소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손수 키워서 먹는 게 장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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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발렌타데이’가 연인의 날임은 누구나 다 압니다. 우리나라에도 ‘연인의 날’이 있습니다. 벌레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연인의 날입니다. 경칩이 2월의 절기이고 보면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요즘을 사랑의 날로 정한 조상들이 퍽이나 낭만적이며 흥미로운 일입니다.

앞이 숫컷, 뒤가 암컷, 은행알이 암수가 있는 줄 이 글을 쓰며 처음 알았습니다. 숫알이 귀하고 암알은 통통합니다. 자연은 참 신비롭습니다.
 앞이 숫컷, 뒤가 암컷, 은행알이 암수가 있는 줄 이 글을 쓰며 처음 알았습니다. 숫알이 귀하고 암알은 통통합니다. 자연은 참 신비롭습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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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암수(雌雄)가 서로 마주 보아야 사랑의 싹이 트고 열매가 달립니다. 옛 문헌 <사시찬요>엔 재미난 사랑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은행 알을 구해 두었다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나, 정이 뜸해 새로운 사랑을 엮고 싶은 부부들은 은행 알을 경칩 때 나눠 먹습니다.

은행껍데기가 세모면 수컷, 두모면 암컷이라 합니다. 눈도 오고 하여 은행바구니를 풀어헤쳐 놓고 암수를 고르노라니 수컷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어인 일인지 맨 암컷 세상입니다.

지금, 때아닌 눈도 펑펑 내리고 할 일도 없으니 오늘 저녁엔 세모난 은행 알들이나 골라내 잉걸불에다 톡톡 튀겨내 볼까 합니다. 내 안에도 아직 찌릿한 새봄의 생기가 돌아 나올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찾아오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경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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