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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보조금 지원 중단이 결정된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
 올해 보조금 지원 중단이 결정된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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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성황동에서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를 4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응국(47)씨. 그의 지역아동센터 운영은 소박한 동기에서 출발했다. 성황동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던 중 가난으로 끼니를 잇지 못한 채 방치되는 동네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소식에 “굶는 아이는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2004년 7월 지역아동센터를 열었다.

실제로 우리두리가 소재한 천안시 성황동 일대는 한때 천안의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상권 쇠락과 더불어 천안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건축한 지 십수 년이 경과한 낡은 주택이 밀집된 골목길에는 부엌도 없이 겨우 몸만 누이는 쪽방들도 있다. 이곳에서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지역 실정은 우리두리를 찾는 아동들의 분포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우리두리를 이용하는 아동들은 미취학 1명, 초등생 12명, 중학생 6명, 고교생 3명 등 총 22명. 이 가운데 10명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이고 8명은 편부가정에 속하는 등 대부분이 빈곤, 위기가정의 아동들이다.

이들 아동들에게 우리누리는 보호와 교육, 급식을 지원하는 유일한 안식처. 아동들은 방학기간에는 오전 10시에 우리누리에 와 오후 6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센터에서 교사들께 함께 공부하며 종이접기, 독서, 체육활동 등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아동들에게는 간식과 점심, 저녁까지 무료로 제공된다.

이렇게 우리두리를 운영하는 데에는 센터 교사 2명과 급식담당 직원 1명의 인건비, 건물 관리비, 기타 비용 등 한달 평균 400~5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한동안은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응국씨가 전액 자비로 충당했지만 2005년 말부터는 매달 얼마씩 분기별로 천안시에서 지원금이 보조됐다.

지난해는 매달 200만원씩 총 2400만원이 천안시에서 지원됐다. 실 운영경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그나마 경비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는 중요한 창구였다. 하지만 김응국 센터장은 올해 2월말 낙심천만한 소식을 들었다. 천안시가 금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차등지원하며 우리두리가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탈락됐다는 것.

지역아동센터 재원의 주요한 공급처 역할을 해온 학원도 불황으로 힘든 처지에서 시의 보조금까지 중단된다는 통보에 김응국 센터장은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이라며 “우리두리의 존폐 여부까지 심각하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천안시 올해부터 지역아동센터 차등지원, 31개 센터 중 6개 센터 지원 끊겨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들이 책을 읽고 있다.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들이 책을 읽고 있다.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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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기준해 천안시에서 월 2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천안의 지역아동센터는 모두 29개소. 새로 설립된 센터 2개소를 포함해 천안시는 31개소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지난달 22일 선정위원회를 개최했다.

회의 결과 올해 보조금을 지원받는 지역아동센터에는  25개소가 선정됐다. 우리두리를 비롯해 꿈터, 여명 등 6개소는 지원중단이 결정됐다. 작년까지 천안시는 지역아동센터를 개소한 지 6개월이나 1년 이상 경과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월 200만원의 보조금을 센터별로 균등하게 지원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방식을 바꿔 차등지원을 실시하며 6개소가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지원대상에 선정된 25곳도 지난해처럼 균등지원이 아니다. A, B, C 3개 그룹으로 평가돼 A그룹(5개소)은 월 240만원, B그룹(15개소)은 월 220만원, C그룹(5개소)은 월 200만원씩 지원된다.

올해 심사대상이 된 31개소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20개소는 작년보다 보조금이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40만원이 늘었지만 5개소는 종전과 동일하게 받는 셈이다. 6개소는 월 200만원씩 지급되던 보조금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상황. 지원금 중단이 결정된 6개소 지역아동센터의 1일 이용아동은 120여명에 이른다.

천안시가 보조금을 센터별로 균등하게 지원하던 작년까지의 관례를 벗어나 올해 차등지원으로 돌아선 까닭으로는 두 가지 점이 꼽힌다.

첫 번째는 한정된 예산. 정경자 천안시 아동복지팀장은 “30개소 지원으로 예산을 신청했지만 충남도에서 25개소 지원으로 국·도비를 편성했다”며 “한정된 예산 탓에 부득이하게 6개소를 제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더 이상 차등지원을 미룰 수 없다는 것. 감사원은 지난 2006년 보건복지가족부(구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지역아동센터 국고보조금 지급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시설면적, 이용인원 수 등을 고려해 보조금 차등 지급방안 마련”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부터 일선 시·군·구에 지역아동센터 차등지원을 종용했다. 올해도 전국 기초자치단체에 하달한 ‘2008년 아동복지사업 안내’를 통해 차등지원의 절차와 방식을 제시했다.

정경자 팀장은 “차등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해 올해부터 방식을 바꿨다”며 “지원 대상은 시의원 1명과 아동복지전문가 2명 등 총 4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지역실정에 맞게 작성된 선정기준표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안시는 선정위원의 명단과 탈락한 지역아동센터의 점수를 비롯한 상세한 심사결과의 공개는 거부했다.

지역아동센터들, 차등지원 정책 반발

천안시의 지역아동센터 차등지원 정책과 이로 인한 일부 지역아동센터의 보조금 중단 상황에 직면한 지역아동센터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18개 지역아동센터가 회원사로 가입해 있는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와 천안지역 시민단체인 미래를여는아이들,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등 5개 단체는 천안시의 차등지원정책을 강하게 성토하는 성명서를 지난 5일 발표했다.

성명에서 이들 단체는 “빈곤아동 관련 시설에 대한 천안시의 운영비 중단은 단순히 시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빈곤아동들에 대한 대책 없는 방임”이라며 “빈곤아동들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할 천안시가 빈곤아동에 대한 방치를 앞장서서 선도한다”고 규탄했다.

선정위원회의 ‘묻지마’ 심사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아동복지법상 기준에 맞지 않게 선정위원회가 구성됐으며 그 결과 또한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차등지원에 대한 명확한 선정기준과 심의과정, 선정결과를 모두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지역아동센터 운영에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차등지원방식을 폐지하고 운영비 현실화를 통한 지역아동센터의 확대와 성장을 돕는 계획과 지원대책을 조속히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 회원기관들은 7일까지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국고보조금 운영비 전액을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등지원정책에 따른 일선 지역아동센터들의 후유증은 이미 심각한 수준. 평가에서 A그룹에 속한 모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은 “비슷한 여건에서 센터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우리가 더 받아 못 받는 기관이 생긴 것 같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경쟁만 부추기는 추가보조금을 반납하고 모든 센터가 고르게 받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도 팽배하다. 지원대상에 선정된 모센터의 실무자는 “올해는 선정됐지만 내년은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선정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빈곤아동들에 대한 서비스는 소홀해 질 것 같다”고 말했다.

보조금 지원 중단으로 당장 존폐의 갈림길에 선 지역아동센터들은 막막하다는 표정. 시의 선정절차 및 기준에 불만도 털어놨다.

김응국 우리두리 센터장은 “헌신적으로 일해 온 지난 4년의 평가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자괴감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의 실정을 도외시한 채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부분에 치중해 만들어진 심사기준표에 따라 한번의 실사도 없이 심사가 진행된 점도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선정대상에 탈락된 또 다른 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은 “지침에는 지원중단 센터도 3~6개월간 유예기간을 두어 운영을 개선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천안시는 이마저도 무시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 정경자 시 아동복지팀장은 “유예기간동안 얼마의 보조금이라도 지원해야 실효성이 있지만 현재는 그에 따른 예산편성이 없어 유예기간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탈락한 6곳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천안지역 지역아동센터 해마다 큰 폭 증가
시,차등지원으로 옥석가려야... 시민단체, 지원현실화 후 인센티브 제공해야
보건복지가족부의 ‘2008년 아동복지사업 안내’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해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지역아동센터가 등장한 배경은 지난 97년 IMF경제위기로 촉발된 가정해체사태와 관계 깊다. 실직과 이혼 등 가정해체가 급증하며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은 지역에서 크게 늘었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부실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때 먼저 나선 것은 민간. 뜻 있는 민간단체들이 방과후교실 형태로 저소득 빈곤아동들에게 돌봄서비스 제공을 자청했다. 시간이 경과하며 명칭이 지역아동센터로 바꼈지만 빈곤아동들의 든든한 안식처라는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천안지역도 지난 98년 12월 파랑새방과후교실을 시초로 지역아동센터의 등장이 이어졌다. 지역아동센터들이 증가하며 2006년 4월에는 천안지역아동센터연합회도 태동했다. 2006년말 천안의 지역아동센터는 19개소. 올해 초 31개소에서 3월 현재는 35개소를 기록하고 있다. 한달 평균 1~2개소가 새로 설립되고 있다는 것이 천안시의 설명.

지역아동센터 증가배경에는 사회 양극화의 심화 속에 돌봐야 할 빈곤아동들이 그만큼 많다는 점에도 연원하지만 신고제로 운영, 보조금이 지원되는 사업이란 성격도 한몫한다고 천안시는 밝혔다. 천안시는 지역아동센터 증가로 관련 예산도 덩달아 늘어 효율적인 예산집행을 위해서는 차등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조광희 천안시 여성가족과장은 “지역아동센터들도 옥석을 가려야 하는 시점”이라며 “차등지원이 지역아동센터의 경쟁력을 높이고 보조금 의존경향을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지역아동센터 운영비가 현실화 되지 않은 점은 간과한 채 시행되는 차등지원은 빈곤아동의 마지막 보루인 지역아동센터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제 역할 수행을 오히려 위협한다는 것.

진경아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차등지원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의 장기적인 육성과 예산확충에 먼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진 사무국장은 “정부의 책임은 방기하고 민간의 희생만 강요하는 차등지원이 아니라 최소한의 서비스 질 유지는 보장토록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70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태그:#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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