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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가을이 익어갈 무렵입니다.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 시인은 창간하는 문학잡지에 시 한편을 보냅니다. 그 시의 제목은 '산문시'입니다. 시 제목을 다르게 붙일 수 있었겠지만 시인은 시 제목을 <산문시1>로 붙였습니다. 숫자가 붙은 걸로 보아 연작 형태로 산문시를 만들어보려 했나 봅니다.

민족시인 신동엽 시인이 꿈꾼 나라, 아직도 멀기만 해

산문시가 만들어지던 해는 1968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입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라는 사람이 대통령 된 지 6년 째 되던 해이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해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의 마각이 드러나기 시작하던 그 시절.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대한민국의 많은 군인이 용병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고, 연초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전환점이 되는 구정 공세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 프랑스에서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5월 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68년 1월엔 무장공비인 김신조가 청와대로 진격했으며, 그해 가을엔 울진.삼척으로 무장공비가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 일로 산골에 살던 이승복 어린이가(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하여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담배 한 갑의 가격이 30원, 커피 한 잔 값이 30원하던 그 시절. 신동엽 시인은 '석양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산문시를 발표했습니다. 모더니즘 시를 즐겨 쓰던 당시 시인들에게는 큰 일날 시들을 신동엽 시인은 잘도 썼습니다. 김수영 시인과 함께 참여시의 시대를 활짝 연 신동엽 시인의 시는 언젠가 이루어야 할 예언자적 문구가 많습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 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

- 신동엽 "산문시(散文詩)1" 전문 (월간문학 1968.11. 창간호 수록)

신동엽 시인이 40년 전에 발표한 시입니다. 지금 다시 읽는다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신동엽 시인이 40년 꿈꾼 나라는 민중이 주인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대학 나온 농민들이 '추럭을 두 대씩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 사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러하던가요.

농촌이라는 게 새이름이나 꽃이름은 안다 하지만 극작가나 지휘자 이름을 알 정도로 문화적인 공간이던가요. 2008년이 와도 그런 건 요원하지요. 대통령 이름을 모르고 사는 게 건강에 좋다 싶지만 죽어가는 농촌을 생각하면 대통령 욕밖에 할 게 없는 사람들 심정이야 말로 표현하기가 번거로울 정도이지요.

노무현에게 기대했던 것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25일 오후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지역주민, 전 각료, 노사모 회원들이 주최한 귀향 환영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25일 오후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지역주민, 전 각료, 노사모 회원들이 주최한 귀향 환영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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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앉아 있는 농민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에서 나섰다 감옥살이를 경험했던 주민들, 아이들은 여전히 사람 죽이는 자극적인 게임에 빠져있고, 산업 전사였던 광부들의 뒷주머니엔 헤밍웨이의 책 대신 병원 출입증만 꽂혀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러하건만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라는 시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전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입니다. 여전히 '촌놈'일 것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석양 대통령에 썩 어울릴 것 같거든요.

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를 떠올렸습니다.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시인이 35년 전에 꿈꾸었던 이러한 나라를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만들어 주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그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40년이 되도록 시인이 꿈꾼 나라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젠 신동엽 시인이 지하에서라도 꿈꾸고 있을 나라를 포기해야 하나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끝내 이루지 못할 일 같아 눈물로 포기해야 할까 봅니다.

검정고무신 신고 논둑에 앉아 '맞짱 토론'하자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맞는 휴일인 2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둘러보다 잠시 마을 휴게소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시골 마을 휴게소에서 담배를 무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민 노무현'으로 돌아온 듯하다.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맞는 휴일인 2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둘러보다 잠시 마을 휴게소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시골 마을 휴게소에서 담배를 무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민 노무현'으로 돌아온 듯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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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는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삼등 대합실 매표구는 아니었지만 그는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고향에 당도했을 땐 그를 반겨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를 만나러 오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어슬렁거리며 시골길을 걷고 싶어도 찾아 오는 방문객들로 인해 서둘러 집으로 도망쳐야 할 정도라고도 합니다. 즐거운 비명이 따로없습니다. 내일은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이고 이제 곧 봄입니다.

검정고무신 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바지가랑이 두어 번 걷어 올리고 마실다니며 막걸리잔 기울일 날을 기대해봅니다. 하여 농촌의 어려운 살림도 살펴보고, 망가진 채 신음하는 국토의 땅 덩어리도 챙겨 보길 바랍니다.

그러다 막걸리 사오는 내기 고스톱도 치고, 그 일도 재미없으면 대통령 시절 못 다 했던 일들 끄집어 내어 맞짱 토론도 하고, 그 일도 시들하다 싶으면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이 왜 건천이 되었을까,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하면 좋지 않겠는지요. 

햇살 가득한 어느 날엔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 싣고 인근에 사는 시인의 집으로 놀러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압니까? 봉하마을 사람인 노무현을 따라 자전거 행렬이 줄을 이을지요.

그렇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멋진 MTB 자전거가 아닌 오래된 짐자전거에 막걸리 싣고 시인의 철학을 들으러 가는 그 석양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람인 노무현이라는 생각을 하면 상상만 해도 기분 좋지 않겠는지요.

눌러 쓴 모자에 '산불조심'이라는 글자가 있어도 좋고, '민방위'라는 글자가 있어도 좋고, 또 '진영읍'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던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마침 그 날이 겨울이어서 방울이 달린 '빵모자'나 '군밤장수 모자'면 또 어떻습니까.

가슴 답답한 날, 이 땅에 그러한 '석양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막힌 속이 뻥 뚫리는 소식 아니겠는지요. 생각 빠른 영화제작자는 그런 대통령을 주인공 삼아 사람 울리고 웃기는 영화를 만들기도 하겠지요.

봉하마을 사람인 노무현, 현대인의 정신적 허기 채워줘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문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 다운로드 하면 된다고 해놓았다.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문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 다운로드 하면 된다고 해놓았다.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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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은 그러한 세상을 꿈꾼 지 1년도 되지 못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 흔히 말하는 요절입니다. 그는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에서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지 갈길을 제시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으며, 그 정신을 따르는 이들 역시 많습니다.

천상 촌놈이었을 봉하마을 사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을 40년 전 신동엽 시인이 이미 말해버렸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를 꿈꾸는 것이 멀기만 한 대한민국에서 과연 정신세계를 논하는 것이 한가로운 자들의 풍류놀음에 불과 할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의 허기진 정신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정신적 궁핍을 넘어서지 못하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라고 선언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 두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이 세상임에도 우리는 자꾸만 허기진 배를 채우길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 허기가 정신적 허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먹물 든 지식인은 있되 철학을 지닌 지성인이 등 돌리고 있는 세상에선 새이름과 꽃이름을 많이 안다 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먹고 살 걱정이 아니라 얼마나 더 많이 벌어야 하는 가에 대한 경쟁 사회에선 꽃이름이나 새이름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정신적 허기는 면할 방법이 없습니다.

봉하마을 사람인 노무현이 평범한 주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현대인에게 결핍된 정신의 비타민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 일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챙기지 못했던 정신의 빚을 갚는 일일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봉하마을 사람 노무현을 전직 대통령이라 하지 않고 '석양대통령'이라 부르기도 할 테고, 어떤 이는 '노란 풍선 대통령'이라고도 할 테고, 더러는 '봉하마을 큰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하겠지요. 그런 날 오는 때, 반외세와 민중적 삶을 살아온 신동엽 시인도 지하에서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태그:#노무현,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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