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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500미터도 안 되는 나지막한 뒷동산에 불과하지만, 남산은 경주의 어느 곳에서도 다 볼 수 있는 랜드마크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방으로 열려 있어 어디서든 남산에 오를 수 있으며, 그 수많은 골짜기마다 만만치 않은 역사와 전설이 담겨 있는 ‘노천 박물관’입니다.

 

흔히 남산을 두고 ‘불국토’라는 단 한마디 말로 갈무리하곤 합니다. 골짜기마다 불상이 모셔진 까닭에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도 부처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미치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신발끈을 조여 매고 남산을 오르자면, 불상이 ‘열 걸음에 하나꼴’입니다. 가까운 곳에 밀집해 있는 탓에 각각 불상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가 고민스러울 지경이지만, 하나같이 국보나 보물 따위의 명함 자체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초연합니다.

 

 

통통한 얼굴이 덕스러운 배리 삼존불상 앞에 허리를 굽혀 ‘신고식’을 가진 후 불국토에 들어섭니다. 남산에 오르는 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 들으면서 거니는 산책로에 더 가깝습니다. 급하게 달려 오르지만 않는다면 숨이 차거나 땀이 송글송글 맺힐 일도 없습니다.

 

목 없는 석불상에 이르러 본격적인 남산 여행이 시작됩니다. 천 년 세월의 탓인지, 아니면 후세의 무지몽매 탓인지 목이 잘린 채 몸뚱이만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가엾거나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비록 자애롭고 평온한 부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아쉽다 해도, 흐트러짐 없는 당당한 자세를 통해 참선에 든 법력 높은 한 노승의 모습이 그려지는 불상입니다.

 

 

목 잘린 어깨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는 삼릉골 마애관음불상이 서 있습니다.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흡사 다른 동생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할 것 같은 자상한 큰누이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그 길로 200미터쯤 더 올라가면 평평한 바위에 새긴 한 편의 색깔 없는 탱화를 만나게 되는데, 이름하여 마애선각육존불상입니다. 말하자면, 바위에 ‘스케치’한 여섯 불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위의 중간 중간 선이 끊어진 흔적이 거의 없어, 마치 붓으로 도화지에 일필휘지로 내저은 것처럼 신비롭습니다. 더욱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온갖 풍파 다 맞았을 텐데도 크게 마멸되지 않고 또렷한 것이 종교적 영험함으로 다가옵니다.

 

이쯤 되면 남산의 품에 깊숙이 안긴 셈입니다. 지금껏 완연하던 봄기운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투명한 살얼음이 여전히 계곡을 덮은 깊은 골짜기를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낯선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난데없는 비닐하우스입니다.

 

이곳의 수많은 불상들 중 제법 널리 알려진 삼릉골 석불좌상의 ‘임시 거처’라고 합니다. 현재 보수 작업이 한창이라고 하는데, 대신에 애써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바깥쪽에 사진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기실 이 불상은 잘못 보수했다고 ‘욕먹는’ 대표적인 사례인 까닭에 또다시 손보려는 것일 터인데, 부디 이번만큼은 부처님의 자애로움이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마음을 담아 지나가는 길, 바윗돌 위에 조그만 돌탑을 정성스럽게 쌓았습니다.

 

 

완만하던 등산로가 이내 가팔라지더니 튼실한 나무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남산의 능선이 시작되는 상선암에 다 온 겁니다. 목을 축이고자 했는데, 겨우내 언 약숫물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걸었는데도 배리 삼존불상에서 길을 나선 지 꼭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상선암 지붕 위 바위 벼랑에도 어김없이 부처님은 살아계십니다. 암자와 나란히 자리해서인지 상선암 마애여래좌상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불상입니다. 지금껏 봐온 불상들과는 달리, 어서 와 절하라는 듯 제법 넓고 평평한 터를 갖추고 있어, 남산에서 내로라는 기도처이기도 합니다.

 

몸은 비록 남산 정상을 향해 있지만, 저 산 아래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미소 짓는 모습에서 기도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 따뜻함과 영험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상이 기댄 바위틈을 비집고 오르면 남산의 등줄기, 능선이 시작됩니다.

 

 

평평한 이 길을 따라 15분쯤 가면 남산 정상입니다. 본디 남산은 공식적인 지명이 아닙니다. 해발 468미터의 금오산과 494미터의 고위봉 자락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고도는 낮지만 산체(山體)의 가운데 위치해 있는 까닭에, 대개 금오산을 남산의 정상으로 삼습니다.

 

금오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면 흉물스런 길이 담벼락처럼 막아섭니다. 넓이로 보자면 자동차 두 대가 너끈히 지나다닐 만하지만, 비포장인데다가 곳곳이 웅덩이처럼 깊게 패 있어 도로로써 기능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듣자니까 군사정권 시절 이곳에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할 목적으로 만든 도로라고 하니, 과거와 현재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그려집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그 길을 빌어 10분쯤 가면 용장골로 들어서는 입구이고, 이곳부터는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용장골 산 아래로부터 보자면 맨 꼭대기이고, 내려가자면 맨 처음인 너럭바위 위에, 남산의 ‘화룡점정’격인 3층 석탑이 서 있습니다.

 

 

금오산 정상에서 한참 내려온 능선에 세워진 것인데도, 용장골 골짜기가 깊어서인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방이 낭떠러지인 바위 위에 자리하다 보니 남산 전체를 받침돌 삼은 격입니다.

 

아래 세상을 굽어보며 지그시 눈감고 있는 부처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탑의 설법을 듣고자 모여들어 우러르는 모양새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둔 절대지존의 모습입니다.

 

탑에 기대어 서서 천 년 왕국 신라가 꿈꾼 불국토의 이상이 살아 숨 쉬는 남산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만난 불상을 다 기억 못 할 만큼 ‘넉넉한’ 여행을 하다 보니, 경주가 있어 남산이 있는 게 아니라 남산으로 인해 경주가 빛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만난 한 등산객에게 "답사를 다닌다며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남산만한 데가 없더라"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선생님이 오늘 본 것, 아마 남산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될 걸요"라고 하는군요.

 

덧붙이는 글 | 용장사터 3층석탑에서 용장골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팔라 위험합니다. 더욱이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 나무다리인 설잠교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칫 헤맬 수도 있습니다. ('설잠'은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 용장사에 머무를 때의 법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지난 2월 21일부터 3일간 다녀온 기록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경주 남산#용장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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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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