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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조차 한산한 6호선 증산역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2호선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면 바로 증산역이 나온다고 설명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이렇게 낯설고 한적한 주택가 뒷골목인지라 일방통행 골목길과 주차장소가 없어 차량으로 접근하기는 마땅치 않지만 다행히 지하철역에서 100미터 거리에 있다는 것이 섬 갤러리의 최대 강점이다.

 

섬 갤러리는 경기대 교수이자 시인이며 ‘열린시학’ 편집인인 이지엽 교수가 주택가 빌라 1층에 문을 연 아주 조그만 미술관이다. 원래 그 빌라에 열린시학 편집실겸 도서출판 ‘고요아침’의 사무실이 있는데 옆집에 창고로 쓰던 곳을 개조하여 미술관을 연 지 세 달밖에 되지 않는 곳이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이 주택가 미술관이 재미있는 이벤트와 특별한 운영방법으로 주변의 마을 주민과 구청 공무원 등에게 입소문이 나서 시민들의 조용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보통 고가의 미술품은 누구든지 선뜻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섬 갤러리는 약 50여명의 운영위원을 모았다.

 

 

시인, 화가는 물론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문화인들이 각자 가능한 약정액을 정해 자율적으로 기금을 적립하며 운영진은 이 기금을 적절히 운용한다. 각자가 적립한 금액은 누적되었다가 그림 구입 시에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운영위원들에게는 그림을 할인해 주고 모든 재미난 행사에 초대되는 특전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일 <원로 5인전>이 열린 섬 갤러리의 풍경을 잠깐 담아 보자. 오후 다섯 시 오픈을 앞두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한 사람들이 네 시를 넘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은 운용위원들의 회의가 있는 바, 이 교수는 열 명 남짓 모인 위원들에게 그간 운영실적과 성과 등을 설명하고 잘 모르는 위원들간에 인사를 시키는 등 옆집 아저씨같은 구수한 입담으로 짧은 회의를 마친다. 그 사이 모인 참가자들은 그림을 둘러보고 화가와 인사도 나누고 그림에 대해 묻거나 전시품들을 자유롭게 보고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네 시 반이 되자 사전 행사가 자율적으로 이어진다. 시낭송을 준비한 김경영 시인 등은 차례대로 조용조용 시를 낭송하고 관람객들은 둘러앉아 고개를 주억거리며 박수를 치고 자못 분위기가 떠들썩하다. 73세의 고령에도 긴 시를 암송하는 노익장을 과시한 분도 있었고 들뜬 목소리로 유치환의 시를 외는 이도 있다. 따듯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정겹다.

 

다섯 시가 되자 이들은 마이크를 이 교수에게 넘긴다. 이 교수가 초대된 원로화가 강우문, 김영태, 김학두, 조병현, 송용씨 등 화가들과 운영위원들을 소개하며 서로 인사하는 순서를 가졌다. 이번 원로 5인전은 나이만 보아도 70~80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원로 중의 원로 분들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김학두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이야기 할아버지처럼 구수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설명하니 박수가 쏟아진다.

 

사이를 두고 옆 교회에 다니시는 분의 따님인 양희진(서울대 국악과) 양의 해금 연주가 이어지고 앙코르 곡까지 끌어내니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박미루씨의 북과 조남현 화가의 신나는 댄스가 이어지니 여기가 미술관인지 무대인지 모를 지경이 되어 박수소리가 더 커진다. 처음에는 생소해 하던 주변 사람들도 오픈 날짜를 물어오고 이번에는 무슨 행사가 있느냐며 관심을 보인다고 큐레이터가 전한다.

 

화가들은 관람객이 묻는 질문에 답해주고 이리저리 다니며 작품을 해설해 주는 모습이 색다르다. 일방적인 감상과 인위적인 전시에서 뛰어나온 이벤트가 관람객의 마음을 편하고 그림에 친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사동이나 강남의 미술관은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로 그림값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데 비하면 섬 갤러리의 강점이 또 하나 있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여섯 시에는 근처 막창집에서 가볍게 소주를 한잔하는 뒷풀이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는 시와 그림과 음악이 어우러진 대화와 칭찬과 덕담이 오가니 참으로 훈훈한 행사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비록 변두리의 작은 미술관이지만 섬 갤러리는 이제 '문화의 섬'으로 조명 받고 있으며 한 발짝 더 문화를 우리의 친구로 만들고 가깝게 하는 데 그 소임을 다하리라 믿는다.


#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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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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